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씨는 중상을 입고 쓰러졌고 남자는 미용실 안에 있던 현금 7000원을 들고 달아났다. 이 씨는 이웃의 도움으로 응급실로 긴급후송돼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이것은 한 연쇄살인마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이번에 김원배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80년대 후반 수도권 일대를 전전하며 8개월 동안 8명을 살해한 ‘거리의 도살자’에 대한 얘기다.
그 남자가 또다시 성남 일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 씨가 봉변을 당한지 20일이 지난 6월 11일 새벽 4시 30분께였다. 주점을 운영하는 신영자 씨(가명·42)는 영업을 마치고 귀가하고 있었다. 성남시 신흥동의 으슥한 골목길을 지나던 신 여인의 눈앞에 한 젊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누구신가. 우리 신 마담 아니신가?”
평소 주점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동네 청년이었다. 신 씨의 눈에는 젊은 나이에 할일없이 빈둥거리며 돈도 없이 주점을 드나들던 이 청년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특히 그는 순진하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술만 마시면 온갖 행패를 부려대며 영업을 방해하던 불청객이기도 했다.
“너 뭐야? 썩 꺼지지 못해? 한심한 XX 같으니.”
“이 X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네가 뭔데 말끝마다 욕지거리에 날 무시해? 너 오늘 잘 만났다!”
청년은 주머니 안쪽에서 등산용 칼을 꺼내 신 여인을 위협했다. 주점 안이었으면 바락바락 악을 써대며 단박에 내쫓고도 남았겠지만 이날은 사정이 달랐다. 야심한 시각인 데다가 장소가 으슥한 골목이었던 것.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한 신 여인은 황급히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목덜미를 낚아채이고 말았다. 곧 이어 골목 안은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 여인은 다음날 아침 인근 초등학교 건물 틈 사이에서 끔찍한 사체로 발견된다.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5일 후인 6월 16일 새벽 2시 30분경. 서울 관악구에서 또 한 건의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남현동의 노상에서 한 여인의 사체가 피투성이인 채로 발견됐다. 피해자는 김애자 씨(가명·42)였는데 일을 마치고 귀가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체상태 및 현장상황으로 보아 범인은 김 여인을 따라오다가 등 뒤에서 급습한 것으로 짐작됐다. 무슨 한이 맺혔는지 김 여인의 몸은 가슴과 등 부분이 예리한 흉기에 찔려 엉망이었다.”
수사팀은 범인이 김 여인의 손가방에서 10만 원을 꺼내간 것을 확인, 일단 전형적인 노상 강도살인 사건으로 가닥을 잡고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앞선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목격자가 없어 수사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특히 당시 이 사건은 관악구에서 발생해 앞서의 성남살인사건과 동일범의 소행일 거라는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다.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던 범인이 또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8월 4일이었다. 새벽 1시경 성남시 단대동의 한 골목길에서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인근 주민들이 놀라 깨어나 경찰에 신고했고 잠시 후 경찰이 출동했지만 범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 남아있는 것은 골목길 벽면 여기저기에 묻어있는 혈흔과 피가 낭자한 상태로 쓰러져 있는 중년 여인의 사체뿐이었다. 피해자는 박미옥 씨(가명·43)로 등과 어깨가 여섯 차례나 찔려 있었고 과다출혈로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박 여인이 죽은 지 약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성남에서 또 한 건의 살인사건이 터지고 만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11월 16일 새벽 2시경 철야기도를 마친 강진만 씨(가명·53)는 성남시 수진동의 한 대로를 급히 가고 있었다. 그때 골목 한켠에서 낯선 남자가 불쑥 뛰쳐나왔다. 조그만 검은색 가방을 가슴에 안고 걸어가는 강 씨를 유심히 보고 따라온 남자였다. 남자는 다짜고짜 흉기로 강 씨를 찔러 살해한 뒤 그가 안고 있던 지갑을 빼앗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지갑 안에는 성경책만 있었다.”
성남에서만 벌써 네 번째 피해자였다. 더구나 강 씨가 변을 당한 당일 새벽 4시경 성남시 신흥동의 노상에 주차돼 있던 이 지역 주민의 승용차가 유리가 파손된 채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련의 사건으로 주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수사팀에 비상이 걸렸다. 범인이 성남를 헤짚고 다니는 연쇄강도살인범일 거라는 얘기가 수사팀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대부분의 범행이 새벽시간에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특히 피해자들이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인물들이 아니었다는 점 등은 범인이 어떤 특정대상을 노렸다기보다는 금품갈취를 목적으로 아무나 골라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강 여인이 살해당한 지 열흘이 지난 11월 26일 새벽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에서 또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이정수 씨(가명·57)였는데 범행장소나 흉기를 휘두른 방식, 들고 있던 손가방이 사라진 점 등이 앞서의 사건들과 비슷했다.
유사한 사건이 계속 터지자 수사팀은 하루하루 피가 말라갔다. 하지만 범인의 윤곽은 드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 이 미치광이의 연쇄살인극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약 한 달 후인 12월 23일 오후 8시 30분경. 종로구 예지동의 노상에서 한 중년여인이 흉기에 찔려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노점상을 하던 장숙자 씨(가명·54)였는데 그날 장사를 마치고 돈을 세던 중이었다. 범인은 장 여인을 살해한 뒤 17만 원과 버스 승차권 240장을 훔쳐 달아난 것으로 확인됐다.
수개월간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얼굴 없는 살인마의 윤곽이 드러난 계기가 된 것은 이틀 후 발생한 사건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크리스마스날 새벽 4시경.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의 한 슈퍼마켓에 강도가 들었다. 범인은 슈퍼마켓 여주인에게 달려들었으나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격렬하게 반항했다. 그 소리에 여주인의 아들(11)이 잠을 깨 방에서 나왔다. 어린 아들은 궁지에 몰린 어머니와 합세해 범인의 위협에 맞섰고 다급해진 범인은 들고 있던 흉기로 이들 모자를 무참히 찔렀다. 모자의 비명을 듣고 이웃사람들이 모여들 것을 두려워한 범인은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왔는데 이때 슬리퍼 한 쪽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수사팀은 범인이 남기고 간 슬리퍼 한 쪽을 단서로 현장 일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내사와 탐문수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슬리퍼의 주인은 인근 주택가에 살고 있는 청년이라는 사실이 확인됐고 90년 1월 22일 강서구 등촌동의 셋방에서 그를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한 달여간의 끈질긴 탐문수사 끝에 검거된 범인은 성남시 수정구에 거주하고 있던 심동팔(가명·30)이었다. 당시 심 씨는 집을 떠나 애인의 집에서 은신 중이었는데 그가 거주하던 집안에서는 손가방과 미처 처분하지 못한 장물, 버스 승차권 등 범행 증거물 21점이 쏟아져 나왔다. 이상하게 생각한 수사팀은 심 씨의 행적을 역추적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심 씨의 동선이 그동안 발생한 살인사건과 모두 일치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내기에 이른다. 심 씨는 8개월에 걸쳐 서울 종로와 성남, 구리 등지에서 무려 8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힌 연쇄살인마였던 것이다.
조사결과 심 씨는 강도상해죄로 수형생활을 마치고 88년 여름 출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 씨가 미용실에 침입해 첫 범행을 저지른 시기는 출소한지 9개월이 채 안되는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심 씨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범죄분석가의 입장에서 볼 때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얘기는 상당히 일리가 있다. 나쁜 환경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잘못된 인격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실제로 많은 연쇄살인범들이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평탄치 않은 성장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심동팔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 씨의 불행은 8세때 아버지의 학대를 견디지 못한 어머니가 누나를 데리고 가출하면서 시작된다. 끔찍한 학대를 당하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일은 어린 심동팔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고 그것은 훗날 사람을 아무 거리낌없이 찌를 수 있는 잔악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계모와 이복동생들의 틈에서 성장한 심 씨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결국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중퇴한 그는 그길로 가출했다. 그때부터 신문팔이와 구두닦이, 막노동 등으로 하루살이같은 생활을 했다.”
그리고 스물여섯 살 때 심 씨는 강도상해죄로 수감, 3년 6개월의 형을 살다 1988년 출소했다. 이 무렵 심 씨는 수소문 끝에 친모와 극적으로 재회, 같이 생활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친모도 인형공장에 다니며 버는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처지라 심 씨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꿈도 희망도 없이 셋방에서 뒹굴며 지내던 심 씨는 결국 돈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이다. 가슴에 등산용 칼을 품고서.
당시 경찰조사에서 심 씨는 “새벽에 영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사람들이나 장사꾼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심 씨가 8명의 생명을 빼앗고 손에 쥔 돈은 다 합쳐서 수십만 원에 불과했다. 또 아무 원한도 없는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인 이유에 대해 심 씨는 “범행대상을 선택하면 무조건 칼을 휘두르게 되고 한번 찌르면 내 자신도 모르게 연달아 찌르게 됐다. 특히 술을 마시면 성격이 포악해지고 내 자신을 주체하기 어려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심 씨는 92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