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경찰서에서 제작한 실종 여대생 노씨를 찾는 수색 전단. | ||
실제로 화성경찰서측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우발적 범행인지, 치밀한 납치 범행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범행의 방정식을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는 것. 과연 이번 실종 사건이 떠올리기 싫은 또 다른 ‘추억’으로 남게 되는 걸까.
지난달 27일 오후 8시25분께 K대 2년에 재학중인 노아무개씨(여·21)가 태안읍 내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끝내고 “집으로 간다”는 문자메시지만 남긴 채 사라졌다. 다음 날인 28일 실종된 노씨의 휴대폰과 옷가지 등이 발견돼 경찰은 노씨가 범죄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보고 대대적인 수색과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봉담읍 수기리에 있는 노씨의 집은 스포츠센터에서 차량으로 불과 17분이면 다다를 거리. 노씨의 유류품은 왕복 2차로인 43번 국도변 협성대에서 노씨의 집쪽으로 가는 도로가에 2백~7백m 간격을 두고 모두 여덟 군데에 떨어져 있었다.
경찰은 이 같은 사실로 보아 납치범이 두 사람 이상일 가능성과 노씨를 차량으로 납치한 뒤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차 안에서 옷을 강제로 벗겨 길 밖으로 버렸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사 관계자는 “노씨가 173cm의 큰 키여서 노씨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명 이상이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단 경찰은 인근 불량배들에 의한 ‘우발적 납치’ 범행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발견된 휴대폰의 상태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
또 다른 수사 관계자는 “통상 납치범들은 피해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게 휴대폰 전원을 끄거나 배터리를 분리해서 버리는데 노씨의 휴대폰은 전원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 발견됐다. 비전문가의 소행으로 읽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 탓에 노씨의 납치 지점과 시간을 추측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우발적 범행인가
그러나 단순히 우발적 범행으로만 보기에는 몇 가지 면에서 무리가 뒤따른다.
우선 노씨의 옷가지가 너무나도 깨끗한 상태로 발견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화성경찰서 과학감식반은 “노씨의 옷가지가 반항의 흔적도 없이 마치 노씨 본인이 스스로 벗은 것처럼 너무 깨끗한 상태로 발견됐다”고 말했다. 만약 인근 불량배들이 우발적으로 노씨를 납치한 것이라면 이 과정에서 옷가지들에 저항 흔적이 남았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경찰은 “노씨가 납치범들의 위협으로 항거불능의 상태에서 스스로 옷을 벗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마치 납치범들이 ‘메시지’를 전하듯 길가에 버린 옷가지들도 우발적 범행 가능성을 낮추는 부분이다. 이들 옷가지 등 유류품들은 짧게는 2백m에서 길게는 7백m 거리를 두고 길가에서 발견됐다.
한 수사 전문가는 “거의 모든 범인들은 피해자의 유류품이나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은 은닉하거나 없애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피해자의 물품을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버리고 간 것은 처음 본다”고 의문을 나타냈다.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유사시 피해자의 유류품들을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숨기려 하는 게 일반적인 범죄심리라는 지적이다. 만약 범인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나중에 오히려 피해자의 옷가지를 파묻거나 태우려 하지 않았을까.
평소 한적한 편인 도로라고는 하지만 납치범들이 주위의 시선을 끄는 위험을 감수하고 옷가지를 차례로 버린 이유도 석연치 않다. 즉 지능범이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범행과 무관한 장소에 일부러 유류품을 흘려 놓았을 가능성도 있다. 한 경찰관은 “범인들이 범행을 저지른 뒤 눈속임을 위해 노씨의 옷을 벗기고 차례로 던졌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범인들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차량을 몰며 노씨의 유류품을 버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노씨의 휴대폰과 가방, 일부 속옷은 차량 진행 반대 방향의 차선 도로변에서 발견됐다. 범행 이후 길을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휴대폰 등을 버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현재로서는 추측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범죄심리학자들은 ‘길가에 버린 피해자의 유류품’에서 우발적 및 계획적 범행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짚고 있다. 경찰대학 표창원 교수(범죄심리학)는 “상당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고의성이 있다면 범인들이 일부러 수사에 혼선을 주기위해서거나 노씨가 납치됐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한 짓일 가능성이 있다”며 “반면 범인들이 술에 취했거나 본능적 욕구에 의해 흥분된 상태에서 노씨의 옷을 벗기고 버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표 교수는 흔히 납치범들이 위치추적을 피하기 위해 핸드폰을 버리는 경우는 있지만 자신들의 이동경로를 보여주는 피해자의 유류품을 차례로 내버린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납치지점은 어디
범인들이 노씨를 납치한 지점 역시 아직 의문이다. 노씨 가족들은 노씨가 평소 수영장에서 나와 K여객 소속 34번 버스를 타고 와우리공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귀가한다고 전했다. 경찰이 34번 버스 CCTV를 수거해 노씨가 오후 8시30분께 버스를 타고 오후8시40분쯤 와우리공단에서 하차한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와우리공단은 저녁에도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번화가여서 범인들이 이 곳에서 노씨를 납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수사관은 “노씨가 택시나 차량을 타고 이동중에 납치됐거나 택시에서 내려 집 근처에서 납치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찰은 CCTV 분석 결과 노씨가 하차한 정류장에서 노씨를 뒤따라 내린 남성 한 명과 여성 한 명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들이 ‘최후 목격자’일 가능성이 커 신원 확인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경찰은 노씨를 찾기 위해 수색인원을 보강하고 노씨 주변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경찰은 “노씨의 친구 관계, 노씨 부모의 채권 채무관계를 다 뒤져보았지만 문제가 될 만한 사항은 없었다”며 “일단 범인들이 유류품을 버린 장소를 보아 이 일대 지리를 잘 아는 자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경찰은 노씨의 마지막 유류품이 발견된 보통리 저수지 근처를 집중 수색하며 노씨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저수지 ‘물빼기’ 작업을 하고 있다. 경찰은 “노씨 가족들이 ‘혹시’하는 심정으로 저수지 물을 빼달라고 해 관계기관의 협조를 얻어 물빼기 작업을 시작했다. 물빼기 작업은 일주일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연 노씨를 누가 왜 납치한 걸까. 이제 또 하나의 미스터리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