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피의자인 아들이 피살된 여인의 유일한 법정상속인으로 알려지면서 살해 동기와 함께 거액 유산의 향방을 두고 갖가지 추론이 나왔다. 그러나 피살된 여인의 ‘또 다른 친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최근 나타나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거액 유산의 유일한 상속인에서 존속살해범으로 전락한 아들과 뒤늦게 나타나 상속권을 주장하는 제2의 아들. 피살된 여인과 이들은 과연 어떤 인연의 고리를 맺고 있었을까.
이 기막힌 사연은 지난 5월25일 경북 경주경찰서가 친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박아무개씨(27)를 구속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경찰 조사에서 박씨는 친어머니 신아무개씨(54)가 평소 자신을 무시해왔고 사건 당일에도 자신의 뺨을 때리는 등 심하게 나무라 말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털어놨다.
한 수사관계자는 “범행은 우발적으로 일어났지만 가정사로 인해 오랫동안 신씨와 박씨 모자 사이에 불화가 있었고, 숨진 신씨가 최근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다녀서 어머니의 재산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것을 우려해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평소 박씨는 친구들에게 “어머니의 재산이 많은데 내가 유일한 법정상속인이다. 호적등본까지 떼어 봤는데 혈육은 나밖에 없다”고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 신씨에게는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한 남다른 가정사가 있었다.
박씨는 신씨가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90년대 중반 두 번째 남편이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자 신씨는 당시 17세이던 아들 박씨를 버려두고 세 번째 결혼을 했고, 그때부터 두 모자는 사실상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후 10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며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박씨는 지난해 우연히 신씨와 연락이 닿게 됐다. 자신을 내팽개친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이 컸던 박씨였지만 “지금은 내가 혼자 몸이고 몸도 불편하니 네가 내 간병도 하면서 같이 살자. 그래도 네가 내 친자식 아니냐”라는 신씨의 얘기를 듣고는 다시 어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한 지붕 아래 함께 생활하던 중 박씨는 신씨가 부동산 투자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법적으로 유일한 상속자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박씨는 신씨의 눈에 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도 했다. 그러나 상속 재산을 염두에 두고 별다른 직업도 없이 빈둥거리는 박씨를 신씨는 탐탁해하지 않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머니와 아들 사이엔 감정의 골만 깊어졌다. 자신이 신용불량자임에도 어머니 신씨가 달리 도움을 주지 않는 것도 박씨의 감정을 건드렸다. 그러던 지난 5월16일 두 모자는 여느 때처럼 말다툼을 벌였고, 결국 패륜의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어머니 신씨가 “네가 하는 일이 뭐 있느냐. 정신 차려라”는 말을 하며 뺨을 때리자 박씨가 홧김에 신씨를 목 졸라 살해하고 사체를 야산에 버렸던 것.
경찰 수사로 범행 일체가 밝혀지고 박씨는 구속됐지만 수사관들은 또 하나의 짐을 떠안았다. 신씨 시신을 수습하고, 유산 문제를 정리해 줄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법정상속인인 아들 박씨는 ‘고의로 직계존속을 살해한 경우 상속인이 되지 못한다’는 민법 조항(제1004조)에 따라 상속권을 박탈당할 처지. 수사관들은 할 수 없이 신씨의 친인척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던 지난 5월26일 놀랍게도 자신이 숨진 신씨의 또 다른 친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나타났다. 서른한 살의 최아무개씨(31)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경찰에서 최씨는 “내가 신씨의 첫 번째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채 같이 살다 헤어져 서류상으로만 남남으로 되어 있을 뿐 나도 친아들이고 박씨와는 씨 다른 형제다”라고 주장했다.
최씨의 얘기에 따르면 어머니 신씨는 이혼 후 자신의 아버지와는 연락을 끊었지만 자신과는 가끔씩이나마 왕래하며 지냈다는 것. 자라면서 신씨가 여러 차례 경제적 지원을 해줬고 자신이 결혼할 때는 아파트까지 장만해주는 등 뒷바라지를 해줬다는 것이다(이 같은 얘기는 이후 경찰 조사결과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고 한다).
최씨는 “세 번째 결혼도 실패한 어머니 신씨가 혼자 살면서 몸도 불편해지자 함께 살 것을 부탁했지만 내가 거절했는데, 이후 박씨를 불러들여 함께 살았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2의 아들’의 출현에 황당할 수밖에 없던 경찰은 박씨에게 최씨의 주장을 전했다. 그러나 박씨는 “최씨는 친아들이 아니고 나와는 배다른 형제다. 최씨를 한두 번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때 어머니 신씨가 나와는 배다른 형제라고 일러줬다”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최씨는 현재 친자확인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엄연히 법적으로는 신씨와 최씨가 남남이므로 소송을 통해 최씨가 신씨의 친자라는 것만 확인되면 신씨의 전 재산은 최씨가 상속받게 된다.
이에 대해 한 수사관계자는 “최씨의 친자 여부는 법원에서 가리겠지만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신씨가 최씨에게 아파트를 사주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등 친자식처럼 돌본 것으로 보인다. 친자식도 아닌데 성장할 때까지 그렇게 뒷바라지를 해줬겠는가”라며 최씨의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씨가 신씨의 친자라면 유산 문제는 깔끔하게 처리되지 않겠나. 그간 신씨의 형제자매와도 연락이 안되고 신씨의 부모도 사망한 후라 유산문제와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했는데 오히려 잘된 것 같다”면서도 “다만 어머니가 아플 때가 아니라, 어머니가 죽은 뒤에 아들이 찾아온 게 씁쓸할 뿐”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