이 사건은 홍씨가 비록 주거침입 부분에 대한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실형을 면하기는 했지만 여자친구와 헤어지기 위한 수단으로 성폭행이라는 방법까지 동원한 요즘 젊은이들의 빗나간 우정의 단면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당시 홍씨는 최씨와 신양이 서로 잘 어울릴 것으로 판단해 자연스럽게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줬다. 처음 만난 최씨와 신양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얼마 안 돼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처음 몇 달간 별다른 문제없이 관계를 발전시켜 가던 최씨와 신양은 곧 암초에 부딪치게 된다. 신양의 경우 유흥업소에서 일하다보니 아무래도 술 마시는 횟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최씨는 이런 그녀의 모습이 싫었던 것. 게다가 최씨는 자신이 하는 일에 일일이 간섭하려고 드는 그녀가 차츰 귀찮아졌다.
양보없는 감정의 줄다리기 속에서 두 남녀 사이의 감정의 골은 깊게 패여갔다. 헤어지자고 얘기할 용기가 없었던 탓이었을까. 같은 해 12월 홍씨에게 이런 속을 털어놓은 최씨는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다.
‘그녀가 내가 아는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나면 결코 나를 놓아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홍씨와 함께 한 자리에서 최씨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넌지시 비쳤고, 홍씨 역시 그의 생각에 별다른 반대없이 동의했다.
그 해 12월 중순 역시 신림동의 한 주점에서 홍씨와 최씨, 그리고 신양이 마주했다. 신양은 두 남자의 속도 모른 채 이들이 권하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새벽 세 시가 넘어가면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크게 취해버린 신양.
모든 일이 두 사람의 계획대로 진행됐다. 먼저 최씨는 술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진 그녀를 들쳐업고 평소 홍씨가 장기 투숙하고 있던 신림동의 A여관으로 향했다. 이곳에 그녀를 눕힌 최씨는 그녀를 두고 살짝 방을 빠져나와 홍씨와 ‘교대’했다.
이윽고 홍씨는 최씨와 합의된 대로 인사불성인 그녀를 덮쳤다. 아무리 술에 취한 신양이었지만 이쯤되면 잠에서 깨지 않을 수 없었다. 홍씨는 눈을 뜬 그녀에게 “이미 형석이와 너를 성폭행 하기로 이야기가 돼 있다”고 말했다. 희미한 의식을 부여잡고 간신히 저항하고 있던 신양을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한 마디였다.
사건이 벌어진 이틀 뒤, 신림동의 한 커피숍에서 세 사람이 자리를 함께 했다. 막상 일을 벌여놓고 조마조마하던 홍씨와 최씨. 한동안의 침묵 끝에 신양은 “신림동을 떠난다면 엊그제 일은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제의했다. 신양으로서는 ‘마이낑’(선불금)을 받고 다니던 업소를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두 친구는 그녀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최씨가 자신의 ‘소원’대로 신양과 헤어진 것은 당연했다. 그로부터 9개월 동안의 시간은 아무 일 없이 흘러갔다. 신양과의 약속대로 신림동을 떠나 경기도 수원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던 홍씨에게 경찰이 찾아온 것은 지난 2002년 9월. 오래 전 이미 끝난 줄로만 알았던 그 일로 인해 신양이 고소를 해온 것이었다.
홍씨의 변호인에 따르면 사건이 벌어진 지 9개월이 지난 뒤 신양이 고소하게 된 계기는 이랬다. 자신의 애인과 그 친구로부터 몹쓸 짓을 당한 이후, 신양은 빚으로 인해 몹시 곤란을 겪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옭죄어 오던 금전적 어려움은 결국 그녀로 인해 지난 일을 들춰내게 만들었다. 자신을 성폭행한 홍씨를 고소한 신양은 그에게 합의금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어렵게 먹고살던 홍씨에게 이만한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홍씨는 결국 구치소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신양으로서는 허탈했다. 그리고 애초 원했던 것이 홍씨의 처벌이 아니었던 만큼 공소제기 직전 마음을 돌려 홍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씨는 여전히 구치소에서 나오지 못했다. 검찰 기소단계에서 단순 성폭행이 아닌 주거침입강간죄가 적용됐기 때문. 현행법상 일반 성폭행은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 처벌이 가능한 반면 주거침입강간죄는 피해자의 신고가 없더라도 처벌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홍씨는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번에 항소심을 맡은 재판부는 성폭행이 벌어진 여관방에 대한 점유권이 피해자 신양에게 있다고 판단한 1심 재판부와 달리 문제의 여관방에 대한 점유권이 최씨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홍씨가 최씨의 허락을 받고 여관방에 들어간 만큼 주거침입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견해였다.
결국 피해자에게 용서받고서도 법으로는 용서받지 못할 뻔했던 홍씨. 마지막 순간 홍씨는 항소심 재판부의 ‘합리적인 판단’ 덕분에 가까스로 구제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