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성인 PC방 도박게임에 빠진 나머지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들은 범행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발바리 소탕 형사’를 사칭해 범행대상에 접근하는 한편 입막음을 위해 몸을 유린하고 나체사진까지 찍어두는 치밀함을 보여 경찰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고향친구이자 학교 선후배 사이인 진 아무개 씨(34)와 김 아무개 씨(33)는 특정한 직업 없이 PC방 등지를 전전하던 처지. 둘 모두 처와 자식도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지만 전과 5범이라는 낙인 때문에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했고 가정생활 또한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다.
반 백수 생활을 해오던 이들은 어느 날 우연히 성인 PC방 도박게임에 맛을 들이게 된다. 운이 좋으면 하룻밤에 수십만~수백만 원을 거머쥘 수 있는 도박의 유혹은 마땅한 ‘돈벌이’를 찾고 있던 이들에게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매력적인 것이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도박에 빠져들수록 판돈은 점차 커져만 갔고 돈을 따는 날보다 잃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나 도박에 한번 맛을 들인 두 사람은 좀처럼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전과로 인해 마땅한 직업을 구하기도 어려웠던 이들에게 고정적인 수입이 있을 리 만무. 이들의 생활은 날로 궁핍해져갔다. 그나마 모아놨던 돈마저 도박판에 쏟아부은 이들은 급기야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가 됐다.
경제적 어려움에 쪼들리면서도 도박에 대한 집착을 떨쳐내지 못한 두 사람은 결국 심야에 귀가하는 여성을 상대로 강도행각을 벌이기로 공모하게 된다. 이들의 범행에는 PC방에서 우연히 알게 된 대학생 김 아무개 씨(26)도 합류했다. 김 씨 역시 인터넷 도박에 빠진 뒤 돈을 크게 잃고 전전긍긍하던 처지였기에 ‘한몫 챙기자’는 이들의 위험한 제의에 쉽게 가담할 수 있었다. 이들 3인조는 심야시간에 한적한 도로변을 지나가는 부녀자들을 범행대상으로 점찍고 이들을 납치해 금품을 뺏기로 계획을 세웠다.
경찰을 놀라게 한 것은 이들의 범행수법이었다. 진 씨 등은 여성들이 자신들을 경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갖은 궁리 끝에 경찰을 사칭하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여성들에게 쉽게 먹힐 수 있는 ‘연쇄 성폭행범 발바리 소탕대’로 위장했다. 진 씨 등은 경광등과 수갑, 무전기 등을 청계천에서 구입하고 렌트한 차량 역시 경찰 순찰차량처럼 꾸몄다. 또 범행에 사용할 수술용 장갑과 테이프, 마스크와 두건은 물론이고 피해자들을 협박하기 위한 회칼과 망치, 장검 등을 마련해놓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지난 5월 12일 새벽 2시 30분쯤 부천시 원미구 중동 H 백화점 앞길에서 범행대상을 물색하던 이들은 때마침 귀가 중이던 장 아무개 씨(여·35)를 발견하고 접근했다.
도로변에 차를 바짝 붙인 채 장 씨를 불러 세운 진 씨 등은 “경찰인데 요즘 이 근방에서 발생한 연쇄성폭행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순찰 중이다. 요즘 밤길이 위험한데 혼자 다니면 큰일 난다. 우리가 차로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겠다”며 ‘작업’을 걸었다. 이들은 장 씨가 보는 앞에서 무전기로 순찰 정보를 교환하는 척하는가 하면 서로를 ‘이 형사’ ‘김 형사’ 등으로 호칭하며 완벽한 경찰 행세를 했다.
▲ 이들 3인조는 번호판과 무전기 경광등까지 갖추고 경찰 흉내를 냈다. | ||
그러나 장 씨가 차량에 타자마자 이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진 씨 등은 사전에 계획한 대로 보기만 해도 섬뜩한 회칼 등으로 장 씨를 위협, 미리 준비해놓은 수갑과 테이프 등으로 결박하고 성폭행했다.
반항 한번 해볼 겨를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범행은 성폭행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다시 도박게임에 뛰어들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했다. 이들은 장 씨의 신용카드를 뺏은 뒤 중부고속도로변의 현금지급기에서 180여만 원을 인출한 뒤 달아났다.
이렇게 시작된 진 씨 일당의 범행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야심한 밤에 혼자 지나가는 20~30대 여성은 그들에게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었다. ‘경찰’이라는 말에 여성들은 하나같이 쉽게 경계심을 풀고 이들의 차에 동승했다. 일단 여성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뒤 차에 태우기만 하면 범행은 거의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성을 태우면 이들은 인적이 없는 고속도로로 차를 몰고 가서 순식간에 범행을 저질렀다.
생각보다 쉽게 범행이 성공하자 이들은 날로 대담해져갔다. 이들의 범행은 서울 강남지역과 부천, 경기도 일대, 충청도 등 전국을 무대로 거침없이 이어졌다. 경찰을 사칭한 강도·강간 행각에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13일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10명. 한 달 남짓한 기간에 갈취한 금액도 무려 3400만 원에 달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피해 여성들이 수치심에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피해자들의 신분증을 빼앗고 적나라한 나체사진까지 찍어두는 치밀함을 보였다. 또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수술용 장갑과 콘돔을 끼고 성폭행을 했다. 피해여성을 흉기로 위협한 뒤 자신들의 주요 부위를 번갈아가며 애무하도록 하는 등 변태행위를 강요하기도 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신고하면 신상과 나체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하겠다”는 협박에 피해여성들은 차마 신고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결과 이들은 여성들에게 강탈한 수천만원을 모두 인터넷 도박에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는 5월 중순부터 전국에서 경찰을 사칭한 일당에 의한 강도·강간사건이 이어지고 있다는 제보로 시작됐다. 경찰은 사건이 특히 청주 일대에서 많이 발생한 것에 주목하고 이 일대 지리에 밝은 자의 범행으로 판단, 수사망을 좁혀온 끝에 충청도 지역에 연고를 둔 용의자들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들 3인조 가운데엔 평범한 대학생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인터넷 도박장을 드나들며 진 씨 등과 안면을 익힌 그는 전과로 뒤덮인 진 씨 일당과는 달리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부천중부서 전준열 형사과장은 “대학생 김 아무개 씨는 교육자 집안의 부잣집 아들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평범한 대학생이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과자들이 공모한 범행에 아무 거리낌 없이 가담한 이번 사건은 도박중독이 얼마나 무서운 범죄와 연관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수향 기자 ls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