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자자 6단
결승인 3국은 주장전. 부광 최정 5단과 곰소 김혜민 7단이 마주앉았다. 여자 이창호 최 5단은 ‘여류명인’과 ‘여류기성’의 타이틀 보유자. 여자 타이틀 3개 중 2개를 갖고 있으며 현재 ‘여류명인’을 3연패하고 있는 부동의 랭킹 1위. 김 7단은 대기만성의 표본. 물론 입단 전후에는 ‘보기 드문 기재’로 촉망 받았으나 결정타를 보여주지는 못하다가 나이 스물일곱, 입단 14년차 되는 2013년에 ‘여류국수’를 정복하면서 꽃을 피우고 있다. 대기만성형답게 별명도 ‘거북이’다.
예상은 최정의 우세였고 실제 대국도 시종 최정이 끌고 간 내용이었으나 결과는 김혜민의 승리였다. 김혜민이 악전고투하다가 막판에 뒤집었다. 한국 랭킹1위인 최정에다가 중국 여자정상 위즈잉 4단이 용병으로 가세해 막강 쌍두마차 포진으로 우승후보 1순위로 공인되고 있는 부광탁스로서는 개막전에서 시쳇말로 ‘반창고를 붙이며’ 체면을 좀 구긴 셈.
1월 17일 2라운드. 경주 이사금과 부산 삼미건설의 대결. 이사금은 이정원 3단 감독에 선수는 김윤영, 송혜령, 이민진 라인업. 경주의 맹장 이민진이 인기 배구선수처럼도 보이는 박소현에게 이겨 선취점을 올렸고, 지난해 9월 이유진보다 하루 먼저 입단한 열여덟 여고생 송혜령이 한국 여자바둑의 간판 박지은 언니를 잡아 이정원 감독을 즐겁게 했다. 김윤영은 박지연에게 졌지만 이사금의 2 대 1 승리.
1월 18일 3라운드. 인제 하늘내린 대 서귀포칠십리. 인제 팀은 현미진 5단 감독에 선수는 오유진 박태희 이영주 초단. 부산이 박트리오라면 인제는 초단트리오다. 오유진은 또 여자 최연소로 송혜령보다도 한 살 어린 열일곱 살이지만, 당당 1지명으로 팀의 주장이다. 일찍이 차세대 주포로 낙점 받았다. 서귀포는 감독 하호정 4단, 선수 오정아 2단, 김미리 3단, 문도원 3단.
여기서 용병이 등장했다. 헤이자자 6단이 서귀포 팀의 오정아 2단을 만난 것. 헤이자자는 갤러리를 몰고 다니며 실력이나 성적과는 별개로 가는 곳마다 화제를 만들어내는 세계적 스타이며 오정아는 하호정 감독이 자랑하는 실력-미모 겸비의 재원이다. “헤이자자가 세계적 스타라고는 하자 바둑은 오정아가 어렵지 않게 이길 것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요즘 헤이자자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한다. 외모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한단다. 그래서 실력도 부쩍 늘었다고도 하니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다” 설왕설래 속에 시선이 집중되었는데, 뚜껑을 열자 헤이자자가 처음부터 의연히 앞서갔다. 오정아가 부분에 신경 쓰는 사이 헤이자자는 큰 자리를 선점했고, 집으로 차이를 벌려 나간 것. 오정아가 승부수를 날렸다. 흑진에 뛰어들었다. 죽기살기의 승부가 되었는데, 오정아의 타개와 수습이 빛을 발했다. 역시나 대마불사! 그러나 살아야 할 장면에서 오정아가 아차 실족하면서 대마의 생사가 헤이자자의 다음 한 수에 걸리고 말았다.
<1도>가 오정아와 헤이자자의 바둑이다. 오정아가 백. 헤이자자가 우하귀 백진에 흑1로 응수타진을 해보고 3으로 다가갔다. 지금 형세는 백이 불리하다. 백은 우하귀를 돌보고 있을 시간이 없다. 우상귀 흑진이 그대로 집이 되면 안된다. 백4-6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2도> 흑1-3이 침착하다. 백2-4로 돌면서 이쪽인 이어졌지만 흑5로 전체가 끊겼다. 백6-8, 이제 백은 안에서 살아야 한다. 잡히면 끝이다.
<3도> 흑1로 하나 물어보고 3으로 보강한다. 흑3? 백4로 벌리면 사는 모습 아닌가? 흑3으로는 일단 A로 가보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백이 3의 곳을 젖히고, 이단젖히면 흑이 이 부근 맛이 너무 나빠 견딜 수 없습니다. 흑3은 정수입니다.” 해설자 최명훈 9단의 설명이다
그랬다. 흑3이 불가피하고 그래서 백4로 벌릴 수 있는 것이라면 백은 살았던 것. 사는 것보다는 잡는 것이 어려운 것. 그래도 어쨌든 흑7로 들어와 본다.
<4도> 흑2 때 백3이 하마터면 큰일 낼 뻔했던 수. 그러나 흑4-6이 백3을 용서하고 말았다. 백7로 찌르고 <5도> 백1-3으로 먹여치고 막아서는 완생이다. 여기서 바둑은 역전이었다. 흑은 6으로 돌가가 귀살이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벌충이 안되었던 것. <4도> 백3으로는 그냥 <6도> 1로 이어야 했다고 한다. 흑2로 들어오면 그때 백3으로 막아 A-B를 맞보기로 완생이라는 것.
헤이자자로서 아까웠던 것은 <4도> 흑4. <5도> 백3의 자리로 먼저 찌르고 막을 때 2의 자리로 끊었으면 결정타였단다. 이번에는 거꾸로 흑이 4와 5 자리를 맞보게 된다는 것. “헤이자자 6단으로서는 분하겠네요. 헤이자자 6단, 정말 좋아졌군요. 다만, 실전 부족이랄까, 그런 게 아직 조금 문제 같은데, 실전이 쌓이면서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입니다.” 최명훈 9단의 평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