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주판 유영철’로 불린 김상철 씨(가명·모자 쓴 사람)의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현장검증이 지난 2005년 6월 11일 실시되었다. | ||
이번에 충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차상학 팀장이 전하는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2년여 전 ‘청주판 유영철’로 불렸던 한 연쇄살인범에 대한 얘기가 그것. 불과 3개월여 동안 2명의 무고한 생명을 살해한 이 남성은 범행 후 쫓기는 상황에서도 후배의 어린 딸을 성폭행·살해하는 잔혹성을 드러내 수사진을 경악케 만들었다. 청주 서부경찰서(현 청주 흥덕경찰서) 강력팀 근무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차 팀장은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지난 2005년 여름은 참으로 잔인한 계절로 기억된다. 한 남자의 끔찍한 살인행각을 파헤치는 것은 형사가 직업인 우리로서도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조사과정에서 하나하나 드러나는 범행을 보면서 ‘사람이 어디까지 잔악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또 거침없이 살인행각을 저지른 피의자를 상대하면서 나는 인간 본성에 잠재되어 있는 ‘악마’를 똑똑히 보았다. 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특진이라는 영광을 안았지만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내가 경찰생활을 하는 동안 두 번 다시는 이런 잔악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형사에게도 살인은 잔혹한 ‘악몽’일 뿐 ‘추억’은 아니다.”
지난 2005년 6월 3일 오전 10시경 청주시 흥덕구에 위치한 한 주점에서 여주인 박 아무개 씨(당시 48세)가 처참한 사체로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즉시 초동수사에 들어갔다. 다음은 차 팀장의 설명.
“끔찍한 상태로 널브러져 있는 사체가 사건 당시의 참혹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박 여인은 둔탁한 둔기로 가격당한 듯 머리 부분이 심하게 함몰돼 있었는데 어찌나 피를 많이 흘렸던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사체의 상태로 보아 사건은 전날 새벽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처음에는 강도사건일 거라 생각했다. 손님을 가장한 강도 말이다. 하지만 단순 강도사건으로 보기에는 사체의 상태가 너무 끔찍했다. 피해자의 현금이 없어졌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가게 카운터에 현금이 남아 있던 것으로 보아 돈을 노린 강도의 소행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또 현장 분위기도 일반적인 강도사건과는 사뭇 달랐다. 그동안의 수사경험상 면식범의 소행일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수사팀은 휴대폰 통화기록 등을 통해 먼저 박 여인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수사팀의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은 김상철 씨(가명·당시 39세). 주변에 따르면 김 씨는 평소 박 여인의 주점에 수시로 드나들며 박 여인과 무척 가깝게 지내온 사이였다. 또 사건 당일뿐 아니라 평소에도 박 여인과 자주 통화를 했던 점으로 추측해볼 때 단순히 주점 주인과 손님의 관계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도 있었다.
수사팀은 즉시 김 씨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특정한 직업이 없을뿐더러 주거지도 일정치 않았던 김 씨는 사건 발생 후 행적이 묘연한 상태였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김 씨의 행방을 캐던 수사팀은 김 씨의 한 지인으로부터 ‘술자리에서 김 씨가 사람을 죽였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다’는 제보를 받게 된다.
수사팀은 김 씨가 범행을 저지른 뒤 잠적한 것으로 보고 그가 접촉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였다. 이와 함께 그가 은신해 있을 만한 곳들을 샅샅이 수색해나갔다. 결국 김 씨의 동선을 추적한 지 일주일 만에 수사팀은 도피자금을 구하기 위해 지인을 만나러 가던 김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김 씨를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인 수사팀은 마침내 박 여인 살해에 대한 자백을 받기에 이른다. 다음은 차 팀장의 설명.
“김상철은 평소 박 여인의 주점에 단골로 자주 드나들었다. 살인이 일어난 3일 새벽 2시경에도 그는 허물없이 지내던 박 여인의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김상철이 중국에 살고 있는 부인에게 전화통화를 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김상철은 미모의 엘리트 중국 아가씨와 중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에서 또 한 번의 결혼식을 치를 날짜까지 잡아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통화가 길어진 것이 화근이었다. 박 여인이 국제전화를 오래 쓴다고 신경질을 내며 타박을 하기 시작한 거다. 전화통화 문제가 발단이 되어 심한 말싸움을 하던 중 김상철은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가게 안에 있던 둔기를 휘둘러 박 여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말았다.”
하지만 김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또 하나 밝혀지게 된다. 김 씨의 살인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 씨는 박 여인을 살해하기 3개월 전인 지난 3월에도 내연관계로 지내던 성 아무개 씨(여·당시 44세)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지는 차 팀장의 설명.
“첫 번째 살인 역시 사소한 말다툼에서 비롯됐다.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당시 내연관계였던 성 여인과 술을 마시던 중 다투게 된 것이다. 단순한 말다툼으로 시작된 싸움은 두 사람의 감정이 뒤엉키면서 험악한 몸싸움으로 번지게 됐다. 한순간 자신을 무시하는 성 여인의 발언에 분을 억누르지 못한 김상철은 결국 그녀를 목 졸라 살해하고 만다. 우리를 더욱 경악케 한 것은 범행 후 그의 행동이었다. 김상철은 범행 후 5일 만에 성 여인의 사체를 충북 청원군의 한 야산에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암매장하기 전 무려 사흘 동안이나 성 여인의 사체를 끌어안고 잤다고 진술했다.”
약 3개월 동안이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또 다른 살인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다음은 차 팀장의 얘기.
“박 여인 사건의 용의자로 김상철을 신속하게 지목하지 못했더라면 성 여인의 죽음은 영원히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아찔한 일인가. 박 여인 사건의 경우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에 범행 현장과 사체를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연고가 없던 성 여인의 경우에는 실종신고조차 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성 여인은 자주 연락을 취하는 가족이나 지인도 없이 혼자 살고 있었다. 따라서 성 여인이 갑자기 사라졌다거나 연락이 끊겼다는 신고조차 해줄 사람이 곁에 없었던 것이다. 자칫했으면 이 사건은 김상철만 아는 영원한 비밀로 파묻혔을 것이다.”
“A 양 아버지(31)와 김상철은 절친한 고향 선후배로 평소에도 왕래가 잦았다. 또 사건 발생 지역도 김상철의 행동반경 안에 있는 곳이었다. 가장 의심스러운 부분은 김상철이 후배인 A 양 아버지의 집에 다녀간 직후 A 양이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A 양이 사라진 날은 박 여인이 살해된 지 이틀 후였다. 당시 김상철은 박 여인을 살해한 혐의로 쫓기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 와중에 후배의 집에 찾아왔다가 추가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완강히 범행을 부인했지만 결국 사건 당일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한 김상철은 A 양 역시 자신이 살해했음을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추가 조사 결과 김 씨는 A 양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당일 후배의 집에 찾아간 김 씨는 오후 6시 반경 후배 가족들의 눈을 피해 A 양을 집 밖으로 유인했다. 그리곤 인적이 드문 진천군 백곡저수지 부근으로 A 양을 데려가 성폭행하고 만다. 다음은 차 팀장의 설명.
“김상철이 A 양을 성폭행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5학년에 불과했지만 A 양은 또래 애들보다 성숙한 체형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김상철은 후배의 딸인 A 양에게 욕정을 품고 이미 수차례 몹쓸 짓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상철에 따르면 그간 A 양을 강제로 유린한 뒤 용돈조로 1만 원씩 쥐어줬던가 보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날따라 A 양이 ‘아빠한테 일러버리겠다’고 얘기하더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했던 어린 A 양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김상철로서는 덜컥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A 양에게 해온 몹쓸 짓이 들통 날까 우려한 나머지 A 양을 살해하고 진천군 백곡면 베티성지 안쪽의 야산에 암매장하고 말았다. 그러나 범행 후 김 상철은 다시 돌아와 후배인 A 양의 아버지와 태연히 술을 마시는가 하면 ‘딸이 행방불명됐다’며 당황해하는 후배와 함께 A 양을 찾으러 다닐 정도로 교묘하게 행동했다.”
3개월 동안 세 사람의 생명을 유린한 김 씨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차 팀장에 따르면 김 씨는 건장한 체격에 훤칠한 외모의 소유자로 소위 말하는 ‘범죄형’은 아니었다. 하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평탄치 못한 성장기를 보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려서부터 친형에 대한 불만과 억눌린 감정으로 적잖은 마음고생을 해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김 씨는 특정한 직업 없이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어렵게 생활해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다 성폭력과 절도 등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말았다. 젊은 시절부터 교도소를 드나들던 김 씨의 생활이 정상일 리 없었다.
“김상철은 18세 때부터 성폭행과 절도, 폭력 등으로 교도소를 드나들던 인물이었다. 전과 8범인 그가 복역한 기간을 합치면 무려 11년에 달했다”는 것이 차 팀장의 얘기. 젊은 시절을 대부분 교도소에서 보낸 셈이다. 얼마 전부터는 중국을 드나들며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해왔다고 하는데 그때의 인연으로 중국 여성과 결혼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변에 따르면 김 씨의 평소 성격은 순한 편이었다고 한다. 다만 김 씨는 술을 무척 즐기던 인물로 평소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가도 술만 마시면 행동을 자제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 씨의 폭력성은 어릴 적부터 가슴속 깊이 잠재돼 있던 분노가 술기운에 한순간에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차 팀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박 여인과 성 여인을 살해할 당시에도 김 씨는 술을 마신 후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당시 한국에서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는 점, 피해자들과 특별한 원한이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끔찍하게 살인을 저지른 점 등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부분이다.
차 팀장은 김 씨가 별다른 망설임도 없이 너무 쉽게 범행을 저지른 데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범행 당시 만취상태가 아니었다는 점, 살인을 해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활해온 점, 단기간 내에 추가범행이 이뤄진 점 등은 김 씨가 이미 자신의 범행에 대해 어떤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상실한 상태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차 팀장의 얘기다. 차 팀장이 김 씨를 추가 범행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인물’로 지목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김 씨 역시 경찰 조사 당시 “한번 (살인을) 해보니 두 번째는 너무 쉬웠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무고한 사람을 세 명이나 살해한 김 씨는 차가운 법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었다.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김 씨는 결국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피고는 전과 8범으로 지난 89년부터 16년 동안 모두 네 차례의 실형을 선고 받아 11년을 교도소에서 보냈으나 전혀 교화되지 않았으며 출소 이후에도 짧은 기간에 3명의 목숨을 사소한 동기로 살해한 점 등에 비춰 개선과 교화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해 사형을 선고한다”는 것이 당시 재판부가 밝힌 이유였다. 이후 김 씨는 대법원으로부터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