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한·중 간의 위장결혼 중 약 80%가 이씨 일당의 손을 거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의 검거로 한·중 위장결혼조직의 상당수가 와해돼 당분간 중국여성의 한국 유입이 뜸해질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올 정도다.
이들 알선조직의 수법은 이씨의 중국인 남편 장아무개씨(50)가 중국에서 취업을 위해 한국으로 오려는 여성들을 모집해오면 이씨가 브로커들을 통해 국내에서 모집한 이들 여성의 ‘서류상 남편’이 돼줄 남성들과 연결해주는 방식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2001년부터 전국적으로 10여 개의 브로커조직을 두면서 국내 입국을 원하는 조선족 여성으로부터 7만5천위안(약 1천2백만원)을 받아 모두 1백50여 건의 위장결혼을 알선하고 5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게 경찰의 시각이다. 한 수사관계자는 “이씨는 증거서류를 들이밀어야 마지못해 자백하고 있다. 이씨는 중국 연지시에 빌딩 3채를 가지고 있는 등 상당한 부를 보유하고 있다. 한·중 위장결혼 알선조직의 거물인 이씨가 이 일로 최소 수십억원을 챙겼을 것”이라고 전했다.
더욱이 이씨는 M국제결혼정보컨설팅사를 세워 번듯한 벤처기업 사장 행세까지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5월에는 이 회사를 결혼전문 벤처기업으로 코스닥에 등록할 계획을 세우고 자금조달 목적으로 투자설명회도 개최해 총 2억여원의 투자금을 유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씨의 한국 생활이 처음부터 화려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씨는 중국에서 명문 사범대를 졸업한 교사 출신으로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엘리트에 속한다. 또한 이씨 본인이 공산당 당원이며 아들(28)은 공안(중국의 경찰)으로 중국에서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교사월급이 우리 돈으로 17만원에 불과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는 달리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이씨는 오로지 돈을 벌 목적으로 지난 99년 위장결혼을 해 한국에 들어왔다. 이씨는 입국 후 식당 종업원과 파출부 생활을 전전하는 등 여느 조선족 출신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2001년 중국 내 조선족 여성 등이 위장결혼을 통해 국내에 들어오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본격적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 이씨는 아는 사람들을 통해 조선족 여성들의 입국 수속과 이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데 도움을 줬다. 한국으로 입국하려는 조선족들 사이에서 이씨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평이 나돌면서 이씨에게 위장결혼을 의뢰하는 건수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 경찰이 확보한 피의자 이아무개씨의 범죄 증거물들. 그녀는 증거 를 대야만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 | ||
사정이 이러하자 국내의 브로커들도 이씨와 선을 대려 혈안이 됐다. 이씨는 위장결혼 알선업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전국적으로 10여 개의 브로커 조직을 휘하에 두는 거물로 성장했다. 그 동안 지엽적으로 활동하는 브로커 조직은 있었지만 이씨처럼 전국적인 조직을 거느린 경우는 유일무이하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 또한 경찰에 따르면 이씨의 등장으로 한·중 위장결혼 브로커 조직의 일부는 와해되고 지역에서 활동하던 대부분의 조직은 이씨의 수하로 들어갔다고 한다.
한 수사관계자는 “이씨가 거느린 10여 개의 브로커조직 밑에 중간 브로커들이 있고 또 그 밑에 국내 남성 모집책이 있다. 그러나 모두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서 정확한 조직계보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극소수의 몇 명을 제외하면 이씨의 얼굴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이번에 검거된 브로커들도 이씨의 이름은 모르고 이씨를 ‘이 실장’으로 불렀다”고 설명했다.
수사팀은 그동안 베일 속의 ‘이 실장’을 추적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시켜왔다. 그러나 이씨는 일정한 주거도 없이 전국을 돌며 조직을 꾸렸고, 무려 15대나 되는 휴대폰을 번갈아 사용하는 등 보안에도 철저해 검거하기가 그만큼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이씨는 중국 사회지도층이나 기업체 사장 등에게 한국의 독신녀, 이혼녀 등을 소개해주며 돈을 챙기는 등 사실상 매춘알선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의 알선으로 중국 상류층과 위장결혼한 여성들은 무명 연예인 권아무개씨(33), 이혼녀 박아무개씨(32) 등 밝혀진 경우만 1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1천만원을 받고 이씨의 알선으로 중국인 상류층과 위장결혼을 한 뒤 중국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며 호텔 등지에서 관광과 매춘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이씨에 따르면 한류열풍을 타고 중국 일부 상류층에서 한국 여성을 ‘소개’받길 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매춘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 편법으로 이씨가 소개시켜준 한국 여성들과 위장결혼을 한 뒤 즐겼던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중국 상류층이 한국 여성과 위장결혼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경찰에 따르면 매춘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부부끼리 호텔에 들어가도 ‘부부확인증’을 요구한다고 한다. 즉 이씨에게 한국 여성 소개를 부탁한 중국 상류층은 이 부부확인증을 얻기 위해 위장결혼을 했던 것. 중국은 결혼에 필요한 행정절차가 허술해 조강지처와 이혼하지 않고도 위장결혼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또한 중국 일부 상류층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30대 여성을 소개받기를 원한 이유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20대 여성과 함께 다니면 중국 공안으로부터 매춘의 의심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씨의 소개로 중국으로 건너간 한국 여성들은 생계가 어려운 이혼녀이거나 신용불량자가 대부분이었다. 생활이 어려워진 한국 여성들이 중국으로 ‘원정매춘’까지 나가는 현실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