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의 생명 보험금을 노려 후배에게 청부살인을 시킨 1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SBS 화면 캡처 | ||
불과 15세밖에 안 된 동네 소년이 사건 당일 몰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인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불을 지르라고 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그 집 아들 장 아무개 군(17)이라는 사실이었다.
억대 보험금을 노린 10대들의 계획적인 살인사건이었다. 장 군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그날 여자친구(19)와 함께 강원도 평창의 한 펜션에 놀러가 사진을 찍어 나중에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리기도 했다. 경찰에 잡힌 후 범행 동기를 묻자 장 군은 “강남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고 태연하게 대답해 수사팀을 경악케 했다. 10대의 아들이 억대 보험금을 노리고 어린 후배에게 가족 살해를 청부한 충격적인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51.74초.
장 군이 중학 시절 전국소년체전에 나가 400m 트랙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의 기록이다. 장 군은 다른 전국대회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등 육상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모 체육고등학교에 특기생으로 입학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사고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사고로 다리 인대를 다쳐 운동을 그만두게 된 장 군은 학업까지 내팽개쳤다. 그 후 장 군은 동네 후배들과 어울려 다니며 절도 등 크고 작은 범죄를 일삼게 됐다. 장 군이 어린 나이에 전과 9범이 된 배경이기도 하다.
장 군은 평소 친구나 후배들에게 혼자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집에서 보험을 3개 정도 들고 있던 것을 알고 있던 장 군은 어느 날 장난스럽게 해오던 말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함께 범행에 나설 사람을 물색했지만 집에 불을 질러달라는 말에 세 명이나 질색을 하며 거절을 했다고 한다. 결국 장 군이 선택한 사람은 동네 후배 김 아무개 군(15)이었다.
하지만 김 군도 집에 불을 질러 가족을 살해해 달라는 장 군의 부탁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장 군은 “보험금을 받으면 돈도 조금 나눠 주겠다”고 회유하는 동시에 “만약 하지 않으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결국 범행을 함께 하기로 한 김 군은 장 군과 범행 5일 전부터 계획을 세웠다.
평소 새벽에 집에 들어가곤 했던 장 군은 김 군에게 “새벽에 집에 들어가면 엄마와 누나가 모두 잠을 자고 있을 것이고, 내가 들어왔다고 생각해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문에 있는 우유 주머니에 열쇠를 넣어 둘 테니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지르라”고 지시했다. 불을 지를 휘발유는 장 군이 동네에 세워진 오토바이에서 직접 훔쳤다. 휘발유는 준비해 간 10ℓ짜리 통에 절반쯤 찼다. 장 군은 특히 “만약 아버지가 방에서 나오면 흉기로 해치우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건 당일 김 군은 현장에 흉기를 들고 가지 않았고, 아버지도 집을 비운 상태였다.
계획한 날이 되자 장 군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연상의 여자친구와 강원도 평창의 펜션으로 놀러갔다. 시간 정보가 일부러 나오게 사진을 찍는 등 나름의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4시가 넘자 김 군은 약속대로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장 군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유주머니에서 빼낸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거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불은 거세게 타올라 김 군의 옷에도 옮겨 붙었다. 슬리퍼를 신고 있던 김 군은 불붙은 점퍼와 바지를 벗고 슬리퍼까지 팽개친 채 반팔차림으로 허겁지겁 자전거를 타고 도망갔다. 이 모습은 집에서 150m 떨어진 방범용 폐쇄회로TV에 고스란히 찍혔다.
집에 난 불은 출동한 소방대에 의해 15분 만에 꺼졌지만 잠을 자던 모녀의 목숨은 구하지 못했다. 모녀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며칠을 괴로워한 끝에 차례로 숨을 거뒀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장 군은 너무나 침착했다. 평창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미니홈피에 올렸고, 엄마와 누나의 장례도 잘 치렀다. 경찰에게는 아버지가 범인인 것 같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도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고, 수사는 한 달을 끌었다. 그러다 불에 타다 만 점퍼를 증거물로 탐문 수사를 벌인 결과 김 군이 불을 낸 범인임이 밝혀졌고, 다른 강도 사건으로 붙잡혀 있던 김 군은 장 군과 공모해 불을 지른 사실을 자백했다. 수원에 있는 선배의 오피스텔에 숨어 있던 장 군은 11월 7일 경찰에 붙잡혔다.
장 군이 애초 생각하고 있던 보험금액은 1억 원 정도였다고 한다. 중랑경찰서 관계자는 “그 돈이면 강남에서 살며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경찰은 “면목동에 있는 장 군의 반지하 방이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1만 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 군에게 1억 원은 엄청 큰 돈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장 군이 그 돈과 가족의 목숨을 바꿀 만하다고 생각하게 된 ‘진짜 이유’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장 군의 측근에 따르면 장 군은 평소 어머니나 누나와는 잘 지냈다고 한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청소년기에 으레 하는 반항과 꾸지람 정도가 오갔을 뿐 장 군이 아버지에게도 그렇게 크게 불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장 군이 경찰에 붙잡힌 후 죽은 엄마와 누나의 친구들이 장 군을 찾아 경찰서에 면회를 오기도 했다. 하지만 장 군은 자신의 여자친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장 군의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며 대면을 거부했다고 한다.
황태준 인턴기자 herewego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