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8일 여명이 틀 무렵 서울 모 소방파출소에는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1층에서 근무하고 있던 조명준씨 뒤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조씨의 동료 직원이자 친한 선배인 박씨가 나타난 것. 이날 근무에서 면제돼 2층 휴게실에서 잠들어 있던 박씨는 물을 마시기 위해 1층으로 내려왔다가 조씨를 발견했다.
뜬금없이 나타난 박씨는 책상에 앉아 소내 근무중이던 조씨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명준아, 올라가서 쉬어라.” 조씨는 묵묵부답이었다. 박씨가 버럭 화를 냈다. “야, 올라가라면 올라가.” 박씨의 고함에 놀란 조씨는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이 과정에서 박씨를 흘끗 쳐다본 것이 조씨의 실수라면 실수.
자신을 쳐다보는 조씨의 눈에서 감시의 눈초리를 읽은 것이었을까. 불현듯 맹렬한 분노를 느낀 박씨는 그의 뒤를 쫓아 2층으로 올라갔다. 이미 그의 두 손에는 1층 주방에서 꺼내온 흉기가 각각 들려 있었다.
박씨의 서슬에 어쩔 수 없이 2층으로 몸을 피한 조씨는 숙직실을 지나 휴게실 앞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참이었다.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 몸을 돌리자 그 곳에는 양 손에 흉기를 든 박씨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박씨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조씨는 “어, 박 선배 왜 그러세요”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이미 박씨의 흉기는 허공을 갈랐다. 박씨가 휘두른 흉기에 두 차례 찔린 조씨는 피를 흘리며 숙직실 쪽으로 정신없이 도망쳤다. 공교롭게도 그 곳은 막다른 길. 결국 조씨는 이곳에서 복부를 난자당한 채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박씨는 흉기를 파출소 옆 화단에 버리고 자취를 감췄다.
피의자 박씨가 소방공무원에 임용된 것은 지난 91년 12월. 경력 13년차의 베테랑 소방관이었던 그는 지난 92년초 화재현장에서 숨진 시체를 업고 나온 일로 정신적 충격을 입은 바 있었다. 이 일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던 박씨는 지난 93년 3월 소방서에 완치증명을 제출하고 복직했다.
그 뒤 정상적인 근무를 하던 박씨에게 또다시 충격이 찾아온 것은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하루 전이었다. 경찰은 “사건 하루 전인 27일 박씨에게 ‘시골에 있는 막내동생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고 말했다.
충격을 받은 박씨는 그날 오후 파출소에서 한 차례 이상 행동을 보였다. 이 일을 계기로 파출소 소장은 전직원을 불러 “박씨가 이상하니까 잘 좀 지켜보고, 날이 밝으면 시골 집에 데려다 줘라”고 주문했다. 평소 박씨와 각별한 사이였던 조씨에게는 “친하니까 잘 좀 챙겨줘라”며 당부하기도 했다. 당연히 사건이 벌어졌던 지난 28일 새벽, 박씨의 근무는 면제였다.
조씨의 사망소식이 알려지자 서울시 소방방재본부에서는 조씨가 소속된 소방서를 포함, 서울 21개 소방서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업무연락’ 문서를 띄웠다. 갑작스럽게 숨진 조씨에 대해 조의금을 걷자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해서 모인 조의금이 5천2백여만원.
문제는 이런 모금에 대해 일부 직원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것. 서울 모 소방서의 한 직원은 “동료 직원이 불미스러운 사고로 숨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본부 차원에서 금액을 정해서 타 소방서 직원들에게까지 조의금을 모금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소방방재본부 이창식 주임은 “절대 강제적인 모금이 아니었으며 금액을 정해 내려보낸 것은 혼란을 피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성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방공무원은 늘 목숨이 오가는 현장에서 함께 일하기 때문에 어느 조직보다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며 “누가 그런 불만을 제기하는지 모르겠지만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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