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가 나간 다음날인 지난 9일, 꼬리를 무는 의문에 떠밀려 기자는 직접 용산 홍등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제의 업소인 ‘○○장’은 이미 휴업 상태였다. 초저녁부터 불이 꺼진 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업주 민아무개씨(32)를 수소문했지만 그의 행적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대신 주변 업소 관계자들이 나섰다. 이들은 언론의 보도 내용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성토’했다. 김씨가 임신한 채 성매매에 나선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이 김씨의 주장을 너무 부풀려 업주에 대한 여론몰이를 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진실’은 대체 무엇일까. 주변 업주와 윤락여성, 인근 가게 주인 등의 얘기와 사건 담당 경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런 얼개가 그려진다.
김씨가 업주 민씨 아래서 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 3월20일께부터. 이전에 평택의 윤락가에 몸담았던 김씨는 2천만원의 빚을 선불금으로 떠안은 채 용산으로 옮겨왔다. 이때 김씨는 이미 임신 8개월째였다.
그러나 업주 민씨를 비롯해 ‘홍등가 사람들’은 당시 김씨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다. 설사 김씨가 임산부라는 사실을 숨겼다 하더라도 그녀가 임신 8개월째라는 것을 주변에서 정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까. 업소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김씨는 출산 때까지도 배가 확연히 나오지는 않은 상태였던 것 같다.
김씨가 평소 이용했던 옷가게 주인은 “김씨는 출산 전까지도 66사이즈의 옷을 입었다. 배가 좀 나오기는 했지만 살이 쪄서 그런 줄 알았지 임신한 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고 전했다. 여성복은 대부분 55, 66, 77사이즈로 나오는데 66사이즈는 중간 정도의 크기다.
이 같은 주변의 전언을 살펴보면 업주 민씨가 김씨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만약 민씨가 김씨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애초 김씨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임신 8개월이라면 최소 서너 달은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인데 일하지 못할 여성을 굳이 빚을 떠안으며 받아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대목에선 김씨에게 의문의 화살이 향할 수 있다. 자신의 임신 사실이 밝혀지면 일을 하지 못하게 되고 선불금도 갚을 길이 없어질까봐 이 사실을 숨겼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정작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도 임신한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3월 말 용산으로 온 뒤 업주 민씨에게 “몸이 이상한 것 같은데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말했으나 민씨가 들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김씨 자신도 임신 8개월이 될 때까지 자신의 임신 사실을 모를 수 있었을까.
홍등가 주변 사람들은 성매매 종사 여성의 특성상 생리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김씨가 실제로 자신의 임신 사실을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이를 알고서도 숨겨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만약 김씨가 임신 사실을 숨기고 민씨 업소로 옮겨 일해온 것이라면 김씨 역시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무튼 용산 홍등가에 온 뒤 김씨는 ‘아프다’는 이유로 쉬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김씨가 “허리 디스크로 몸이 좋지 않다”, “배가 아프다”고 하소연하면 대개는 그냥 쉬도록 했다는 게 주변 업주들의 애기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업주 민씨가 김씨의 임신 사실을 안 것은 김씨가 자신의 아이를 출산한 지난 5월21일이었다고 한다. 김씨가 일을 하러 나오지 않자 동료 윤락여성이 김씨의 방에 찾아갔다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민씨에게 연락해 병원으로 옮겼고 그때 아이를 출산했다는 것이다.
이후 김씨는 두 달간 일을 하지 않고 쉬었다고 한다. 업주 민씨는 자신이 보약도 지어 먹이며 김씨를 돌봤는데 자신을 ‘짐승 같은 포주’로 몰아붙인 언론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도 민씨는 김씨가 임신했다는 것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출산 직후에도 두 달 넘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출산 후 숙식을 한 비용을 빚으로 떠넘기지도 않았다는 것.
매매춘 이외에 민씨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김씨가 병원에 가자고 했을 때 보내주지 않은 것이라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그 때 병원에 갔으면 임신 사실을 알았을 것이고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도 않았으리란 이유에서다. 실제로 민씨는 ‘윤락행위 방지법 위반’혐의로만 입건돼 불구속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출산 뒤 한동안 휴식을 취한 김씨는 8월 중순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름 정도 일하다가 경찰청 성매매여성 긴급지원센터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김씨는 현재 성매매여성 재활상담기관인 ‘다시하자센터’의 보호를 받고 있다. 김씨의 아이는 그녀의 뜻에 따라 입양을 위해 사회복지재단에 맡겨진 상태다.
그렇다면 김씨는 왜 업주 민씨로부터 ‘탈출’했던 걸까. 업주들과 동료 여성들은 ‘해결책이 안 보이는 돈 문제’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용산 홍등가에서 오랫동안 영업해온 업주 남아무개씨(46)는 “결국 극심한 불황이라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김씨 또한 영업이 잘 되지 않아 빚(선불금) 갚을 일이 막막해지자 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이해한다. 사회적 분위기가 성매매 업소에 호의적이지 않은 것은 알지만 최소한 진상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살펴보고 써야 하지 않나”라며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