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KTX는 ‘서대전KTX’ 아니다>
[일요신문]KTX호남고속철도가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정치 철도’로 전락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정부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서대전역 KTX 경유를 기정 사실화 하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대전권의 무리한 요구가 힘을 발휘하는 듯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일명 ‘비내리는 호남선’이라는 차별과 소외의 상징이었던 호남선 철도사업이 오늘날에는 대전권의 위세에 눌려 또다시 차별 받고 있는 것이다.
호남선은 건설 과정 자체가 차별과 소외의 상징이었다. 개통 54년만인 1968년 복선화 공사가 시작됐지만 36년만인 2003년에야 공사가 마무리 됐다. 2004년 고속철도 시대를 열었지만 천안과 오송역 정차를 두고 7년간 허송세월을 했다.
오는 4월 개통하는 오송∼송정간 KTX 1단계 개통으로 28년만에 진정한 고속철시대 개막을 앞두고 이번에는 서대전역 경유 문제로 ‘저속철’ 논란이 일고 있다. 충청권에 마저 인구가 추월당해 자존심 상한 호남인 입장에선 상실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돌아보면 호남고속철도 건설을 약속한 역대 대통령만 5명이었다. 역대 정권에서 호남고속철도는 경제적 타당성과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정치적 활용거리로 전락해버렸다.
이렇듯 호남고속철도는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뀌는 사이 녹슬어버린 호남의 ‘정치철도’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호남정치철도’가 지금 또다시 ‘정치’에 휘어지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남 KTX 노선은 애초 충북 오송에서 남공주를 거쳐 익산으로 연결되도록 계획돼 오는 4월 개통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코레일은 하루 운행 편수를 기존 62회에서 82회로 늘리고 이 중 20%를 서대전 역으로 경유시키는 변경안을 제시했다.
이 변경안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권선택 대전시장의 대표 공약이었다. 정치적 배경이 깔린 노선 변경이라는 의혹을 사는 대목이다.
KTX가 서대전역을 경유하면 서울∼광주간 운행 시간이 1시간33분에서 2시간18분으로 45분이나 늘어난다. 저속철이 되는 것이다. 8조원이나 투입된 고속철도의 건설 목적에 맞지 않다.
2005년 호남고속철 분기점 결정 당시에도 천안∼공주 직결노선안이 폐기되고, 충청권의 요구대로 천안∼오송 경유안이 채택됐다. 운행시간이 11분이나 늦어졌고 호남이용객은 왕복 6000원 정도를 더 부담해야 했다.
고속철도가 동네 구석구석, 집 앞마당까지 찾아가는 완행열차처럼 운행된다면 고속철도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서대전’에서 ‘서울 용산’까지는 대전역을 이용하면 될 일인데 호남 고속철 노선 구부려가면서까지 서대전으로 KTX를 몰고가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호남KTX가 정치의 도구로 활용되는 ‘정치철도’라는 방증이 아닐까 한다.
호남선 철도사업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이런 전철이 반복돼선 안된다. KTX 서대전 경유가 확정되면 호남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안길 것이다.
KTX 서대전 경유는 코레일이 정치적 이유로 슬그머니 `서대전` 포함 노선 변경으로 시작된 것이 본질이다. 그로인해 호남주민들의 불편과 시간 경제적 낭비를 불러온다면 그 누가 용인하겠는가.
국토부 차관이 뒤늦게 ‘여론 수렴차’라며 29일 광주와 전북에 온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지역의 여론은 ‘절대 반대’이며 이미 수차례 여러 경로로 전달한 바 있다. 지역민심이 폭발 직전임을 몰랐다면 귀를 닫고 있었던 것이다.
국토부가 행여라도 경유 편수 축소로 호남을 달래려 한다면 더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어떠한 편법으로도 호남민심을 돌릴 수 없다. ‘저속철’을 놓고 지자체와 협의하고 절충점을 찾을 일이 아니다.
호남고속철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호남지역의 교통과 물류를 촉진해 균형발전을 이루자는 게 근본취지다. 정부가 여론 떠보기나 하고 여기에 정치적 계산을 더하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지난 28년의 긴 세월동안 녹슬어버린 ‘호남정치철도’가 이제라도 호남민과 국민을 위한 ‘호남고속철도’로 거듭나야 한다. ‘호남고속철’은 ‘대전고속철’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토부는 다시 새겨 볼 일이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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