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속담을 실감하게 만든 사건, 무려 7년 만에 드러난 부창부수 사기단의 기막힌 사기행각 속으로 들어가보자.
재일교포 A 씨(2004년 10월 사망)는 17세 때인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온갖 일을 하며 성실하게 기반을 닦아 나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A 씨는 젊은 날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일본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고 사업에도 성공해 큰돈을 벌게 됐다. 목돈을 모은 A 씨는 1967년 서울 종로구와 강서구 일대에 9900㎡(3000평)의 대지와 건물 3개동으로 이뤄진 부동산을 매입했다.
사업차 대부분의 시간을 일본에 머물렀던 A 씨는 임대업체 S 산업을 설립하고 자신 소유의 부동산을 관리하는 사람을 따로 뒀지만 사기를 당하고 만다. 오랜 해외생활로 인해 국내 사정에 밝지 못한 데다가 자주 국내에 들어와서 수시로 점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A 씨는 95년부터 8촌지간인 송 씨 부부에게 부동산 관리를 맡겼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송 씨 부부는 A 씨가 일본에 거주하고 있어서 부동산 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A 씨가 고령인 데다가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악용, 기가 막힌 사기극을 꾸미기 시작했다.
송 씨 부부는 A 씨가 해당 부동산에 대한 권리 일체를 96년 자신들에게 위임한다는 가짜서류를 작성하는 한편 이 부동산을 20억 원에 샀다는 가짜 계약서도 작성했다. A 씨 소유의 부동산은 2002년 기준 공시지가로는 300억 원이 넘었고 매매가로는 1000억 원에 육박했다.
사전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송 씨 부부의 사기행각은 A 씨가 사망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투병생활을 하던 A 씨가 2004년 10월 일본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 부부는 A 씨 소유의 S 산업법인 도장을 날조해 ‘매매계약을 이행하라’는 뻔뻔한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을 제기했고 위조사실을 알 리 없는 재판부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A 씨가 평생을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일궈낸 소중한 재산이 사기꾼 부부에게 한순간에 넘어간 셈이었다.
하지만 완벽할 것 같았던 이들 부부의 파렴치한 사기행각은 영원히 감춰질 순 없었다. 해당 건물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임차인들이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었다. 임차인들은 해당 부동산의 실소유주가 A 씨이며 그가 일본에 거주하는 관계로 송 씨 부부가 대신 관리만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송 씨 부부의 범행은 평소 A 씨의 철두철미하고 정확한 성격을 익히 알고 있던 건물 세입자들이 그간의 내막을 검찰에 알리면서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하지만 송 씨 부부는 쉽사리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해당 문서가 A 씨의 승낙을 받아 작성된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나선 것. 그러나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임장과 매매계약서 작성 당시 A 씨는 80세의 고령으로 입원 중인 상태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재판부는 또 “A 씨는 평소 서명·날인에 신중해 중요문서에는 항상 한자로 자필서명을 한 후 인감도장을 찍었는데 해당문서에는 자필서명도 없고 기재된 글씨도 A 씨의 필체와 다른 점 등으로 볼 때 위조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A 씨의 자녀가 수사가 시작되고 재판에 이르기까지 송 씨 등을 만난 적이 없다고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어, 피고인들이 A 씨나 A 씨의 가족들에게 일체의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