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 본사 사옥 전경. 동부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함으로써 그룹 전체가 위태로워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팽배해지고 있다. 일요신문 DB
동부건설은 채권단에 추가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오너 일가의 책임 문제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시간을 허비, 결국 법정관리 신청까지 이르렀다. 지난 12월 31일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직전 동부건설은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신청하려 했지만 채권단이 거부하자 곧바로 법정관리 신청으로 이어졌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계속 미뤄왔던 상거래 채권이 문제였다”면서 “워크아웃이 거부당한 상황에서 대안이 없었다”고 말했다.
기업 재무구조개선 작업인 워크아웃은 채권단의 관리를 받지만 기업 회생 절차인 법정관리는 법원의 관리를 받는다. 전자보다 후자가 시간이 더 걸린다. 전자는 기존 경영진이 유지된 채 워크아웃에서 졸업하면 계열사로 계속 둘 수 있지만, 후자는 법원이 매각을 결정해 다른 곳으로 팔리면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된다. 김준기 회장은 대학생 시절 설립해 지금까지 이끌어온 건설사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되는 것이다.
김준기 회장은 지난 2일 임직원들에게 보낸 신년사에서 채권단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김 회장은 “지난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패키지 딜의 실패와 자산의 헐값 매각, 억울하고도 가혹한 자율협약, 비금융 계열사들의 연이은 신용등급 추락, 무차별적인 채권 회수 등, 온갖 불합리한 상황들을 겪으며 동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지난 반세기 동안 땀 흘려 일군 소중한 성과들이 구조조정의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있습니다”라고 토로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은행권에 대한 불만으로 해석됐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25위에 오른 동부건설은 2012년까지 2조 5000억 원에 달하는 매출액을 기록했지만 국내 주택경기 침체로 2013년부터 실적이 급락했다. 지난해는 3분기까지 매출액이 7600억 원에 그쳤다. 당기순이익도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적자였다.
건설업계에서는 동부건설의 추락이 국내 주택 건설에만 치중하고 해외 사업에 나서지 않은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센트레빌’을 앞세워 고급 아파트 이미지를 심는 데는 성공했으나 국내 주택 경기가 침체하자 돌파구를 마련하기 힘들었다는 얘기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해외 사업에 강한 쌍용건설마저 국내 주택 경기 침체가 큰 걸림돌이 됐다고 할 정도인데 국내 주택에 치중한 동부건설은 오죽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동부건설이 공사하고 있는 ‘김포 풍무푸르지오 센트레빌’ 조감도.
현재 동부건설 최대주주는 김준기 회장으로 지분 23.97%를 보유하고 있다. 동부CNI 15.55%, 김 회장의 장남 김남호 부장이 4.05%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진다면 감자 등을 통해 이들 지분은 보잘것없을 만큼 축소된다. 사실상 동부건설 경영권을 놓은 셈이다.
심각한 것은 동부건설 법정관리 신청으로 불거진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협력업체 줄도산, 투자자들과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의 손실, 공사 중단에 따른 피해, 동부그룹 전체에 대한 악영향 등 예상 가능한 후폭풍만도 메가톤급들이다.
동부건설의 협력업체는 2000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동부건설의 부채 6785억 원 가운데 상거래 관련 부채만 3179억 원에 달하는 만큼 중소 협력업체들의 줄도산이 우려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동부건설 협력 중소기업 23곳에 대해 특별점검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2000개가 넘는 업체 중 23곳만 점검한다고 해서 얼마나 큰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상, 동부건설이 진행하고 있는 모든 공사는 일단 중단된다. 이 때문에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또 기존 입주자들도 법정관리 신청으로 센트레빌 브랜드 이미지가 하락해 자산 가치가 떨어질 염려도 있다. 건설업계 다른 관계자는 “건설사 법정관리가 아파트 가격에 큰 악영향을 주지는 않아 기존 입주자들의 피해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다만 입주 예정자들에게는 하자보수기간을 담당할 회사가 없어지는 것이므로 피해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동부건설은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 슬라이딩센터, 인천국제공항 진입 도로 등 대형 국책사업도 진행하고 있어 공사 지연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동부건설 주식 투자자는 물론 900여 명의 회사채 투자자들도 손실을 피하기 힘들다.
가장 큰 관심은 아무래도 동부그룹 전체에 쏠려 있다. 잇단 자산 매각과 동부제철 채권단 자율협약, 동부하이텍 매각 실패 등에 이어 동부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함으로써 동부그룹 전체가 위태로워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팽배해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과 동부그룹은 동부건설 법정관리가 다른 계열사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계열사 간 거래나 출자 비중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장 큰 문제가 됐던 동부제철·동부건설을 놓음으로써 동부그룹 구조조정이 일단락됐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금융 계열사는 물론 동부팜한농·동부CNI 등엔 문제가 없다”며 “동부메탈이 어렵긴 하지만 2016년까지 매각하기로 결정된 터다”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