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의 이장 김병한씨는 “그동안 멧돼지나 너구리, 고라니 등 산짐승이 농작물을 망친 적은 있었지만 멧돼지가 인삼밭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처음이다”고 전했다. 김씨에 따르면 인삼 수확철에 인삼도둑이 든 적은 있었지만 짐승이 인삼밭을 대대적으로 공격한 것은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라는 것.
김씨가 전하는 ‘멧돼지 습격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추석연휴가 시작되던 지난 9월 하순, 멧돼지 한두 마리가 한밤중에 마을 인삼밭에 내려와 인삼 몇 뿌리를 캐먹고 돌아갔다. 다음 날 인삼밭 주인 안아무개씨(56)는 발자국을 보고 산짐승이 내려온 것으로 생각하고 추가피해를 막기 위해 간이 울타리를 쳤다. 그러나 인삼 맛에 매료된 탓이었을까. 일주일 뒤 이들 멧돼지는 대여섯 마리나 되는 온 가족을 다 데리고 인삼밭에 쳐들어와 마음껏 식욕을 채우고 밭의 절반을 망가뜨려 놨다.
멧돼지 가족의 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흘 뒤 다시 인삼밭을 습격한 멧돼지 가족은 나머지 절반의 인삼밭도 모두 ‘접수’했다. 이 멧돼지들은 주로 영양분이 몰려 있는 인삼의 뿌리만을 지근지근 씹어먹었다.
안씨는 “도매상에게 미리 선불금까지 받은 상태인데 이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망연자실해 했다.
그러나 피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엽사들과 농민들에 따르면 멧돼지는 한번 ‘맛’을 들이면 그 먹잇감을 다시 찾아오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또 멧돼지들은 자기들끼리 영역 개념이 확실해 자신의 구역은 꼭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에 영주시는 ‘습격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대한엽사협회에 등록된 엽사 8명을 안정면으로 보내 멧돼지 소탕작전에 나섰다. 하지만 생태계 보존을 위해 멧돼지를 포획하지는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쫓아내기만 했을 뿐이다.
멧돼지 소탕전에 투입됐던 엽사 최돈모씨는 “정부에서는 생태계 보존을 위해 멧돼지 수렵은 못하게 한다. 엽사들은 단지 마을로 못 내려 오도록 다른 곳으로 쫓아내기만 할 뿐이다”며 “멧돼지가 아무리 잡식성이라고 하지만 인삼까지 먹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최씨에 따르면 상당수 농가에서 유기농법을 도입해 농사를 지으면서 멧돼지들의 농가 ‘출입’이 더 잦아졌다고 한다. 최씨는 “과일이나 채소뿐 아니라 유기농 과정에서 생겨난 지렁이 등 멧돼지들이 좋아하는 벌레도 많아져 앞으로 멧돼지들에 의한 피해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포획 금지 대상인 이들 멧돼지 떼는 마치 게릴라처럼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줄기를 타고 강원, 경북, 충북지역 농가를 돌아다니며 심야의 무법자로 군림하고 있다.
최씨는 “멧돼지는 천적이 없는 데다가 몇 년 전부터 수렵이 금지돼 그 수가 급증했다. 이번처럼 경북지역에 피해를 끼쳐 다른 곳으로 쫓아내면 멧돼지 떼는 소백산맥을 끼고 있는 충북이나 태백산맥을 끼고 있는 강원도로 흩어져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경북지역의 피해는 지난해에만 6백86건에 22억여원 상당에 이른다.
영주시청의 한 관계자는 “멧돼지에 의한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멧돼지 수렵이 금지돼 뾰족한 방법도 없는 실정이다”고 털어놨다. 농민들로서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 멧돼지들이 무서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