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건축업자 이 씨는 7층짜리 병원 건물의 완공을 앞두고 자금난에 시달렸다. 건물에 선순위 담보가 설정돼 있어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없던 이 씨는 사채업자 박 씨로부터 1억 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박 씨가 요구한 이자는 한 달에 2000만 원이었다. 법정이자가 연 49%라는 점을 감안하면 박 씨가 요구한 이자는 연 240%로 터무니없는 액수였다.
박 씨는 정해진 기일 내에 1억 원을 변제하지 못할 경우 7층 건물 중 3개 층의 소유권을 이전해 줄 것을 추가로 요구했다. 건물이 분양되면 사채를 금방 갚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이 씨는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제공했다. 그러나 건물이 분양되지 않았고, 이 씨는 변제일 연장 조건으로 1개 층에 대한 추가 담보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박 씨는 1주일씩 기한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두 달 만에 3억 원 상당의 차용증과 건물 전체를 담보로 잡았다. 결국 60억 상당의 건물은 박 씨의 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 씨는 박 씨가 해당 내용이 공란으로 돼있는 계약서에 자신의 도장을 몰래 빼내 찍은 뒤 나중에 40억짜리 계약서로 둔갑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2월 19일 기자와 통화한 광주지방경찰청 수사2팀 관계자는 “자동차를 담보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릴 경우 자동차 소유권 이전 서류를 주는 것이 보통이다. 이 씨 역시 사채업자에게 건물 소유권 이전 서류를 주고 계약서를 스스로 작성한 뒤 1억 원을 빌렸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건설업자가 충분한 자금을 가지고 자기 땅에 건물을 지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영세 건설업자의 경우 대부분 자기 자금 없이 건물을 짓는다. 일단 계약금만 주고 토지 소유권을 이전한 뒤 근저당을 설정해 대출을 받고 땅 값 잔금을 지불한다. 땅을 소유한 이후 하청업체에 줘야 할 공사대금은 건물 근저당 설정으로 대신하는 게 보통이다. 이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사대금 21억 원을 제공받지 못한 하청업자 30여 명은 유치권을 주장하기 위해 이 씨의 건물을 점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박 씨가 최종적으로 60억 상당의 건물 소유권 전체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7월 31일이다. 소유권을 넘겨받은 박 씨가 건물에 근저당을 설정하려했지만 하청업자들이 걸림돌이 됐다. 근저당을 설정하게 되면 은행에서 건물을 감정하기 위해 실사를 나간다. 이 때 실사 나간 은행 관계자가 건물을 점유하고 있는 하청업자들을 발견하면 박 씨는 유치권 금액만큼을 제하고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박 씨는 용역업체를 동원해 하청업자 30여 명을 강제로 건물에서 쫓아냈다. 하청업체 관계자는 박 씨가 동원한 용역업체 사람들이 밤중에 들이닥쳐 문을 강제로 부수는 등 협박을 받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또한 하청업자 중 1인은 유치권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지병이 악화돼 숨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지방경찰청 수사 2팀 관계자는 “하청업자들은 현재까지도 7층 건물 앞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박 씨가 소유권을 이전하고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개입한 공범이 있는지를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박 씨가 이 건물을 담보로 전남 화순에 있는 한 금융기관으로부터 20억 5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서류상 하자가 없더라도 은행관계자가 박 씨와 하청업자들 간의 정황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한 불법행위가 있었는지도 조사할 계획이다. 소유권 이전 서류 작성 과정에 법무사의 개입 여부도 조사할 것이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