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김원배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은 연모하던 학원선생님을 살해한 어느 여학생 이야기다. 학원교실 안에서, 그것도 제자가 스승을 살해한 것이라 당시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할 만큼 그 파문이 컸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순진한 여학생의 손에 칼을 쥐게 했던 것일까.
“자 오늘은 여기까지!~ 다들 수고했어요.”
1966년 5월 어느날 오전 9시 30분께 서울 동대문구에 소재한 XX고시학원.
고교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모인 반에서 1교시 수업이 막 끝나가고 있었다. 수업을 마친 사회과 강사 강우성 씨(가명·27)가 칠판을 닦기 위해 뒤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당신이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
앞줄에 앉아있던 한 여학생이 갑자기 교단 앞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흉기로 강 선생의 등과 옆구리를 찔렀다. 강 선생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고 교단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됐다.
놀란 여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교실을 뛰쳐나갔고 교실에 남아있던 20여 명의 남학생들이 교단으로 달려가 여학생을 만류했다. 하지만 여학생은 남학생들에게 제지당하면서도 강 선생의 얼굴을 마구 쥐어뜯으며 좀처럼 분노를 삭히지 못했다. 많은 피를 흘린 강 선생은 황급히 인근 병원 응급실로 후송됐으나 폐동맥 절단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교사를 상대로 때아닌 칼부림을 벌인 여학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과도를 든 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그해 초부터 이 학원에서 수업을 듣던 차정애 양(가명·19)이었다. 당시만 해도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못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이었기에 교사들과 학생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학원 관계자들은 차 양의 주변에서 전전긍긍하며 경찰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분노로 이글거리던 차 양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교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차 양이 학원 선생을 상대로 이처럼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사 결과 차 양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불우한 소녀였다. 또래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던 차 양은 배움의 한을 풀기 위해 어렵사리 학원에 등록,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차 양은 학구열에 차 있던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총각 선생’에 대한 여학생들의 로망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수사기록에 따르면 강 선생은 부유한 집안출신으로 명문대 대학원까지 마친 엘리트였다. 강 선생은 일 주일에 세 번씩 그 학원에서 시간강사로 근무해왔는데 뛰어난 강의 실력 외에도 잘생긴 외모 때문에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무척 많았다고 한다. 강 선생은 당시 학원 여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화젯거리였다. 차 양이라고 해서 다른 소녀들과 다를 리 없었다고 한다. 보기만 해도 가슴 설레게하는 이 킹카 총각 선생은 열아홉 살 소녀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말았던 것이다.”
적극적인 성격의 차 양은 유독 강 선생을 잘 따랐다. 그리고 강 선생 역시 그런 차 양을 유난히 살갑게 대했다. 결국 차 양은 강 선생의 하숙집까지 드나들 만큼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다정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을 뿐이었다. 당시 수사기록에 대한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 전 차 양이 강 선생에게 진지하게 물었다고 한다. ‘나를 이성으로 대하겠는지 아니면 제자로 대하겠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알 수 없으나 강 선생은 ‘이성으로 여기고 있다’는 대답을 했나보더라. 강 선생을 흠모하던 차 양으로서는 이보다 더 반가운 소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화근이 됐는지 얼마 후 두 사람은 결국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말았다.”
그 후 두 사람은 몇 차례에 걸쳐 관계를 갖게 되고 강 선생을 향한 차 양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당시 약혼녀가 있었던 강 선생으로서는 그런 차 양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제자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리긴 했지만 차 양의 집착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강 선생은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차 양과의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강 선생의 고민이 깊어지던 무렵 차 양이 찾아왔다.
“갑자기 냉담해진 강 선생의 태도를 차 양이 모를 리 없었다. 3월 말쯤 불안함을 느낀 차 양이 일기장 한 권을 들고 찾아왔다. 일기장에는 강 선생을 향한 자신의 심정은 물론 자신과 강 선생의 적나라한 관계가 낱낱이 기록돼 있었다. 일기장을 보여주며 차 양은 강 선생에게 자신의 심경을 고백했다. 그리고 연인관계로 지낼 것을 간청했다. 하지만 강 선생은 ‘나에겐 이미 약혼자가 있다’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차 양으로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강 선생의 냉담한 반응에 충격을 받은 차 양은 식음을 전폐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4월 초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 차 양은 음독자살을 시도하고 만다.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차 양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강 선생의 이름이었다.
차 양은 어머니에게 강 선생과의 관계를 털어놓으며 강 선생을 불러달라고 사정했다. 딸의 고백에 차 양의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일단 딸을 살리고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강 선생을 찾아갔다. ‘한 번만 딸을 만나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그러나 강 선생은 매몰차게 거절해 버렸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차 양이 퇴원한 뒤 강 선생이 찾아왔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강 선생은 차 양을 붙들고 ‘나는 너를 제자로 다정하게 대했을 뿐 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 네가 먼저 날 좋아한 거 아니냐. 너와 나는 스승과 제자 사이고 더 이상은 안 된다. 더 이상 어리석은 짓 하지 말고 그만 제자리로 돌아가자. 더구나 너와 나는 여러 가지 조건도 맞지 않을 뿐더러 나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차 양은 강 선생을 향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날 이후로 학원수업도 잘나가지 않는 등 방황하게 됐다고 한다.”
차 양을 더욱 속상하게 한 것은 실연의 아픔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자신과 달리 강 선생이 너무도 태연하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강 선생의 일상은 너무도 편안해보였다. 강 선생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밝고 활기찬 태도로 강의를 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행동하는 강 선생의 태도는 차 양에게 섭섭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자신은 일부러 외면하면서 다른 학생들은 자상하게 대하는 강 선생에게 차 양은 격한 감정을 느꼈고 마음의 상처는 아물기는커녕 더욱 깊어갔다. 그 와중에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들을 통해 강 선생이 자신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고 다닌다는 소문까지 듣게 된 차 양은 견딜 수 없는 분노와 배신감을 갖게 된다.
‘선생님이 내게 이럴 수는 없어….’
몇날 며칠을 눈물로 밤을 새며 강 선생을 원망하던 차 양은 강 선생과의 관계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 강 선생과의 추억이 기록된 일기장과 사진들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리고 무서운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5월 초 차 양은 재래시장에서 과도를 구입해 가방에 넣고 다녔다. ‘너도 죽고 나도 죽자’라는 심정이었다. 사랑이 전부라고 여겼던 열아홉 살 소녀의 무모한 살인극은 이렇게 시작됐던 것이다.
경찰조사에서 차 양은 “결혼하자는 말을 믿고 모든 것을 바쳤으나 더 이상 만나주지 않아 범행을 결심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한편 사건 후 강 선생의 하숙방에서는 한 권의 노트가 발견됐다. 노트에는 강 선생이 차 양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내용의 글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제자가 흠모하던 선생을 살해한 이 엽기적인 사건은 김 연구관이 집필한 사건파일 중 ‘10대 소녀에 의해 학교·학원에서 발생한 치정살인’이라는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다. 당시 이 사건은 ‘여학생이 교실에서 과도로 선생을…’ ‘스승과 제자 간 비뚤어진 애정이 화 불러’ ‘10대 여학생이 흠모하던 선생 살해’ ‘총각 선생을 향한 무모한 연정 때문에’ 등의 제목으로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사랑에 배반당한 여학생이 직접 손에 칼을 쥐었다는 뉴스에 사람들은 경악했지만 정작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젊은 총각 선생과 여학생의 애정행각과 그로 인한 비극적 결말이었다. 때문에 당시 일각에서는 차 양에 대한 동정여론이 일기도 했다.
이 사건에 대한 김 연구관의 분석은 이렇다.
“차 양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만 해도 여성들에게 ‘순결’과 ‘정조’ 관념이 강요되던 때였다. 따라서 차 양의 범행은 사랑을 믿었다가 정조를 유린당하고 배신당한 여성의 한맺힌 복수극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치정살인은 예나 지금이나 갖가지 기구하고 안타까운 사연들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남녀문제는 본인들만 안다고 하지 않나. 들어보면 ‘그럴 만도 했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얘기다. 차 양의 경우 사랑에 목숨 걸던 그 시대 많은 여성들에게는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진다면 성에 대한 개념이 변하고 개방적인 현대사회에서는 적어도 치정살인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요즘 젊은 친구들이 말하듯 ‘쿨하게’ 사귀다가 ‘쿨하게’ 헤어지면 그만이어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도 남녀 간 치정살인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범죄유형 중 하나다. 미묘하고 복잡한 애증이 얽히고설켜서 발생하는 치정살인사건은 쿨한 사람들이 대세를 이루는 쿨한 시대가 와도 계속될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그 본질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