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은 닭고기 사업 이미지가 강하지만 곡물·사료 비중이 더 크다. 이번 팬오션 인수로 곡물 유통부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원 안은 김홍국 회장.
하림그룹의 행보를 두고 시장의 시선은 냉담했다. 하림그룹이 팬오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발표된 17일, 하림과 하림홀딩스 주가는 각각 13.49%, 13.13% 하락하며 하한가 근처까지 떨어졌다. 닭고기 회사 하림이 해운 회사를 잘 운영할 수 있을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해운 회사는 경쟁이 치열한데 전혀 경험이 없는 하림이 팬오션을 인수한다니 앞으로가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최근 저유가를 기록하며 해운 업계가 좀 나아졌지만 기름 값은 언제든 다시 오를 수 있다”고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놨다.
사실 하림은 닭고기 이미지가 강하지만 하림그룹 매출 중에서 곡물·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닭고기보다 더 크다. 전체 4조 8000억 원의 하림그룹 매출 중 사료부문이 34.8%를 차지하는 1조 4000억 원이고 닭고기 사업 매출은 29.6%로 1조 1000억 원이다. 사료로 쓰이는 곡물 등은 사실상 전량인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하림은 해외에서 수송하는 곡물을 팬오션을 통해 나르면 기존 하림그룹의 원가 절감을 달성할 수 있고, 새롭게 하림그룹으로 포함되는 팬오션의 매출도 증대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하림그룹 관계자는 “항만 네트워크와 곡물 유통의 경험을 갖고 있는 팬오션과 하림그룹의 결합이 이루어진다면 국내의 안정적 곡물 조달은 물론 성장하는 동아시아 곡물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김홍국 하림 회장도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하며 팬오션 인수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곡물 유통 메이저 회사가 되려면 국제 운송망에 대한 장악이 꼭 필요하다는 논리에 주가도 하락세를 멈추고 상승세로 돌아섰다. 또한 하림이 곡물 생산, 운송, 사료, 가축, 가공을 모두 그룹 내로 편입해 일종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는 기대감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불안 요소는 여전히 남아있다. 해운 업황이 반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팬오션이 앞으로 하림의 사료부문 매출이 늘어난다고 해도 하림 물량만 가지고 살아남긴 어렵기 때문이다. 2013년 6월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팬오션은 체질개선에 성공하며 지난 3분기 연속 흑자를 내고 있지만 새해 해운 업황은 2014년보다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새해 해운업계 불황은 계속 이어질 것이란 보고서가 얼마 전에 나왔다. 특별한 변화 없이 2014년처럼 해운업계의 살아남기 경쟁이 치열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최근과 같이 해운 업계 불황이 이어지고 있을 때 굳이 업체를 인수하는 대신 저가에 장기계약을 맺으면 유동성 위기 걱정도 없고 경기 변동에 따른 가격 걱정도 제거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업계가 불황일 때는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저가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고 장기 계약을 맺으면 값을 더 낮출 수 있다”며 “굳이 업체를 인수하기보다는 핵심 사업에 집중하면서 장기 계약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수·합병은 한 번 잘못하면 그룹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하림 관계자는 “곡물 메이저 회사인 카길도 자신들의 선단을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고 반박하면서도 “아직 인수를 한 것이 아니고 MOU를 체결한 단계이니만큼 인수를 하고나서도 우려가 지속되면 그때 구체적인 의견을 내겠다”고 밝혔다.
하림의 팬오션 인수 가격도 지나치게 높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하림이 인수한 가격은 1조 600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애초 입찰 전 시장에서 내놓은 최종 낙찰가는 6000억~7000억 원선이었다. 하림 관계자는 “시장가는 입찰이 시작되기 전에 시장에서 내놓은 평가였고 실제 입찰에서는 법원이 팬오션 인수 조건으로 8500억 원 이상의 유상증자를 조건으로 내걸어 8500억 원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최소한의 금액이었다”며 “세간에 알려진 1조 600억 원은 우리가 밝힌 가격이 아니며 가격의 적정선도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해명했다.
팬오션 관계자도 “피인수 입장이기 때문에 특별히 할 말은 없다”면서도 “해운시장 자체가 전반적으로 침체된 와중에도 (흑자 전환 등) 실적을 내는 것을 봐도 저력이 있는 회사”라고 평가했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대표적인 승자의 저주 사례로 꼽히는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인수는 부동산 경기 침체 직전에 비싼 값으로 인수한 데다 아예 새로운 분야로 진출했기 때문”이라며 “해운 업계는 최근 업황이 좋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금호아시아나와 경우가 다르긴 하다”고 두둔했다.
하림은 인수 금액 1조 600억 원 중 2400억 원은 그룹의 지주사 중 하나인 제일홀딩스가 맡고 1700억 원은 재무적 투자자로 컨소시엄에 참가한 JKL파트너스가 내며 4400억 원은 은행에서 차입할 예정이다. 하림 관계자는 “인수에 필요한 자금 여력은 충분하다. 또한 작은 금액도 아니고 큰 비용을 치르면서 인수를 결정하기까지는 단순하게 하나만 본 것이 아니다”며 “한때 2500만 톤의 곡물을 수송하며 곡물 벌크분야 세계 1위까지 차지했던 팬오션과 하림이 결합하는 시너지뿐만 아니라 팬오션 자체의 비전을 보고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