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7년 배스초등학교 다이너마이트 참사. | ||
▲배스초등학교 다이너마이트 참사(사망 45명 부상 58명)
1927년 5월 미시간주 배스의 배스초등학교에서 미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된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대부분의 사망자는 2학년~6학년에 재학 중이던 어린 학생들이었으며, 범인은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던 앤드류 케호라는 이름의 남성이었다. 범행 동기는 학교 측의 일방적인 재산세 인상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집에서 아내를 먼저 살해한 후 자신의 집을 불태운 그는 학교로 가서 준비해간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해 건물을 폭파시켰다. 당시 건물 안에서 수업 중이던 학생들과 교사들은 모두 사망했다. 그리고 그는 나머지 생존자들이 한 건물에 대피하자 다시 자신의 자동차에 다이너마이트를 싣고 건물로 돌진해 자살했다.
‘총’이 아닌 ‘다이너마이트’이긴 했지만 이 사건은 33명이 사망한 이번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낸 최악의 참사였다.
▲텍사스대학 학살(사망 15명 부상 31명)
1966년 8월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총기난사 사건. 당시 텍사스대학 연구조교로 근무하고 있던 찰스 화이트만은 사건 전날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모친과 아내를 차례로 칼로 찔러 살해했다. 동이 튼 후 학교로 간 그는 준비해간 엽총, 권총, 소총 등 다양한 총기류를 들고 캠퍼스 내에 있는 종탑으로 올라갔다. 종탑 위에 앉아 마치 저격수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쏘기 시작했던 그는 곧 출동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범행 동기는 그의 유서에서 밝힌 대로 뇌종양을 앓고 있던 그가 평소 삶을 비관하고 있었으며,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아온 탓에 정신적인 문제까지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켄트주립대 총기난사 사건(사망 4명 부상 9명)
‘5월 4일 학살’ 또는 ‘켄트주립대학 학살’로 알려진 사건으로 1970년 5월 오하이오주 켄트에 위치한 켄트주립대학에서 벌어졌다. 당시 반전시위에 참가했던 1000여 명의 학생들 중 네 명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당시 출동한 경찰 병력은 77명이었으며, 이 중 29명이 13초간 하늘과 바닥, 그리고 먼 곳을 향해 모두 67발을 쏘았다. 가까이에 있던 학생들보다 100m가량 떨어진 학생들이 총에 맞았으며, 사망자 중 두 명은 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학생들로 단순히 강의를 들으러 가던 학생들이었다.
당시 경찰은 “몇몇 학생들이 경찰을 향해 총을 발사했기 때문에 목숨의 위협을 느껴 총을 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도서관 학살(사망 2명 부상 7명)
1976년 7월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던 에드워드 찰스 앨러웨이가 동료 직원 2명을 총을 쏘아 살해한 사건. 총격 과정에서 7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범행 직후 그는 도서관을 나와 달아났지만 곧바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했다.
그의 범행 동기는 다소 황당했다. 아침에 도서관에 출근하자 직원들이 휴게실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을 목격한 후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이혼한 자신의 아내가 포르노 영화 제작자로부터 영화 출연 제의를 받은 것으로 믿고 있던 그가 포르노 영화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이오와주립대 학살(사망 5명 부상 2명)
당시 아이오와주립대학 물리학 박사과정에 있던 중국인 강 루에 의해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1991년 11월 벌어진 이 사건은 ‘강 루 학살’로도 알려져 있다.
평소 다혈질적이고 승부욕이 강했던 그가 자신의 논문 대신 그의 동료인 같은 중국인의 논문이 교수에 의해 채택되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 총기를 소지하고 학교로 들어간 그는 지도교수 두 명과 중국인 동료를 쏘아 죽였다. 범행 후 그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1970년 켄트주립대 총기난사 사건. | ||
1992년 12월 매사추세츠의 사이몬스락대학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범인은 대만 출신의 웨인 로였다. 1987년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온 1.5세대였던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고등학교 때부터 지역 심포니에서 활동할 정도로 실력을 발휘햇다. 사이몬스락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그는 하지만 소극적인 성격으로 대학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다. 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로 지내던 그는 결국 총을 들고 학교로 들어가 범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는 사건 발생 직후 곧바로 뉘우치고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했으며 직접 911에 신고까지 했다.
▲프론티어주니어고교 총격사건(사망 3명)
1996년 2월 워싱턴주 모세 레이크에서 벌어진 총격사건. 당시 학교에 재학 중이던 배리 루카티스가 가정불화로 저지른 우발적인 범행이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는 것에 대해 분노한 어머니가 줄곧 루카티스에게 “함께 자살하자”라면서 다그쳤고, 이때부터 소년은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 년간 계속된 어머니의 자살 이야기에 스트레스를 받은 그는 사냥총과 두 자루의 권총을 코트 속에 숨기고 학교로 가서 분풀이를 했다. 당시 교실문을 열자마자 선생님을 쏘고 학생 두 명을 쏘았다. 이 중 한 명은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동료 학생이었다. 범행 후 그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펄고교 총기난사 사건(사망 3명 부상 7명)
1997년 10월 루크 우드햄이라는 소년이 자신의 고등학교에서 총기를 휘두른 사건. 먼저 집에서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인 그는 어머니 차를 몰고 학교로 가서는 곧바로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전 여자친구와 그녀의 친구 두 명을 포함 모두 세 명이 사망했으며, 무차별 총격으로 7명이 부상을 당했다. 교감이 그를 제압하자 가까스로 사태는 무마되었으며, 그는 왜 그러냐는 교감의 질문에 “인생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요”라고 말했다.
▲히스고교 총기난사 사건(사망 3명 부상 5명)
1997년 12월 켄터키주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평소 작은 체구와 허약한 체질로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하던 마이클 카넬이 복수심에 저지른 범행이었다. 이른 아침 총을 들고 학교로 간 그는 강당에 모여 아침 예배를 드리고 있는 학생들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총을 쏘던 중 자신의 친구 중 한 명이 죽은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총을 떨어뜨리고 자수했다.
▲요네스보로 학살(사망 5명 부상 9명)
1998년 3월 아칸소주 크레이크헤드 카운티의 요네스보로웨스트사이드중학교에서 벌어진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 더욱 충격적인 것은 범행을 저지른 학생들이 각각 10대 초반의 어린 아이들이었다는 데 있었다.
사건 당일 평소 악동으로 소문이 나 있던 미첼 존슨(13)과 앤드류 골든(11) 두 학생은 집에서 밴을 훔쳐 학교로 향했으며, 미리 훔쳐 두었던 여러 자루의 소총과 권총으로 학생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했다. 먼저 화재 경보를 울린 후 밖으로 대피하기 위해 나온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으며, 이로 인해 다섯 명이 죽고 아홉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당시 범행을 저지른 아이들은 밴을 타고 달아나려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콜럼바인고교 학살(사망 13명 부상 24명)
1999년 4월 콜로라도주 리틀턴의 콜럼바인고교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 사건.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라는 이름의 두 학생이 저지른 끔찍한 사건으로 미국 내에서 엄청난 반향과 논란을 일으켰다. 먼저 카페테리아를 통해 학교로 들어온 두 학생은 소지한 총으로 점심을 먹고 있던 학생들과 교사들을 향해 총을 쏘았으며, 이내 도서관으로 옮겨 다시 총질을 해댔다. 책상 밑이나 복사기 뒤에 숨어있는 학생들을 찾아내서 쏘기도 했다.
이들은 카페테리아와 도서관을 오가면서 약 한 시간 동안 900발을 난사했으며, 경찰이 출동한 후 도서관 안에서 스스로 목숨들을 끊었다.
사건 이후 미국 내에서는 총기소지자유화에 대한 비판이 대대적으로 불거졌으며, 폭력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의 교육 문제와 학교 안전문제 등도 한동안 쟁점이 되었다.
▲ 1999년 콜럼바인고교 총기난사 사건. | ||
2005년 3월 미네소타주 레드 레이크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제프리 와이즈라는 재학생이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을 모방한 듯한 인상을 풍겼다.
사건 당일 할아버지와 동거녀를 집에서 살해한 후 학교로 간 그는 학교 건물로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경비원을 총으로 쏘았으며,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서 눈이 마주치는 학생들을 무작위로 쏘았다. 쏘기 전에는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드는 여유로움도 보였으며, 결국 본인도 현장에서 총으로 자살했다.
▲웨스트니켈마인스 총기난사 사건(사망 14명)
2006년 10월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카운티의 웨스트니켈마인스학교에서 우유트럭 배달부가 여학생들을 상대로 무차별 총격을 가한 잔혹한 사건. 당시 사망한 학생은 여섯 살에서 열네 살의 어린 소녀들이었다.
그밖의 나라들의 총기난사사건
▲독일
-쾰른 학교 학살(사망 10명 부상 21명)
1964년 1월 쾰른 근교에 있는 카톨릭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방화 사건. 40대 초반의 발터 자이페르트라는 남성이 학교 교실 안으로 화염병을 집어 던져 불을 질렀다. 밖에서 이를 저지하던 교사 한 명을 작살로 찔러 죽였으며, 범행을 저지르는 도중 계속해서 “나는 히틀러 2세다!”라고 소리 질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정신분열증과 폐결핵을 앓고 있던 그는 나라에 대한 불만과 아내를 잃은 데 대한 상실감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범행 직후 그 자리에서 독극물을 들이키고 자살했다.
-에어푸르트고교 학살(사망 16명)
2002년 4월 독일 전역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끔찍한 교내 학살 사건. 학교에서 정학당했던 로베르트 슈타인호이저가 이를 복수하기 위해서 벌인 범행이었다. 총을 들고 교실에서 교실로 옮겨 다니면서 선생님만 쏘아 죽였던 그는 단 5분 만에 13명의 선생님을 사살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 두 명과 경비원 한 명이 사망했으며, 경찰이 출동하자 머리에 총을 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본
-오사카 학교 학살(사망 8명 부상 15명)
2001년 6월 엘리트 사립학교인 이케다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사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던 학교 수위였던 마모루 타쿠마가 부엌칼을 들고 교실로 들어가 무작위로 어린이들과 교사들을 찔러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결국 사형에 처해졌다.
▲캐나다
-에콜폴리테크닉대학 학살(사망 14명 부상 14명)
1989년 12월 퀘벡주 몬트리올의 ‘에콜플리테크닉’ 공대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범인은 기계공학을 전공하던 마크 르팽이라는 이름의 남학생이었으며 평소 ‘페미니스트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여성에 대한 증오에 휩싸여 있던 그는 사건 당일에도 여학생들만 골라 죽였다.
늦은 오후 수업 중이던 기계공학과 강의실로 들어간 그는 남학생을 모두 나가게 한 후 여학생들만 줄지어 세운 후 차례대로 쏘았다. 모두 여섯 명이 죽었으며, 세 명은 부상을 입었다. 이어 100명 정도가 있던 구내 식당으로 가서 다시 총을 쏘아댔으며, 다른 강의실로 가서 다시 총을 난사했다. 20분 동안 교내를 누비며 총질을 하던 그는 결국 스스로 자살했다.
▲영국
-던블레인초등학교 학살(사망 17명 부상 14명)
1996년 3월 벌어진 사건으로 영국 최악의 교내 총기난사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무직이었던 토마스 해밀튼이 초등학교 체육관으로 잠입해서 5~6세 어린이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으며, 운동장으로 나온 후에도 운동장에 있던 아이들과 복도를 지나가던 아이들을 향해 계속해서 총을 쏘아댔다. 이로 인해 16명의 학생들과 교사 한 명이 사망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