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의 S중·고교 전경. 교육계는 이 계통에서 꽤 유명인사로 알려진 김 교장이 학력위조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지자 매우 당혹스런 모습이다. | ||
특히 구속된 교장 김아무개씨(71)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중인 이 계통의 유명인사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눈길을 끌고 있다. 더욱이 김 교장에게서 학교 졸업장을 ‘사들인’ 학생(?) 56명 중 17대 총선 및 시의원 출마자, 현역 서울시 구의원, 공무원 등과 스님, 목사 등 17명은 이 졸업장을 활용해 대학에까지 입학한 것으로 알려져 사건의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 7월27일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인 서울 강서구 S중·고교 김아무개 교장을 대학입학전형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김 교장이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졸업 학력자 56명에게 S중·고등학교를 다닌 것처럼 학적부를 조작하고 졸업장을 발급했으며, 그 대가로 개인당 1백만~8백만원씩 총 2억4천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초 이 학교에서 졸업장을 매매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김 교장에 대한 내사를 벌여온 경찰은 이날 김 교장을 비롯, 중·고졸 학력이 필요한 사람들을 김 교장에게 소개시켜준 알선책 손아무개씨(49) 등 두 명과 김 교장에게 돈을 주고 졸업장을 받아 대학에 입학한 박아무개씨(40) 등 16명을 입건했다고 발표했다.
또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일반인 5명에게 S중·고교를 소개시켜준 뒤, 김 교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은 이들을 자신이 재직하는 대학에 입학시킨 지방 S대 강아무개 교수(39)와 교직원 6명도 입건시켰다고 밝혔다. 김 교장과 함께 ‘일’을 도모한 S중·고교 교무과장 함아무개씨(40)는 불구속 입건조치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 교장이 S중·고교 학생이 아닌 외부인들에게 졸업증명서를 발급한 것은 지난 2001년부터. 일반 학교에서 적응에 실패한 학생 등의 교육을 담당하는 대안학교의 교장으로 수차례 매스컴에 소개된 후 그 명성을 듣고 만학의 꿈을 버리지 못한 40~50대들이 대거 학교를 찾아오면서 김 교장은 자연스럽게 ‘유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선 김 교장이 “가방끈 짧은 게 한이다”는 이들의 간곡한 ‘청’을 거부하지 못하고 졸업장을 발급해 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김 교장은 개인당 1백만~8백만원을 받고 학교에서 제적당한 학생들의 생활기록부에 의뢰자들의 신상과 사진을 끼워넣어 S중·고교 학생으로 위장 등록시킨 뒤 졸업장을 발급했다.
시간을 두고 졸업장을 내준 경우도 있었지만, 대학 입시를 앞둔 의뢰자가 재촉하는 경우에는 심지어 10분 만에 ‘졸업을 시킨’ 적도 있다고 한다. 생활기록부를 고치는 작업은 김 교장과 교무과장인 함씨가 도맡았다.
한 번 손에 때를 묻힌 김 교장은 알선브로커로 알려진 손아무개씨 등과 손을 잡기도 했다. 경찰은 손씨 등이 종교 월간지 등에 학생 모집 광고를 내고 20명을 모집, 그 중 5명을 김 교장에게 소개해 졸업장을 받게 한 뒤 지방의 한 대학에 입학시켰다고 밝혔다.
학원가 일각에 ‘S학교가 졸업장을 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각계각층의 ‘만학도’들이 구름처럼 김 교장에게 몰려들었다. 대부분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으나 그 중에는 17대 총선 출마자, 서울시 현역 구의원 및 시의원 보궐 선거 출마자 등 정치지망생들도 상당수였다.
종교인들도 김 교장을 찾았다. 경찰 조사 결과 S중·고교에서 졸업장을 받은 56명 중 종교인은 스님이 무려 11명, 교회 목사도 1명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11명의 스님은 대부분 고아 출신이거나 전과 경력이 있는 ‘수련승’으로 전해졌다.
그로부터 신씨는 또 다시 한 달 만에 강 교수의 도움으로 S대학에 입학했다. ‘초졸’ 학력에서 대학 입학까지 불과 두 달밖에 소요되지 않은 셈. 말 그대로 ‘초고속 월반’이었다. 아무 탈이 없었다면 신씨는 내년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영업자인 정아무개씨의 경우도, 실제 초등학교 졸업자였으나 지난 2002년 2월 김 교장에게 돈을 주고 중·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하고 대학에 입학해, 올해 2월 대학을 ‘조기’ 졸업했다.
지난 4·15총선에 S당 후보로 출마해 고배를 마신 바 있는 권아무개씨(54)도 김 교장을 통해 이 학교 졸업장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권씨와 김 교장은 졸업장 ‘청탁’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 권씨가 서울 모 중·고교 설립자이자 한때 한국○○협회 회장을 맡았던 탓에 얼굴을 자주 마주쳤던 것으로 전해졌다.
권씨는 과거 대선 때 여당 후보의 유세특보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권씨는 지난 4월 총선이 끝나자마자 출국한 상태라 입건되지 않았다. 특수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권씨의 행방에 대해 “필리핀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장 사건은 지난 7월29일 검찰로 송치됐다. 경찰 수사 기록을 검토하고 있는 검찰은 김 교장이 졸업장을 발급하면서 받은 2억4천만원에 대한 대가성 여부와 사용 내역을 조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학교 수업을 전혀 받지 않은 56명에게 졸업을 인정한 것만으로도 형사처벌 사유를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 검찰은 김 교장이 알선브로커 손아무개씨에게 소개 대가로 돈을 지불했는지, S대학 등 지방 소재 대학과도 모종의 ‘밀약’이 있었는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해 일단 ‘브로커들이나 대학관계자들과의 직접적인 돈 거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한편 김 교장측은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돈은 대가성 뇌물이 아니라 수업료”라고 주장하고 있다. 졸업장을 발급한 ‘대가’가 아니라 개인별로 남은 학기에 따라 산출된 ‘등록금’이라는 것. 즉 중학교 졸업 학력인 사람은 고등학교 3년 12분기 등록금을 낸 것이며, 초등학교 졸업자는 중·고교 6년 총 24분기 등록금을 한 번에 납부했다는 얘기다.
김 교장측은 이 돈을 모두 학교 시설을 증축하거나 보수하는 데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구속 입건된 S학교 교무과장 함씨는 “일부에서는 (김 교장의) 재산 불리기가 아니냐고 지적하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그 돈은) 컴퓨터실, 음악실이 들어설 가건물을 세우는 데에 썼다”고 항변했다. 함씨는 “나도 조사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자세히 말하기는 곤란하다”면서 “운동장과 교실이 부족한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다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김 교장은 지난 99년 5월 학교 부지를 매입해 S중·고교를 운영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