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종환 전 행정관의 술자리 발언에서 비롯된 ‘김무성 수첩 사건’이 겨우 진화되던 여권 권력암투설에 다시 기름을 끼얹은 셈이 됐다. 사진은 12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을 시청하는 모습.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김무성 대표가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음해가 기가 막히다”고 불쾌감을 드러냄에 따라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껄끄러운 관계가 민낯을 드러냈다”는 반응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음 전 행정관이 청와대에 사표를 내는 등 직격탄을 맞았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정무수석실의 책임도 이에 못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이 1월 6일 음 전 행정관의 술자리 발언 내용을 전해듣고 즉각 조윤선 정무수석과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청와대 측에서는 그러나 ‘핵심 참고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준석 전 비대위원은 전혀 조사하지도 않고 김 대표와 유 의원에게 “음종환 행정관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는 내용만 전했다고 한다. 술자리에서 벌어진 행정관의 일탈행위 수준으로 조용히 매듭지을 수도 있었던 사안인데, 청와대가 소극적으로 다루면서 당·청이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노출시켰다는 얘기다.
여권, 심지어 청와대 관계자들조차도 홍보수석실과 정무수석실을 이번 사건의 책임자로 겨냥하는 것은 이들과 ‘최악의 사고뭉치’인 민정수석실 때문에 청와대에 잠시도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불만을 보여준다. 이들 세 수석실을 ‘못난이 3형제’라는 자조 섞인 표현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내려갈 때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아마도 이들 때문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문건 유출은 박관천 경정의 범행으로 마무리됐으나 민정수석실은 7개월 동안 이를 쉬쉬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정무수석실도 소위 친박계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됐다는 의미로, 당 출신 청와대 참모를 일컫는 말)’들로만 주로 채워졌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친이계의 한 전직 의원은 “정무수석실은 주요 사안에 대해 국민들의 시선에서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때로는 직언도 하면서 대통령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정무적으로 보좌해야 한다”며 “이런 곳이야 말로 다양한 출신성분의 능력 있는 인사들로 구성해야 하는데, 박근혜정부는 충성스러운 사람들만 데려다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국민들의 인식차를 좁혀줘야 할 정무수석실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없게 짜여졌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명박정부 때까지 유지돼 온 특임장관(정무장관) 제도를 별다른 대안도 없이 폐지하는 바람에 청와대와 여야 정당의 소통이 더욱 부실하게 이뤄지게 됐다는 비판도 나왔었다.
홍보수석실도 인적 구성에서부터 역할 수행에 이르기까지 많은 우려의 시선을 받았다. 1기 홍보수석은 역대 최초로 PD 출신(이남기)이 발탁됐고, 극보수층에게만 인기가 있고 정적이 많다는 평가를 받아 온 신문 칼럼니스트(윤창중)가 대변인에 임명됐다. 또 한 명의 대변인이었던 김행 전 대변인은 진작부터 존재감 없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뿐 아니라 정권 출범 초기에도 계속 국정홍보처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여권 내에서 제기됐던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민정·정무·홍보수석실에 대한 이런 우려가 결코 과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증명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 정부조직 개편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을 때 정무수석실은 아무런 존재감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자청, 국민들 앞에서 격앙된 표정과 목소리로 야당을 직접 비판하고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민정수석실은 첫 조각 때부터 인사검증 면에서 커다란 구멍을 드러냈다. 장관 후보자들이 재산·납세·병역 등 서류만으로도 걸러낼 수 있는 사안으로 잇따라 나가 떨어졌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경우 업자로부터 성 접대를 포함한 향응을 제공받은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별 다른 제지 없이 임명됐다.
최악의 사건은 홍보수석실에서 터졌다. 2013년 윤창중 대변인이 인턴 성추행 사건으로 전격 경질됐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민정수석실에서 ‘찌라시’ 수준의 문건이 생산돼 외부로 수도 없이 유출되는 국기문란 사건이 벌어지고, 문건 유출 사실을 인지한 뒤 7개월이 지나도록 쉬쉬 하며 제대로 된 조치도 취하지 않는 무능력한 청와대의 모습은 이미 진작부터 그 싹이 보였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청와대 조직 개편 방침을 밝혔다. 특보단을 설치하고 수석실 체제를 다시 짜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를 포함한 여권 내부에서도 민정·정무·홍보수석실 등 ‘못난이 3형제’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벌써부터 “시스템 개편은 답이 될 수 없다”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조직과 기능을 새롭게 짜고 사람 몇 명을 교체한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문제점들이 해결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내에서 중립적인 인사로 분류되는 한 초선의원은 “민정·정무·홍보수석실의 공통점은 모두 소통과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이라는 점”이라며 “결국 해답은 왜 박근혜정부가 소통에 실패하고 있는지 원인을 규명하는 데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대통령부터 먼저 비밀주의에 빠져 소통 노력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참모들이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설 여지를 안 줬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