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지난해 5월 공정위가 SK그룹 계열사와 SK C&C 간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로 부과한 과징금 347억 원에 대해서도 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일요신문 DB
이렇듯 공정위의 과징금 소송 패소는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2013년 공정위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년 72건의 소송 중 전부 승소는 53건, 일부 승·패소는 15건, 전부 패소는 4건이었다. 공정위는 이를 두고 “2013년 전부 승소와 일부 승소를 합해 승소율이 ‘94.4%’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정위의 승소율은 통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공정위 소송 패소의 ‘특징’이다. 공정위의 소송 패소는 금액이 클수록 더욱 두드러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통합진보당(현재 해산) 이상규 전 의원이 지난해 국감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2년 사이에 과징금 10억 원 이하 소송 98건 중 공정위는 52건을 승소해 승소율이 ‘53%’로 나타났다. 10억 원에서 100억 원 사이 규모의 소송은 총 90건 중 39건을 승소해 승소율이 43%로 줄어든다. 100억 원을 초과하는 27건의 소송에서는 단 7건을 승소해 승소율이 ‘25.9%’에 불과했다. 이렇게 3년여 간 공정위 과장금이 법원에서 감경된 액수는 약 ‘2000억 원’에 달했다.
이러한 특징은 공정위가 대기업과의 싸움에서 유독 힘을 못 쓴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큰 과징금 부과에서 진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징금이 클수록 대기업일 가능성이 크고 대형 로펌이 붙는다는 것은 하나의 순서다. 오히려 대형 로펌 입장에서는 공정위에서 과징금을 크게 때려야 사건 수임이 오기 때문에 더 반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이상규 전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정위 소송 전체 397건 중 4분의 1인 94건을 김앤장이 수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평양과 광장, 세종, 율촌, 화우 등을 포함한 6대 로펌의 총 수임건수는 전체의 70%가 넘는 282건에 달했다.
실제로 공정위가 대기업과의 소송에서 패소한 사례는 최근에도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5월 법원은 공정위가 SK그룹 계열사와 SK C&C 간 IT 서비스 거래에서 부당한 일감몰아주기 행위가 있었다며 부과한 347억 원의 과징금에 대해 취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 1월 14일에는 포스코 ICT가 낸 71억 4700만 원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 소송에서 법원은 포스코 ICT의 손을 들어줬다. SK그룹은 법무법인 광장을, 포스코 ICT는 법무법인 태평양을 내세웠다.
상황이 이러니 과징금을 ‘깎는’ 해결사는 대형로펌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돌고 있다. 대기업-공정위-로펌으로 짜여진 구조에서 로펌이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정위에서 받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가 최초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 액수는 2012년 7623억 원, 2013년 1조 3186억 원, 지난해 9월까지 2조 2628억 원으로 매년 ‘두 배’ 가까이 뛴 것으로 밝혀졌다.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단계에서 여러 조정과정을 거친다. 이에 대형 로펌들이 과징금 부과단계에서 기업을 대리한 결과,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3년간 총액이 4조 3439억 원에서 1조 5640억 원으로 64% 줄었다. 무려 3조 원 가까이 되는 과징금을 대형 로펌이 ‘방어한’ 셈이다. 과징금이 로펌의 발 아래에서 놀아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공정위 고위직 공무원이 퇴직한 후 대형 로펌으로 가는 경우도 주목된다. 국회 정무위원회 새정치연합 한명숙 의원실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공정위 4급 이상 퇴직자 42명 중 20명이 대형 로펌에 입사했다. 결국 ‘공정위 과징금 부과-대기업 대형로펌 선임-과징금 상당액 취소’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셈. 공정위 관계자는 “남양유업의 사례처럼 과징금 선고를 받은 대기업들이 ‘일단 소송을 걸어보자’라고 소송을 남발, 악용하지는 않을까 우려가 된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