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지검 형사3부(윤대진 검사)는 지난 7일 남편과 바람을 피운 유부녀 정아무개씨로부터 합의금 명목으로 수천만원의 돈을 갈취한 조아무개씨(여·47)를 공갈 혐의로 구속했다.
그런데 당초 아내 조씨의 단순한 협박 공갈 및 금품 갈취로 보였던 이 사건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검찰은 조씨가 정씨로부터 갈취한 돈이 다시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게 송금된 흔적을 발견한 것. 그리고 남편 A씨는 이전에도 친구와 간통을 저지른 여자를 상대로 돈을 뜯어낸 유사한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들 부부가 함께 공모해서 유부녀를 상대로 돈을 뜯어냈을 가능성에 대해서 집중 수사하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 조씨는 이 같은 공모 가능성을 전면 부인했다. 그녀는 “남편의 고질적인 바람기 때문에 수시로 다투는 등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남편은 자식이 결혼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며 “자식의 혼사를 앞두고 소란을 일으키기 싫어 지금껏 참아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이 같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남편과 유부녀 정씨의 불륜 과정과 이를 발견하게 된 경위를 상세하게 밝혔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남편 A씨는 천성적인 한량으로 뚜렷한 직업도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데에만 열중했다고 한다. 자연히 여성들과 바람피우는 일이 잦아 부부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전했다.
“도저히 이런 남자와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살던 완주를 떠나 친정인 서울로 올라와 버렸다. 남편은 이후 나를 설득하기 위해 자주 서울을 오갔는데, 언젠가부터 남편이 서울에 올라와도 날 찾지도 않고 그냥 다시 내려가는 일이 잦아졌다. 이상하게 생각해 2001년 9월께 서울의 한 다방에서 남편을 만나고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간다던 남편의 뒤를 몰래 밟았다. 그런데 남편은 완주로 내려가지 않고 어떤 여성을 만나 인근의 한 모텔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곧바로 근처 지구대를 찾아가 경찰을 동원해 모텔방을 급습했다. 남편의 품에 안겨있던 유부녀 정씨는 내게 용서해달라며 매달렸다.”
조씨는 처음에는 안 된다고 완강하게 버티다 나중에는 못이기는 척하며 용서의 대가로 합의금을 요구하고 나섰다. 조씨가 요구한 합의금은 3천5백만원의 거금이었지만 다급해진 정씨는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 겨우 합의금을 마련해 준 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하지만 조씨의 응징은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조씨는 합의금을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이 지난 뒤인 2002년 4월 다시 정씨에게 전화를 걸어 “4천만원을 더 보내지 않으면 남편과의 간통사실을 당신 주변 사람 모두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해 3천만원을 더 뜯어냈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같은 해 7월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6천9백만원을 갈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단 한 번의 불장난으로 인해 정씨의 삶은 한없이 추락했다. 정씨는 당시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으나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채를 끌어 쓴 데다 조씨가 계속 돈을 요구하는 바람에 가게마저도 처분해야 했다. 이후 정씨는 급속히 불어나는 사채의 이자를 막기 위해 식당과 공장을 전전하며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럴수록 조씨는 더욱 집요하게 돈을 계속 요구해 왔고, 결국 벼랑 끝에 몰린 정씨는 남편을 비롯한 주변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지만 어쩔 수 없이 검찰에 신고했다.
당초 검찰은 남편의 잦은 바람기에 화가 난 아내 조씨의 단순 공갈 협박으로 여겼다. 그런데 조사가 진행되면서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남편 A씨가 과거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돈을 뜯어내다 피소당한 사건이 두 차례나 있었던 것.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자신의 친구와 성관계를 가진 여성의 연락처를 알아내 접근한 뒤 불륜 사실을 주변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수법으로 돈을 뜯어냈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조씨가 정씨로부터 뜯어낸 돈을 남편인 A씨에게 송금한 사실도 확인했다. 정씨가 송금한 합의금 명목의 수천만원이 조씨의 통장에서 소액을 제외하고는 고스란히 모두 남편인 A씨의 통장으로 다시 재송금된 것.
전주지검의 한 관계자는 “A씨 부부가 사전 공모해 계획적으로 정씨의 돈을 뜯어냈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들을 모두 구속해서 사실 여부를 가리는 한편 여죄를 추궁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조씨는 남편과 별거중인 데다 이혼할 계획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남편에게 간통한 여성한테 받은 합의금을 보낸다는 것은 상식 밖”이라며 “이밖에도 서로 대립각에 놓여 있어야 할 두 사람의 진술이 일치하는 부분이 일부 있는 점, 아직 이들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 등 여러 정황이 사전공모의 가능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조심스레 밝혔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