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백아무개씨(남·46·전직 학원장)는 이 얘기를 경찰로부터 전해듣고 쇼크를 받았다. 지난 8년 동안 자신과 내연관계를 유지해온 김아무개씨(여·29·전직 학원강사)가 백씨의 외6촌이었던 것. 백씨는 그렇게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오면서도 김씨가 친척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현재 백씨와 김씨는 쌍방 고소, 고발을 한 상황이었다.
백씨는 김씨로부터 내연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에 시달리다 공갈 및 명예훼손으로 김씨를 경찰에 고발했고 또 김씨는 백씨가 자신을 망친 남자라며 인터넷 곳곳에 비방하는 글을 올린 데 이어 혼인빙자간음으로 고소를 했다. 한때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서 지금은 소송을 걸 만큼 미워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경찰 조사에서 서로 가까운 친척사이임을 알고는 허탈감에 빠져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인 12월25일 K시 홈페이지와 또다른 K시 홈페이지 게시판에 한 남자에게 짓밟혔다는 여자의 애절한 사연이 올랐다. 내용은 유부남인 남자가 한 여자를 8년간이나 속이며 이용해왔다는 것이었다.
한맺힌 이 여자의 얘기는 상대 남자뿐만 아니라 남자의 아버지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저지른 비리, 남자가 학원을 운영하면서 저질렀던 잘못들, 남자의 형이 교사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것 등 남자쪽 전가족에 대한 비방으로 이어졌다. 철저히 한 남자를 매장시키려는 여자의 한이 절절히 배어 있었다.
이 글을 올린 사람은 대구에 사는 김아무개씨였다.
김씨는 게시판에 이 글을 올리고나서 두 달 정도가 흐른 지난 2월19일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백씨를 혼인빙자간음죄로 고발하기 위해 대구 수성경찰서를 찾았다. 그런데 김씨는 고발진술이 끝난 뒤 구속되고 말았다. 이미 백씨가 김씨를 공갈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을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문제의 김씨와 백씨를 처음 만난 것은 8년 전. 당시 백씨는 대구시내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김씨가 이 학원에서 과학과목 강사로 일하게 된 것이 두 사람이 만나게 된 동기였다. 첫 만남에서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백씨는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그럼에도 김씨는 백씨의 사랑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백씨가 자신의 부인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씨에게서 김씨 자신과 미래를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는 나이가 서른에 다가가면서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영원히 가정이 있는 남자만을 바라보고 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즈음 백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학원사업을 그만두게 돼 김씨도 더 이상 학원강사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두 사람의 만남 횟수도 점차 줄어들었다. 백씨는 김씨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김씨는 지난해 12월 백씨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백씨에게 부인과 이혼하라고 요구한 것. 그러나 백씨는 자신의 가정을 깰 수 없었기에 김씨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8년 동안이나 백씨만을 바라보고 산 김씨에게 백씨와 헤어진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백씨가 이혼을 거절하자 김씨는 헤어지는 대가로 백씨에게 위자료를 요구했다. 일시불로 3천만원과 10년간 매달 1백50만원을 달라는 조건이었다.
백씨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김씨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업이 망해 자금사정이 좋지 않던 백씨에게 매달 1백50만원은 너무 무리한 액수였다. 백씨는 3천만원을 주면서 김씨를 무마하려고 했다. 백씨는 김씨로부터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백씨를 원망하는 장문의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백씨는 지인들로부터 자신과 가족에 관한 내용이 인터넷에 올라 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백씨와 김씨와의 관계를 모든 가족들이 알게 됐다. 백씨는 K시에 전화를 걸어 홈페이지에 올린 자신과 관련된 글을 삭제하도록 요청했다.
이 같은 백씨의 대응에 김씨 또한 가만 있지 않았다. 자신이 올린 글이 삭제될 때마다 새로운 글로 도배를 했다. 김씨는 인터넷뿐만 아니라 비방 전단을 만들어 백씨의 집 주변과 학원 주변에 뿌리기 시작했다. 백씨가 이를 만류했지만 김씨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이상 포기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백씨가 계속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김씨는 전단지에 김씨 가족의 얘기까지 덧붙였다. 게다가 김씨는 전단지를 백씨의 형이 교사로 근무하는 한 고등학교 담벼락에까지 붙였다.
이에 백씨는 김씨가 매달 지급하라고 한 1백50만원을 주면서 무마에 나섰지만 김씨는 10년치를 한꺼번에 계산해 일시불로 6억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또 백씨의 아들이 다니는 학교까지 찾아가 백씨의 아들까지 위협했다. 아들에게 유학을 떠나라고 요구하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던 것이다. 김씨 때문에 온 집안이 파탄에 이르게 되자 참다 못한 백씨는 김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이 이렇게 확대되자 두 사람의 얘기는 양쪽 가족들에게 알려질 수밖에 없었고, 가족들 사이에서 두 사람이 가까운 친척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견원지간으로 치닫던 두 사람의 관계는 알고보니 가까운 친척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친척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뒤 김씨는 일단 불구속으로 석방됐다. 경찰은 “백씨측이 김씨에 대해 가혹한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해당 사건에 대해 고발을 취하하면 최대한 선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