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삼성맨 심정택 대표는 저서를 통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삼성의 2인자로 불렸던 이학수 전 부회장 등 가신그룹이 위협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시험 대신 봐주는 일이 별로 어렵지도 않았는데 봐줄 걸 그랬다.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놓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서울대학교 선배가 이 부회장의 부탁을 거절한 일을 후회하면서 했다는 말이다. 이 부회장의 서울대 입학(동양사학과 87학번)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큰 경사로 여겼다고 한다. 그만큼 학업에 대한 부담이 컸을 터. 이 부회장은 1학년 1학기 국민윤리 시험을 대신 봐달라고 85학번 선배에게 부탁했다가 단단히 혼났다고 한다. 부탁을 거절한 그 선배는 사석에서 <삼성의 몰락> 저자 심정택 대표에게 씁쓸하게 웃었다고 한다.
<삼성의 몰락>은 한때 세계 최고 자동차회사였던 제너럴모터스(GM)의 파산부터 출발한다. 지난 2009년 GM의 파산신청을 두고 심정택 대표는 “미국의 자랑이자 지난 1931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77년 동안 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거인의 몰락’이었다”고 표현한다. GM도 파산신청을 한 바 있는데 하물며 삼성이라고 영원히 안전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심 대표는 삼성이 자동차 산업을 포기한 것에 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가 삼성 재직 시 맡았던 분야다. 그는 “최근 자동차는 전자제품으로 향해가고 있다”며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계속 유지해왔다면 오늘날 전자와 자동차가 결합하는 글로벌 흐름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고 평가했다.
삼성의 위기는 잘못된 오너 이미지 메이킹에서 기인했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심 대표는 “이재용 부회장이 미국 IT업계 신동들과 어울린다는 이미지 메이킹이나 중국과 베트남 지도자와의 어색한 사진 찍기 등은 그만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구름을 타고 다니는 손오공 같은’ 이재용 부회장의 현재 이미지를 버리고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자신의 제품을 직접 설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학수 전 부회장
심 대표는 이 책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대리시험’ 에피소드를 공개한 이유도 그 일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이재용 부회장이 인간적인 사람인만큼 그 점을 대중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의도라고 밝혔다. 그래야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제2의 땅콩회항’ 같은 사건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에 대해서는 호평이 이어졌다. “(이부진 사장은) 삼성 3세 중 외모뿐 아니라 성격, 경영 스타일도 이건희 회장과 가장 많이 닮은 자녀로 평가받는다”며 “‘리틀 이건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라고 밝혔다. 책에 소개된 이부진 사장에 얽힌 에피소드 한 토막.
“지난 2006년경 신라호텔 홍보팀에서는 호텔의 개선과 실적 향상 등이 모두 이부진 당시 상무의 취임 이후 이루어졌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보내자 이부진 사장이 홍보팀장을 불러 ‘어떻게 내가 다 한 거냐’고 크게 야단을 치고 기사를 수정하라는 지시를 냈다. 이때부터 호텔 직원들 간에는 이부진을 경외감이 느껴지는 이니셜 코드 BJ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이부진 사장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택시기사, 제주도 음식점 등 낮은 계층을 겨냥한 소통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향후 대중적인 지지도를 확보하는 데는 이재용 부회장보다 훨씬 탁월한 선택을 하고 있다.”
반면 이학수 전 부회장은 삼성SDS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상속세 걱정이 없다. 가신그룹인 삼성그룹 재무팀 라인의 김인주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최도석 전 부회장 등도 수천억 원대의 자산을 갖고 있다. 이 돈을 모두 모아서 삼성전자 주식을 산다고 가정하면 ‘가신그룹이 주인이 되는 일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삼성은 어떤 방안을 추진해야 할까. 심 대표는 먼저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 치열해져만 가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그는 “중국이 떨어지는 것은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이라면서 “은행, 보험에서부터 급식이나 외식업까지, 고정관념 없이 신수종사업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