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기대감으로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들의 주가가 들썩이고 있다. 왼쪽은 이재용 부회장. 오른쪽은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삼성그룹 상장사는 18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지배구조와 직접 관련한 종목은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SDS,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삼성물산, 5개로 압축된다. 모두 오너 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은 일찌감치 상장돼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곳이고, 제일모직과 삼성SDS는 지난해 새로 상장했으며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가 3세들이 지분을 보유했다는 차이가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7.54%나 갖고 있다. 삼성전자 지분가치만 14조 원이 넘는다. 그럼에도 시장가치는 한동안 20조 원에 머물렀다. 계산상으로 총자산 200조 원이 넘는 삼성생명의 본질가치는 6조 원에 불과했던 셈이다.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은 자산으로보다는 경영권으로서 가치가 있는 만큼 이건희 회장 중심으로 경영권이 안정되던 시기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삼성생명 시가총액은 24조 원까지 치솟았다.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 지분을 일부 인수한 게 계기다. 증시 관계자는 “삼성생명의 사업가치가 달라졌다기보다는 내재했던 경영권 프리미엄이 후계구도와 관련해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기업가치가 높아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를 비롯해 다른 계열사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제일모직과 합병해 통합지주사가 될 것이란 관측이 최근 제기됐다.
하지만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삼성SDI와 삼성화재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합병시 신규 순환출자가 형성되는데, 이를 해소하려면 제일모직이 현재 삼성물산 대주주의 지분을 매입해야 하고 이 경우 조 단위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일모직-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이라는 현 지배구조에서 합병이 이뤄지면 ‘합병법인-삼성전자-삼성SDI-합병법인’의 순환출자구조가 된다는 뜻이다. 신규 순환출자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결국 삼성의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투자 방정식에서 핵심을 이루는 곳은 제일모직과 삼성SDS다. 제일모직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해 있고, 삼성SDS는 그룹의 중심부인 삼성전자와 직접 연결돼 있다. 현재 제일모직에 대해 증시에서는 적정주가를 10만 원으로 보는 견해와 20만 원 이상으로 보는 견해가 공존한다.
우선 10만 원 정도로 보는 견해는 측정이 어려운 경영권 프리미엄을 뺀 계산이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은 “제일모직의 오는 2020년 매출액은 9조 6000억 원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금흐름 가치, 순차입금 등을 모두 감안한 적정 시가총액은 11조 7333억 원”이라며 “이를 고려한 적정 주가는 10만 1178원”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후자는 삼성의 경영권 가치를 적극 반영한 견해다. 전용기 현대증권 연구원은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고려한 주가 수준은 12만 원 정도로 볼 수 있지만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의 수혜를 감안하면 8만 원 정도의 프리미엄을 붙일 수 있다”며 목표주가를 20만 원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12월 18일 상장 이후 제일모직 주가평균은 약 14만 원이다. 분석이 어떻든 일단 시장에서는 사업가치 외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일부 인정한다고 봐야 한다.
물론 제일모직에 내재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숫자로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약 5조 원에 육박하는 삼성생명 지분가치와, 삼성생명이 가진 14조 원이 넘는 삼성전자 지분가치를 합하면 현재 제일모직의 시가총액인 18조 원과 비슷하다. 하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이 100% 제일모직 시장가치의 전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본질 사업가치가 12조 원 정도라면 경영권 프리미엄이 6조 원 정도 반영돼 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제일모직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제한적인 이유에 대해 “제일모직이 지배구조 정점에 있지만, 삼성생명을 통해 간접적으로 삼성전자와 금융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 데다, 그 연결고리도 금산분리 등의 제약 등으로 도전 받고 있는 탓에 삼성생명 경영권 프리미엄을 조금 웃도는 정도의 가치만 인정받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고 해석했다.
한 펀드매니저는 “내부적으로는 제일모직의 경우 삼성그룹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되는 회사인 데다, 시총 상위 종목임에도 시장에 풀린 물량이 제한적이어서 충분한 물량을 확보해두자는 방향”이라며 “지금 경영권 프리미엄의 정도를 정확히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고유 사업가치 아래로 주가가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이서현 사장 삼남매의 후계구도도 변수다. 아직 ‘자매 사장’들은 제일모직과 삼성SDS의 주요주주일 뿐 어느 한 계열사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이들 자매 사장이 계속 현재 상태로 남아있으리라 보는 견해는 많지 않다. 자매 사장이 현재 맡고 있는 호텔과 레저, 패션 등의 사업부문을 별도로 떼서 독립한다면 이 부회장과 제일모직의 경영권 프리미엄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삼성SDS는 제일모직과 달리 경영권 프리미엄이 아닌, 사업 성장에 따른 기업가치 상승이 주가의 주동력이다. 이 부회장이 보유한 지분의 가치가 충분한 수준의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할 수준이 될 때까지 삼성SDS 기업가치는 우상향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시장에서 기준을 삼고 있는 가격 수준은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20.4%와 삼성전자 지분 3.38%를 상속 또는 증여 받는 데 따른 세금 약 6조 원이다. 이 부회장 등 삼남매가 보유한 삼성SDS 지분율은 약 20%다. 삼성SDS의 시가총액이 30조 원, 주당 38만 원이 넘으면 6조 원 이상이 된다. 삼성SDS의 상장 후 종가평균은 약 33만 원이다.
물론 변수는 있다. 삼남매가 기존 보유한 자산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고, 이 회장 지분을 이 부회장 혼자 받을지, 남매가 나눠 받을지도 미지수다. 이들 삼남매가 삼성SDS 지분을 통해 필요한 경제적 가치가 얼마인지 정확히 측정이 어렵다는 뜻이다.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삼성SDS의 경우에는 후계구도의 변수가 워낙 많아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한 기업가치 산정이 상당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