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아 유기 사건의 현장인 서래마을 빌라의 입구와 현관, 아래는 베란다와 주변 풍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외국계 자동차 부품회사에 다니는 C 씨는 회사에서 마련해 준 이 빌라에 아내, 두 명의 아들과 함께 거주했다. 지난 6월 말 가족과 함께 고향 프랑스로 휴가를 떠난 C 씨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8일 혼자 귀국했다. 며칠 후 택배로 배달시킨 간고등어를 보관하기 위해 평소에 잘 쓰지 않던 냉동고를 연 C 씨는 네 번째, 다섯 번째 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흰색과 검은색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두 구의 영아 사체가 웅크린 채 꽁꽁 얼어있었다.
주인도 없는 집에서 누가 왜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일까. 또 하필이면 냉동고에 영아를 유기한 것까. 그동안 경찰은 누군가 몰래 출산한 후 급박한 마음에 냉동고에 넣었을 가능성, 주인이 오기 전까지 사체를 잠시 보관하려했을 가능성, 일부러 주인이 영아의 사체를 보게 하려는 의도 등 여러 가지로 추측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난 29일 국과수의 DNA 감식결과 영아들이 모두 C 씨의 아들들로 밝혀지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태까지의 부검 및 유전자 감식결과를 종합해볼 때 영아들은 각각 체중 3.24kg, 3.63kg의 남아로, 쌍둥이와 혼혈 여부, 산모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현재까지는 C 씨를 영아 유기범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C 씨가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을 가능성은 확실해 보인다는 것이 경찰의 말이다.
그간 경찰은 이 빌라에 사설업체의 보안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어 외부인이 드나들 수 없다는 점에 주목, C 씨의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해왔다. “외부인이 C 씨의 집에 침입-출산-유기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C 씨가 장기 휴가를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물일 소지가 크다”는 것이 경찰의 말이었다. 특히 영아들이 C 씨의 아들들로 밝혀지면서 C 씨와 부적절한 관계가 있는 여자들에 대해 집중적인 탐문수사를 펴고 있다. 당시 1차 수사망에 올라있는 인물은 C 씨 주변인물인 프랑스인 친구와 가정부, 주민에 의해 목격된 14세 정도의 백인 소녀 등 세 명이었다. C 씨는 최초 신고자이고 휴가 중이었다는 점 때문에 당초 용의선상에서 빠져있었지만 지금은 유력한 관련자로 지목되고 있다.
그동안 경찰은 집주인 C 씨의 집 열쇠와 보안카드를 갖고 있었던 친구 P 씨를 주목해 왔다. 보안시스템 기록 분석 결과, 경찰은 C 씨가 집을 비운 사이(6월 29일부터 7월 17일) P 씨만이 3일, 7일, 13일, 17일 등 총 네 차례 빌라에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P 씨를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해왔다. 산모는 P 씨와 같이 출입했거나 P 씨의 보안카드를 입수했다는 계산이 가능했던 것. 하지만 영아들의 아버지가 C 씨로 밝혀짐에 따라 P 씨의 직접 연루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
그러나 경찰은 궁극적으로 영아들의 어머니를 사건의 전모를 밝힐 핵심으로 보고 있다. C 씨의 관련 여부는 그 다음 단계라는 것. 즉 산모가 범인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C 씨가 휴가를 떠나기 전에 영아 유기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C 씨를 범행 당사자로 지목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것이 경찰의 말이다. 경찰은 “현재 DNA 감식결과로는 사건정황을 판단하는 데 무리가 있다. 영아의 출생 및 사망날짜도 알 수 없기에 어떤 식으로든지 성급한 판단은 이르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영아들을 살해, 유기하는 데는 제3의 인물이 개입됐을 가능성, C 씨의 자작극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산모가 어떻게 C 씨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 산모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아 현재 수사는 난항을 겪고 있다. 경찰은 탯줄의 절단면이 매끄럽지 않다는 점, 화장실에서 거실, 냉동고가 놓인 발코니로 연결되는 곳곳에 미세한 혈흔이 발견된 점, 사체에 태변흔적과 탯줄 등이 그대로 있는 점으로 보아 집안에서 출산한 후 냉동고에 유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고 있다. 또 영아의 시신이 담겨있던 비닐봉지와 시신을 싼 수건 모두 C 씨 집에 있던 것이라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특히 영아를 쌌던 수건에 묻어있던 모발이 C 씨의 것으로 밝혀진다면 C 씨가 직접 영아를 냉동고에 넣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범행 동기는 부적절한 관계로 태어난 영아들을 출산 직후 살해, 유기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C 씨의 집 앞에서 서성거렸다는 14세가량의 백인 소녀의 정체 역시 미스터리다. 경찰은 이 소녀의 신원확인에 나섰으나 행방이 묘연한 상태. 특히 이 소녀가 목격된 13일에 P 씨가 집에 출입한 흔적이 있어 이 소녀와 P 씨의 관계에도 주목하고 있다. 또 다른 주변인물인 가정부 L 씨 역시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경찰은 L 씨의 나이가 40대 후반~50대 초반이라는 점에서 출산 당사자일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가정부가 갑자기 살이 찐 것 같다’는 이웃의 진술도 있어, 경찰은 가정부의 행적에도 주목하고 있다. 경찰은 이 사건에 연루된 C 씨와 P 씨, 백인 소녀, 가정부와의 연관 관계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으나 P 씨와 C 씨가 모두 출국한 데다가 두 여성의 행방도 묘연해 경찰 수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C 씨가 프랑스에서 잠적하거나 재입국하지 않을 경우 사건 자체가 미궁 속으로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경찰의 초동수사 부실 논란도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수향 기자 ls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