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안양 초등생 두 명을 유괴하고 살해한 범인 정 아무개 씨(39·대리운전)의 집 전경이다. ‘제2의 유영철’ ‘토막 살인마’란 이름이 붙어버린 피의자 정 씨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일요신문>에서 단독으로 입수한 정 씨의 다이어리에서 처음 만난 그는 ‘우울’해 보였다.
‘20011/17 수요일. 날씨 -10 오늘은 목욕탕에 갔다가 허탕 쳤다. 하루 종일 집에서 B만 했다.’ <일요신문>에서 단독으로 입수한 안양 초등생 유괴·살인 사건(이하 안양 사건)의 범인 정 아무개 씨의 다이어리에 적힌 일기 형식의 글이다.
‘목욕탕에 갔다가 허탕쳤다’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이와 관련 그의 ‘절도 전과’가 떠올려진다. ‘오늘은’ 이란 부분을 볼 때 정 씨가 목욕탕에서 상습적인 절도행각을 벌이며 생활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정 씨의 지인의 의하면 2001년도는 정 씨의 사업이 실패한 직후다. 정 씨는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의 한 전자상가에서 컴퓨터 조립업체를 운영했다. 일기가 쓰여진 시점은 정 씨가 ‘무직자’로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다. ‘하루 종일 B만 했다’는 말은 ‘비디오(video)’의 ‘비’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집에서 발견된 700여 편의 음란 동영상들은 이런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이와 함께 ‘B’가 본드(bond)를 의미한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실제로 정 씨는 경찰에서 사건 당일 본드를 흡입한 후 환각상태에서 두 아이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이 일기를 쓰기까지 정 씨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가장 처음 접촉을 시도했던 것은 그의 가족. 정 씨의 지인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가정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 씨의 부모는 정 씨가 초등학교 때인 지난 81년도에 이혼했다. 정 씨는 아버지가 맡아 키워왔는데 아버지는 정 씨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무렵 지금의 부인 K 씨와 결혼을 했다. 정 씨의 형은 K 씨와 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얼마 후 정 씨는 집을 나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껏 안양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가정 내의 불화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씨는 자신의 친어머니와도 거의 교류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 친어머니와 헤어진 이후 함께 살았던 기간은 1년도 되지 않는다. 친구의 부탁으로 정 씨를 6~7년 전에 만난 적이 있다는 이 아무개 씨(여·회사원)는 “내 친구가 정 씨의 엄마와 친구사이라 대신 물건을 좀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정 씨를 만난 적이 있다”며 “(정 씨의) 엄마라는 사람은 어떤 남자랑 같이 살고 있었다. 아들(정 씨)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불편해 보이는 ‘동거’는 1년이 안돼 끝을 맺었다. 2002년 정 씨가 지금의 안양동 월세방으로 거처를 옮긴 것. 이 때문에 친어머니조차 정 씨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정 씨의 나머지 가족 중 유일하게 연락이 닿은 것은 그의 새어머니 K 씨. 그는 지난 1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 씨가) 아들이다”라면서도 “2~3년 전부터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3년여 동안 소식이 없었지만 직접 연락을 취해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정 씨의 과거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 없다”고만 했다. 그는 다음날 통화에서는 “그런 사람 모른다”는 말만 반복하고 더이상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정 씨의 과거를 처음 알려준 것은 뜻밖에도 그의 군대 동기 J 씨였다. J 씨는 89년 9월부터 92년 3월까지 정 씨와 군 생활을 함께한 인물. 그는 최근에도 정 씨와 통화한 적이 있다고 했다. 올해 1월초 정 씨로부터 J 씨에게 새해인사 전화가 온 것. 정 씨는 J 씨에게 새해 덕담을 건네며 “내가 대리운전 하다가 ○○(J 씨 거주지역)에 갈 일이 생기면 한 번 보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혜진 양과 우예슬 양이 살해된 지 불과 열흘 남짓된 시점이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상당히 친해 보이는 J 씨도 단지 정 씨의 일방적인 전화를 받아왔을 뿐 전역 후 16년여 동안 정 씨와 직접 만났던 것은 단 3차례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정 씨의 군대 생활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다.
▲ 정 씨의 다이어리 속 자필 메모. | ||
정 씨의 또 다른 군대 동기 권 아무개 씨(38·회사원)는 정 씨가 영창에 다녀왔던 일을 비교적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부대 내) 문화의 밤 행사 때 술을 많이 마셨는데 그날 술을 마신 후 탈영을 했었다”며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후 정 씨가 자진해서 복귀를 했는지 잡혀서 왔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영창 생활을 몇 주 동안 했다는 것.
권 씨는 정 씨를 “‘주사’가 있는 편”이라고 기억했다. 그는 정 씨가 평소 숫기가 없고 말이 없는 편이었다고 했다. 반면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것은 기본이고 유난히 고집스러운 행동들을 했다는 것. J 씨와 권 씨는 전역 후 정 씨와 셋이서 함께 만났던 날을 ‘곤혹스러운 기억’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전역 후 3년 만인 지난 1995년도의 일이다.
‘술을 한 방울도 하지 못한다’는 J 씨와 ‘술을 싫어한다’는 권 씨. 그런 이들에게 정 씨가 계속해서 3차, 4차를 집요하게 권했다는 것. 정 씨는 술을 한 번 마시면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J 씨는 “(정 씨가) 집에 가서 더 먹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 뒤론 만나기 싫었다”고 말했다. 이들 ‘전역 동기’들의 관계가 소홀해진 것도 정 씨의 이런 ‘주사’가 한몫을 했다는 것. 이후 이들은 간간이 J 씨에게 걸려오는 전화로 정 씨의 근황만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이후 정 씨의 과거사는 그가 졸업한 대학교 사람들에 의해서 이어진다. 지난 1996년 정 씨는 안양의 D 전문대학교 컴퓨터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정 씨는 이곳에서도 군대에서처럼 주변사람들의 기억 속에 단지 ‘평범하고 착한 학생’으로만 기억되고 있었다.
정 씨와 함께 98년도 같은 과를 졸업한 홍 아무개 씨(남·35·회사원)는 “(정 씨를) 들어본 거 같긴 한데”라며 기억을 한참이나 더듬은 후 “지금도 만나는 대학 동기들이 많은데 정 씨는 동기들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를 가르쳤던 박 아무개 교수는 “그 사건의 범인이 정○○이라고 하기에 앨범을 찾아봤다”며 “그 친구는 당시 다른 동기생들보다 나이가 많았다는 것 정도만 기억이 난다. 평범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학교에서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조용하고 얌전한 학생이란 기억만 남긴 채 98년도에 졸업을 했다.
이후 사업을 벌였다가 실패한 정 씨는 2002년부터 지금의 안양 집에 터를 잡았다. 정 씨가 대리운전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처음에는 함께 살던 동거녀도 있었지만 그는 2년 뒤인 2004년 사망했다. 사망원인은 지병으로 알려졌지만 ‘알코올 중독 때문이었다’는 얘기도 들리는 것을 보면 정 씨의 ‘인사불성’식 음주습관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 씨는 동거녀가 사망한 시기와 비슷한 시점에 일기를 다시 한 번 적었다. ‘2004. 1월 19일. 오늘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의미없는 하루이다.’ 일기가 써진 같은 해 8월. 정 씨는 전화방 도우미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고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 후부터 안양 사건 이전까지 정 씨의 4년간 행적은 베일에 싸여있다. 검찰 수사가 매일 새로운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는 지금 정 씨의 혐의는 단순히 ‘안양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정 씨의 과거행적에서 또 어떤 놀라운 사건이 터져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