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26일 올해 첫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신임 수석비서관 및 특보단과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신 미래전략수석, 신성호 홍보특보, 이명재 민정특보, 우병우 민정수석, 박 대통령, 김성우 사회문화특보, 임종인 안보특보, 현정택 정책조정수석. 사진제공=청와대
검사 출신 수석과 비서관들이 잇따라 ‘대형사고’를 치고 나가는 바람에 비서관 이상 5명 중 4명이 한꺼번에 옷을 벗게 된 민정수석실이 또 다시 검사 출신들로 채워지고 있는 데 대해 청와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얘기였다.
여권 안팎에서는 새롭게 청와대에 입성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소위 ‘김기춘 사람’이어서 설사 김 실장이 물러나더라도 그의 그림자가 청와대에 짙게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의 한 고참 보좌관은 이를 두고 “국민들은 ‘포스트 김기춘 체제’를 요구하고 있는데 청와대는 마치 ‘김기춘 2.0 체제’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며 “김기춘 체제는 이미 국민들에게 불통과 독선, 무능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데도 김기춘 2.0 체제가 들어선다면 누가 청와대가 쇄신했다고 인정해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1월 23일부터 시작된 정부와 청와대 인사 내용을 곱씹어 보면 여권 내의 이런 비판과 우려가 결코 과한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단 김기춘 실장과 가까운 사람들이 등용되고 있다. 이명재 민정특보가 대표적이다. 이 특보는 김 실장이 법무부 장관 시절 “당대 최고의 검사”라고 공개적으로 평가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성호 홍보특보도 김기춘 실장과 잘 아는 사이로 전해지고 있다. 신 특보는 <중앙일보>에서 국제부장, 전국부장, 사건사회부장, 사회담당 부국장, 수석논설위원 등을 두루 거쳤지만 ‘법조통’으로 통한다.
민정비서관에서 수직상승한 우병우 민정수석도 김기춘 사람으로 통한다.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과 관련해 김기춘 실장이 김영한 당시 민정수석보다 우병우 비서관과 긴밀히 협의하는 바람에 김 전 수석이 소외감을 느껴 사퇴를 결심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현 정부 청와대에서 비서관이 수석으로 승진한 유일한 케이스가 우 수석이라는 점은 그에 대한 김 실장의 신뢰가 얼마나 두터운지를 보여준다. 이쯤 되면 김기춘 실장이 물러난 이후의 청와대에도 그의 입김이 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기우로만 치부하긴 어려워진다.
김기춘 비서실장
사실상 청와대 민정라인이 TK·서울대 법대·검사, 세 가지 공통분모를 고리로 구성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TK는 아니지만 같은 영남인 PK(부산·경남)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나와 검사를 지낸 김기춘 실장의 출신성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때 청와대 민정수석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한 전직 고위 공무원은 “내 이름이 하마평에 오르내릴 때에도 나는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했다. 나는 TK, 서울대 법대, 검사 중 아무 것에도 해당되는 게 없기 때문”이라며 “김기춘 실장처럼 엘리트 중에서도 최고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에게 서울대 법대와 검사 출신이라는 것은 하나의 최소 기준이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김기춘 사람들, 그 중에서도 출신이 동일한 사람들이 줄줄이 청와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여권 내에서도 “박 대통령이 여전히 민심을 제대로 못 읽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 중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 초선의원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김영한 전 민정수석 등 검사 출신 인사들이 좋지 않은 모양새로 떠나갔는데도 대통령이 그들과 비슷한 사람들에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물러나는 김기춘 실장이 자기 사람을 심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과 출신이 비슷한 제2, 제3의 김기춘을 심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민정수석실은 국민 여론을 살피고 공직자와 대통령 측근들의 비위를 감시하는 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상명하복 문화에 충실한 검사 출신들, 그것도 동향에 같은 학교 선후배들로 민정수석실을 채워놓는다면 어떻게 내부 견제와 건강한 소통이 가능하겠느냐”며 “김기춘식 리더십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30%선도 무너져버린 현재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인사는 인적쇄신을 한다면서 실패한 리더십을 계속 고집하겠다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고 질타했다.
일각에서는 김기춘 2.0 체제가 구축되는 현재의 흐름이 결국 조기 레임덕 방지를 위한 대대적인 사정 정국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2013년 8월 김기춘 체제 출범 후 대대적인 사정바람이 불었고, 이 와중에 청와대와 껄끄러운 관계였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사생활 문제로 하루아침에 낙마하는 사태까지 있었던 점을 염두에 둔 분석이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검사였고, 이번에 공직기강비서관에 내정된 유일준 평택지청장이 채동욱 전 총장 파문 당시 법무부 감찰담당관으로 활동했다는 점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