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 은행지점장과 ‘짜고 친 고스톱’
개인 대출보다 대출한도를 10~20%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친인척과 지인의 명의를 빌려 지난 2007년 2월부터 2008년 6월까지 ‘D 건설’ ‘S 이노베이션’ 등 유령회사 10곳을 세웠다. 설립한 법인의 명의로 대출을 받기 위해선 거래 은행의 일정 심사를 거쳐야 한다.
기업 대출 요건은 은행마다 내부 규정이 다르다.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1등급부터 10등급까지 매겨지는 회사의 신용등급이다. 신용대출을 받기 위해선 6등급 이상이 돼야 한다. 10곳의 법인을 서둘러 만든 정 씨가 6등급 이상의 신용 등급을 충족시키긴 무리였다. 그러나 그는 A 은행 전직 지점장과의 친분을 이용해 손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은행 지점장을 지낸 B 씨는 분식회계를 통해 기업 대출로 위장하는 요령을 가르쳐줬고, 2008년 당시 지점장 C 씨까지 소개했다.
정 씨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A 은행 사당역 지점 등에서 21차례에 걸쳐 205억 원 상당의 불법 대출을 받았다. 정 씨는 대출받은 돈의 대부분을 수중에 넣었고 일부는 명의대여자와 전현직 지점장에게 나눠줬다.
A 은행은 21차례에 걸친 이들의 대출 행각에 의심을 갖고 지난해 내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유령회사를 차려 205억 원의 불법 대출을 받은 사실까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여파로 당시 많은 국내 기업들이 자금난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펜션 관련 부동산 개발업을 하던 정 씨 역시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정 씨가 대출금을 계속 상환하지 못하자 A 은행은 이를 부실대출로 판단하고 전 지점장 C 씨를 비롯한 은행 직원들의 책임을 물어 정직, 감봉 등의 징계조치를 내렸다.
서울 시내 여러 곳의 은행 감사 업무를 보던 공인회계사 임 아무개 씨는 2월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업 대출을 심사하는 대부분의 은행이 해당 회사에서 제출한 재무제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서 “자산총액 100억 원 이상의 기업 대출의 경우 외부 회계사로부터 감사를 받아야 한다. 한 법인의 자산 총액을 기준으로 100억 원을 산정하기 때문에 정 씨처럼 개인이 여러 곳의 법인을 설립해 자산 총액을 분산시킬 경우 은행의 감사 수단이 약해지게 된다”면서 기업 대출 심사의 한계를 지적했다.
은행의 내사 종결로 끝나는 듯했던 이 사건은 정 씨에게 명의를 대여한 관계자의 고발로 밝혀지게 됐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205억 원의 부정대출을 받아 가로챈 정 씨 등 16명을 횡령,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입건하고 전현직 지점장 2명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서부경찰서 지능팀 관계자는 2월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피의사실을 미리 공표할 수 없기 때문에 세부적인 수사 과정은 밝힐 수가 없다”면서 “전현직 지점장을 구속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일부 언론에서 잘못 보도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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