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100여 명의 CEO들이 참석한 범금융 대토론회 모습. 신제윤 금융위원장(작은 사진)이 평소와 달리 황급히 대규모 관제 행사를 조직한 것은 결국 대통령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금융위원회 청와대 업무보고가 있던 지난 1월 15일,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앞에 두고 올 한 해 금융위가 추진하게 될 주요 사업을 브리핑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방송통신위원회, 중소기업청과 함께 이뤄진 이날 업무보고에서 신 위원장은 은행과 증권사에서 ‘액티브X’와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아도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창업에 재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우수 창업자에 대한 연대보증 면제 범위를 확대한다는 방안 등을 설명했다.
업무보고를 앞두고 있던 신 위원장은 마음이 무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용카드 고객정보 유출사태와 KB금융 사태 등 금융권에서 발생한 대형 사건사고에 대한 책임추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날 업무보고를 끝으로 신 위원장이 자리를 내놓게 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 상태였다. 이미 최수현 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사 관리감독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만큼 다음 차례는 신제윤 위원장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업무보고 직후 신 위원장에게 다가와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이제 그만 쉬시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신 위원장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법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곧바로 “앞으로 조금 더 고생해 달라”며 사실상 유임을 통보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금융혁신 및 발전방안에 대해 금융인들과 브레인스토밍(자유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했다.
100명의 금융권 CEO가 총동원된 2월 3일의 ‘관제 토론회’는 이렇게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물러나게 될 줄 알았던 금융당국 수장 자리를 지키게 된 신 위원장이 청와대에서 나오자마자 국내 모든 금융사 CEO 비서실 전화에는 불이 나기 시작했다. 각 금융협회를 통해 “금융권 토론회를 열 예정이니 사장이 직접 참석하라”는 금융위원회의 동원령이 떨어진 것.
불과 보름여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출석을 통보받은 CEO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CEO들은 평소 몇 달치 스케줄이 꽉 짜두고 바쁘게 움직이는 만큼, 느닷없이 특정 날짜를 비우라는 요구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CEO들의 경우 해외출장이나 외부손님 방문 등 중요한 일정을 부랴부랴 취소하느라 진땀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더구나 평소 신제윤 위원장은 금융사 CEO들을 억지춘향 식으로 동원하는 방식을 즐기지 않는 인물로 평가 받아왔다. 그런 그가 평소와 달리 황급히 대규모 관제 행사를 조직한 것은 결국 대통령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전언이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지난 3일 열린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2015 범금융 대토론회’에 초대받은 CEO들은 한 사람도 열외 없이 모두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적어도 겉으로는.
낮 3시부터 밤 10시까지 도시락을 먹으며 7시간 동안 진행된 마라톤 토론회에서는 나름 의미 있는 발언들도 나왔다. “낡은 규제를 철폐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는가 하면 “금융위와 금감원이 서로 업무를 미루는 통에 금융사 피해가 크다”는 성토도 나왔다. 하지만 토론회가 끝난 뒤 금융권에서는 이날 행사가 결국 ‘전시행정의 결정판’이었다는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우선 토론 주제는 너무 광범위했다다는 평가다. 실제로 짧은 시간에 금융 패러다임 변화와 금융감독, 금융사 관행 개선 등을 모두 다루다 보니 토론은커녕 발표만 이어가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정부가 독려하는 ‘창조금융’을 밀어붙이기 위해 금융권을 훈계하는 자리에 가까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신 위원장은 이날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금융권 변화의 속도가 우리 경제 수준과 외부 변화에 비해 여전히 미흡하다”고 꾸짖기도 했다.
한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금감원 검사 준비만 해도 몇 달이 걸리는데 불과 보름여 만에 무슨 토론을 준비할 수 있겠는가”라며 “요즘 유행하는 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식 행사였다”고 비꼬았다.
이영복 언론인
속도 내는 금융위 고위직 인사 1급 신설…적체 뚫리나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유임이 결정되면서 그동안 미뤄졌던 금융위원회 1급(국장급) 고위직 인사도 속도가 붙고 있다. 수장의 잔류 여부에 따라 달라질 방향을 알 수 없어 서로 눈치만 보던 금융위는 최근 금융정책국장, 금융서비스국장, 자본시장국장 등 핵심 부서장 인선에 가닥이 잡힌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김용범 금융정책국장은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전해진다. 금정국장은 금융위 요직 가운데 하나로, 후임 국장 후보로는 행정고시 33회인 손병두 금융서비스국장이 유력시 되고 있다. 이해선 금융정보분석원장은 홍콩총영사로 나갈 것으로 알려진다. 이 자리에는 금융위 대변인 출신인 이병래 전 금융서비스국장이 승진하는 쪽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반면 금융위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관측되던 유광열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은 당분간 당에 남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금융위는 고질적인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해 1급 직책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를 통해 ‘국장’ 직책을 갖고 있으면서도 보직을 받지 못한 행시 32~33회 출신들을 인사이동 대상에 포함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