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아무개 씨 등 2명이 KIST 기술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KIST홈페이지. | ||
천만다행으로 나노파우더 기술 유출은 막았지만 검찰에 따르면 다른 기술은 이미 유출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내막을 추적했다.
검찰에 검거된 고 씨는 2007년 11월까지 P&I 사에서 대표이사를 지냈던 인물이다. P&I 사는 KIST에서 국가자금으로 개발한 원천기술들을 상용화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독보적인 기술 중 하나가 바로 ‘나노파우더’. 이는 각종 금속을 나노(10억 분의 1미터) 크기로 쪼개 다른 물질에 부착할 수 있는 기술이다. 고 씨는 이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려다 검찰에 덜미가 잡혔다.
사건은 2007년 11월 고 씨가 P&I 사를 퇴사할 당시 자신이 사용하던 회사 노트북을 반납하지 않고 유출하면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노트북에 담겨있던 기술정보들을 고스란히 외부로 빼돌렸던 것. 뿐만 아니라 고 씨는 외장하드를 이용해 사측의 각종 원천기술 자료들을 백업받아 가지고 나가는 대담함을 보였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당시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고 현재까지도 사태를 제대로 파악 못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기에 퇴사한 주 아무개 씨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KIST의 각종 기술을 외부로 뻬돌렸다. 고 씨와 주 씨는 퇴사 후 함께 I 사를 설립해 각각 대표이사와 상무로 재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I 사에 대해 “회사 이름은 거창하지만 실제로는 빼돌린 국가기술을 판매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국정원 첩보로 시작된 이번 사건은 지난 7월 9일 검찰이 I 사를 압수수색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검찰이 피의자들의 이메일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결과, 회사 내부 서버에서 총 1240여 개의 국가기술 관련 파일들이 발견됐고, 이메일에서는 이 같은 정보를 해외로 유출하려던 정황이 여러 건 발견됐다.
고 씨는 회사를 설립한 후 중국 등지의 해외 업체들과 꾸준히 접촉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빼돌린 P&I 사의 독보적인 기술들을 판매하기 위함임은 물론이다.
심지어 고 씨는 P&I 사의 장비 설계 도면을 통째로 빼내 해외 기업체에 팔아넘기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고 씨가 접촉한 회사는 중국의 한 국영기업. 중국의 우주산업을 총괄하고 있는 국영기업으로 중국 10대 기업에 속할 만큼 거대 규모의 회사다. 하지만 실제로 도면이 넘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 씨가 검찰에 체포됐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고 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는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고 씨의 계획뿐이었는지 아니면 실제 접촉까지 했는지는 좀 더 조사해봐야 알 수 있겠다고 검찰은 밝혔다.
한편 고 씨는 또 다른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나노파우더 건 외에도 고 씨가 국가기술 정보를 해외로 유출하려 한 정황을 상당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검찰은 현재 P&I 사 내부에 협조자가 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고 씨가 이 회사의 대표이사를 지낸 만큼 범행이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이번 사건이 발생한 이후 KIST의 안일한 보안 의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국가과학기술을 선도하는 KIST의 핵심기술 정보가 너무도 쉽게 외부로 유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측 관계자는 “최근에는 일반 사기업도 보안에 대해선 상당히 철저한데 KIST는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퇴사자에 대해선 보안시스템이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