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박수 칠 때 떠나라>에서 검사가 용의자를 취조하는 장면. | ||
수사결과 임 양을 살해한 범인으로 지목된 인물은 사건 당일 새벽 그녀와 함께 여관에 투숙했던 애인 김철수 씨(가명·27)였다. 놀라운 것은 김 씨가 당시 서울의 한 경찰서에 소속된 순경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김 순경이 구속된 후 1년여 만에 진범이 검거되면서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약 17년 전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던 일명 ‘김철수 순경 누명사건’으로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쓴 한 순경과 당시 수사과정, 진범이 검거되기까지의 숨 막히는 진실게임에 대한 얘기다.
사건은 29일 오전 10시께 경찰에 한 통의 자살신고가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신고를 한 사람은 당시 서울 XX경찰서 관할 파출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김철수 순경이었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김 순경은 사건 당일 새벽 3시 30분께 애인 관계였던 임 양과 함께 이 여관에 투숙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날 오전 7시께 파출소 근무를 하기 위해 임 양을 남겨두고 혼자 여관을 나왔다는 것이었다. 김 순경이 임 양이 있는 여관으로 다시 돌아간 시간은 약 세 시간 후인 오전 10시경이었다. 그런데 새벽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자고 있던 임 양이 죽어 있더라는 게 아닌가. 이에 놀란 김 순경은 임 양이 자살한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부검 결과 임 양에게서는 목이 졸린 흔적이 발견됐고 사인 역시 경부질식사로 판명됐다. 그리고 조사결과 임 양의 죽음은 엄연히 자살이 아닌 타살로 드러났다. 자신이 없는 사이 벌어진 엄청난 일에 김 순경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도대체 불과 3시간 사이 임 양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또 누가, 왜 임 양을 살해한 것일까. 하지만 문제는 목격자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수사팀은 여관 주인은 물론 투숙객들을 상대로 심층적인 탐문 수사를 진행했지만 수상한 사람을 봤거나 새벽녘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다. 모두들 밤새 여관에서 소리소문없이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에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그런데 조사가 진행되자마자 이 사건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바로 최초 신고자이자 임 양의 애인인 김 순경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가장 중요한 것은 임 양이 언제 사망했는지를 밝히는 일이었다. 임 양의 사망추정시각은 범인을 특징짓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임 양의 위 속 음식물의 소화정도와 직장내 온도, 시반과 경직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수사팀은 임 양이 당일 오전 3시에서 오전 5시 30분경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는 이때가 김 순경이 분명 임 양과 함께 있었던 시각이라는 점이었다. 김 순경은 졸지에 유력한 범인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당시 수사팀이 추측한 범행동기는 치정이었다. 수사팀은 김 순경이 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임 양을 살해한 뒤 여관을 빠져나와 근무지에 왔다가 다시 여관으로 돌아간 후 거짓신고를 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뭔가 석연치 않은 정황들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우선 당시 현장은 누가 보더라도 임 양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자살로 신고한 김 순경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 수사팀은 당시 김 순경의 부모가 임 양이 술집종업원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해왔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당시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김 순경은 임 양과 1년 반 동안이나 교제해온 사이였으나 당시 처음 만난 사이라고 진술했다.
수사팀은 김 순경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김 순경은 펄펄 뛰며 범행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임 양과 함께 여관에 투숙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전 근무를 위해 먼저 여관을 나왔다. 다시 돌아가보니 임 양이 죽어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아는 바 없다”는 것이 김 순경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자살로 거짓신고한 것에 대해서도 “순간적으로 겁이 났기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김 순경은 수차례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조사는 종결 분위기였다. 수사팀은 정황상 이미 김 순경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있었던 것이다. 수사팀과 김 순경은 사건 직후부터 혐의를 둘러싸고 팽팽히 맞섰다.
그리고 조사받은 지 사흘째인 12월 첫 날, 김 순경은 모든 범행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임 양과 다투다 목을 졸랐고 임 양이 질식하자 인공호흡까지 시키다가 죽은 줄 알고 도망갔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12월 2일 함께 상해치사 혐의로 김 순경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구속된 김 순경은 12월 4일 검찰에 송치됐다. 사건발생부터 검찰 송치까지 6일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현직 경관이 치정문제로 애인을 살해했다는 소식은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사천리로 진행된 수사과정에서는 미심쩍인 부분들도 상당히 많았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따지고 보면 당시 수사는 허점투성이었다.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은 임 양의 사망추정시간에 대한 정확도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었다. 사망추정시간과 실제 사망시간 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었다. 특히 직장온도측정이나 사체강직정도 등을 근거로 사망시간을 추정할 경우 환경에 따라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당시 김 순경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할 때까지 방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여관 보일러도 가동되지 않은 상태였다. 더구나 임 양은 당시 나체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낮은 실내온도로 사체의 강직속도나 온도에 변수가 있음이 충분히 고려됐어야 했다.”
이상한 점은 이뿐만 아니었다. 조사결과 고려되지 않았거나 묵살됐던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어지는 김 연구관의 얘기.
“조사결과 임 양은 김 순경과 여관에 투숙할 당시 술집주인으로부터 빌린 10만 원권 수표 4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사건발생 후 수표는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수사과정에서 임 양이 갖고 있던 수표 중 2장이 시내의 한 은행에 회수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수사팀은 수표의 유통경로를 추적하지도 않고 너무 성급하게 김 순경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사건 현장인 객실 침대위에 감식이 어려운 타인의 족적이 있었다는 점도 의문이었다. 분명한 것은 김 순경의 족적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또 시트커버 등에서 두 사람의 것이 아닌 타인의 체모가 발견된 것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특히 당시 여관주인은 ‘김 순경과 임 양이 투숙하기 직전 시트커버를 교체했다’고 진술했다. 정황상 제3자가 객실에 침입했을 가능성이 충분했음에도 이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에 송치된 김 순경은 진술을 번복, 무죄를 강력히 주장했지만 검찰은 김 순경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았다. 1심재판부는 정황증거를 토대로 작성된 검찰의 기소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살인혐의가 적용된 김 순경은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김 순경은 1심 판결에 불복, 즉시 항소했다. 김 순경의 변호인은 김 순경이 파출소 근무를 나간 사이 제3자가 침입해 범행을 저지르고 달아났을 가능성과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여러 증거들을 제시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특히 당시 김 순경의 변호인 측은 여관방에서 김 순경의 것이 아닌 정액이 묻은 휴지가 발견된 점, 방안에 제3자의 족적과 체모 등이 발견된 점 등을 내세우며 1심 판결에 팽팽히 맞섰다.
또 재판과정에서 김 순경은 가혹행위와 회유·협박을 이기지 못해 허위자백을 했다고 호소했다. “조사를 받는 사흘 동안 수사관들이 단 1분도 재우지 않았다. 심신이 극도로 지친 상황에서 조사관들이 ‘범행을 부인해도 소용없다. 자백하면 살인이 아닌 폭행치사죄를 적용해 집행유예로 해주겠다’는 협박과 회유를 당했다”는 것이 김 순경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모두 허사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여러 증거들을 종합해볼 때 피고인의 범죄 사실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기록을 살펴보아도 원심의 사실인정 및 판단과정에 아무런 위법을 발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김 순경은 애인살해 혐의로 수감된다.
김 순경의 가족들은 김 순경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그러는 사이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런데 김 순경의 상고심 선고를 앞두고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1993년 11월 24일 새벽 길을 가던 여성을 폭행하고 가방을 훔쳐 달아나는 수법의 강도행각을 벌인 성혁재 군(가명·19)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런데 조사과정에서 성 군의 입에서 믿기 힘든 얘기가 나온 것이었다. ‘그동안 많은 고민을 했는데…’로 시작된 성 군의 고백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지난해 11월 신림동 OOO여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진범이 접니다’라는 것이었다. 사건 당일 성 군은 잘 곳을 찾아 배회하다가 여관에 들어갔고 김 순경이 여관방을 나선 직후인 오전 7시께 임 양이 혼자 자고 있던 방에 침입했다고 털어놨다. 성 군은 임 양의 핸드백 안에 있는 수표를 꺼내려 했으나 잠에서 깬 임 양이 소리를 지르자 목을 졸라 죽이고 달아났다는 것이었다.”
검·경은 발칵 뒤집혔다. 김 순경 살인누명사건을 재수사한 수사팀은 12월 14일 이 사건에 대한 최종수사결과를 발표, 김 순경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은 잘못이었음을 밝혔다.
당시는 김 순경이 살인범으로 몰려 이미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옥살이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사건을 접한 시민들은 “순경 신분임에도 동료 경찰들의 협박과 압력을 이기지 못해 허위자백을 했는데, 일반 시민이 어떻게 견뎌낼까”라며 분노를 표했다.
김원배 연구관의 사건 회고
첫 단추 잘못 꿰 엄청난 오판
김원배 수사연구관은 이 사건을 계기로 수사기관이 뼈아픈 자성을 하고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대검 강력부는 ‘김 순경 사건을 계기로 본 강력 사건의 수사상 문제점과 대책’이라는 책자에서 검찰은 “검시의가 직접 시체를 확인하지 않은 채 경찰의 검증내용을 그대로 믿고 검시 결과서를 작성한 데서 이 사건의 오판이 비롯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현장감식에 소홀했으며 시체의 경직상태에 대한 부정확한 측정이 있었다. 또 수표추적 등 제반 물적증거 확보를 소홀히 해 한 시민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됐다”고 반성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