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얘기는 17년 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명 ‘마포 거부 이정갑 씨 피살사건’이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이 씨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그의 둘째 아들 석원 씨(가명·33)였다. 언어 장애가 있는 석원 씨는 경찰에서 ‘이날 새벽 1층에 내려왔다가 우연히 대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단속을 하고 다시 방으로 올라가던 중 안방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봤는데 아버지가 이불 위에 쓰러져 있었고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부검결과 사인은 교살이었다. 누군가 손으로 목을 조른 흔적이 있었던 것. 수사팀에 비상이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씨는 당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부동산계의 거물이었으며 1·2대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까지 지낸 인물이었다. 또한 이 씨는 84년 제주도 서귀포 신시가지 개발과 관련, 7만여 평 규모의 땅 투기사건으로 구속돼 매스컴에 오르기도 했다. 피살 당시만 해도 이 씨는 서울 여의도에 있는 빌딩 등 무려 1000억 원이 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소문난 알부자였다.
그런 이 씨가 자신의 집 안방에서 피살됐다는 소식은 빅뉴스였다. 자연히 이 씨의 개인사에도 관심이 쏠렸다. 80년대 초 본부인과 사별한 이 씨는 오영순 씨(가명·37)와 재혼했으나 성격차이 등으로 불화를 겪다 별거에 들어가 전처 소생인 아들 부부, 미혼인 딸과 함께 살아왔다.
당대 내로라하는 거부의 피살사건과 관련, 수사방향을 두고 수사팀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다. 가장 시급한 일은 범행동기를 밝히는 일이었다. 사체 상태로 볼 때 이 씨가 사망한 지는 불과 2~3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 사이 집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석원 씨에 따르면 사건 직전 집을 방문한 사람은 두 명이었다. 바로 이 씨의 후처인 오 여인과 평소 알고 지내던 문상필 씨(가명·53)였다. 석원 씨는 “밤 10시 30분경 따로 살고 있는 계모 오 씨가 집에 찾아왔고 잠시 후 문 씨가 뒤따라 들어왔다. 이들이 집에 있는 동안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집안은 다시 조용해졌고 석원 씨가 방안에서 나왔을 때는 오 씨와 문 씨는 돌아간 상태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아버지는 이들이 다녀간 후 이불 위에 반듯하게 누운 주검으로 발견됐던 것이다. 정황상으로 볼 때 두 사람을 유력한 용의자로 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행방을 찾아 나선 수사팀은 사건 발생 약 14시간 만인 다음날 오후 2시 30분경 수원에서 문 씨를 검거, 범행을 자백받았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문 씨는 자신의 부인 손영자 씨(가명·46)가 운영하는 화장품 가게의 단골손님이던 오 여인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남편인 이 씨와도 친분을 쌓아왔다. 문 씨는 순순히 혐의를 인정했다. ‘이사에 필요한 전세금 1500만 원을 빌리기 위해 이 씨를 찾아갔으나 이 씨가 심한 욕설을 하면서 거절했다. 특히 자신의 부인 오 여인과의 관계를 의심하면서 내 뺨을 때리고 손가락까지 깨물자 엉겁결에 목을 졸랐다’는 것이었다.”
문 씨의 자백에 따르면 이 사건은 원한이나 채무 등에 의한 살인도, 강도의 소행도 아닌 우발적인 상해치사였다. 사건은 의외로 쉽게 해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수사팀 내부에서는 문 씨가 진술에 대해 진위가 의심스럽다는 의문이 제기됐다. 너무 쉽게 술술 풀어놓는 것도 석연치 않았지만 살인동기로는 뭔가 부족해 보였다.
특히 수사팀은 이 씨가 84년 부동산투기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있을 당시 오 여인이 이 씨의 재산을 관리했던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이 씨는 출소 후 오 여인이 자신에게 일언반구 없이 재산을 빼돌린 것을 문제삼았으며, 이로 인해 이들 부부가 87년부터 별거에 들어갔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또 오 여인의 남자관계 때문에 적잖은 갈등을 빚었다는 주변의 증언도 수집됐다.
오 여인은 범행사실을 부인했다. 오 여인은 경찰에서 “14일 밤 10시 20분경 남편을 찾아가 생활비 문제로 말다툼을 벌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밤 11시 30분경 돈을 빌리러 온 문 씨가 찾아왔고 남편과 심하게 다투는 것을 보고 밤 12시쯤 그냥 집을 나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었다. 새벽 2시경 오 여인이 차를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시키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쉽게 해결될 것 같던 이 사건은 문 씨가 진술을 번복하면서 미궁으로 더욱 빠졌다. 문 씨는 애초 “전세금 1500만 원을 빌리러 갔다가 이 씨가 자신과 부인 오 여인과의 관계를 의심해 다투다 목졸라 살해했다”고 진술했지만 “오 여인으로부터 10억 원을 받기로 하고 이 씨를 청부살해 했다”고 진술을 바꾼 것이다.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조사과정에서 문 씨와 오 여인 외에도 또 다른 공모자가 떠올랐다. 바로 문 씨의 부인 손 씨이었다. 하지만 손 씨 역시 범행 사실을 부인했다. 그녀는 “14일 낮 목동의 한 식당에서 남편과 오 여인과 나, 셋이 함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뭔가 골똘히 의논하는 것을 한켠에서 지켜봤을 뿐 나는 범행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일체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사팀은 문 씨를 살인혐의로 구속한 데 이어 오 여인과와 부인 손 씨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지난 2월 초 아내로부터 오 여인이 이 씨를 청부살해하려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내가 맡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청부살인 대가로는 10억 원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같은 달 중순 영등포 신세계백화점 인근 다방에서 오 여인을 만나 온라인 통장을 통해 착수금조로 일단 500만 원을 받았다”는 문 씨의 자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범행 당일 낮 3시반경 목동의 한 일식당에서 문 씨가 부인과 오 여인을 만난 자리에서 ‘오 여인이 이 씨에게 가스분사기를 쏴서 질식시키면 내가 살해하겠다’는 구체적인 범행방법을 모의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이는 이 사건이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라 3인의 사전 모의에 의한 계획적인 범행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문 씨는 “14일 밤 11시경 오 여인의 승용차 트렁크에 숨어서 이 씨의 집에 들어간 후 주차장에서 마루로 통하는 비상계단에 은신해 있었다. 그리고 밤 12시 20분경 오 여인이 남편 이 씨를 향해 가스분사기를 쏘자 밖으로 뛰쳐나오는 이 씨를 안방으로 끌고 들어가 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고 달아났다”고 자백했다.
그렇다면 오 여인은 부동산 거부인 남편을 왜 살해하려 했을까. 수사를 진행하면서 수사팀이 가진 가장 큰 의문은 오 여인의 범행동기였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오 여인은 줄곧 범행사실을 부인했다. 그녀는 ‘문 씨에게 건넨 돈은 어려운 살림을 생각해 단지 돕고 싶은 생각에서 줬을 뿐 범행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오 여인은 범행동기에 대해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 수사팀으로서는 보통 답답한 노릇이 아니었다. 다만 수사과정에서 수집한 정황 및 주변인들의 진술 등을 통해 그녀가 재산을 둘러싸고 문제가 생기자 남편을 살해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었다. 이런 추정은 이 씨와 오 여인이 평소 재산문제로 자주 다퉈왔으며 최근 재산정리를 결심한 이 씨가 오 여인 명의로 해줬던 부동산을 다시 뺏으려 했다는 가족들의 진술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재산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남편을 청부살해했다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이어지는 김 연구관의 얘기.
“당시 오 여인은 이 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초등학생 아들(10)이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 자연히 자신과 아들이 이 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무서운 범행을 계획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범행이 발각되면 재산상속은커녕 어린 아들의 장래까지 망칠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씨는 당시 환갑이 넘은 나이었고 건강상태도 좋지 않았다. 또 다른 의문은 문 씨의 이상한 진술이었다. 문 씨는 ‘오 여인이 이 씨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며 살인을 재촉했다’고 진술했다.”
주범은 밝혀졌지만 범행동기는 드러나지 않는 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었다. 사건발생 2주일이 지나도 사건의 전모는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와중에 수사팀 안팎에서는 “범행에 개입한 제3의 인물이 있다”는 이른바 ‘배후인물설’이 나돌았다. 배후인물로 지목된 사람은 놀랍게도 당시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A 씨였다. 배후설에는 몇 가지 근거도 있었다. 오 여인이 A 씨와 평소 가깝게 지냈다는 측근들의 증언, “지난 87년 오 여인에게 받았다가 돌려준 1000만 원권 수표에 A 씨의 이서가 있었다”는 손 여인의 진술, 오 여인이 사건 직후 남편의 삼우제에도 참석하지 않고 A 씨의 연고지에서 하룻밤 머물렀다는 사실 등이었다. 특히 오 여인이 ‘총선 전에 이 씨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며 범행을 재촉했다는 문 씨의 진술은 더욱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오 여인은 끝내 범행전모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사건발생 15일 만인 3월 30일 오 여인의 범행동기와 배후관련설에 대해서는 끝내 밝혀내지 못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경찰 수사과정 및 결과를 그대로 인정했다. 재조사를 마친 검찰은 “숨진 이 씨가 지난해 8월부터 부인 오 여인이 국회의원 A 씨와 불륜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의심, 이혼수속을 밟으려하자 오 여인이 재산을 상속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평소 알고 지내던 손 여인을 통해 문 씨에게 10억 원을 주기로 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오 씨가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있으나 문 씨 부부의 일관된 진술 및 주변증거 등에 비춰볼 때 범행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었다. 검찰은 또 경찰 수사과정에서 배후인물로 거론됐던 국회의원 A 씨는 사건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오 여인과 문 씨에게는 무기징역을, 문 씨의 부인 손 여인에게는 징역 7년을 확정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