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3일 서울 이화여대 ECC 삼성홀에서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미디어데이&팬페스트’가 열렸다.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10개 구단 감독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넥센 염경엽 감독, 두산 김태형 감독, LG 양상문 감독, SK 김용희 감독, 삼성 류중일 감독, 한화 김성근 감독, NC 김경문 감독, kt 조범현 감독, KIA 김기태 감독, 롯데 이종운 감독.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물론 감독 경력과 나이, 야구를 하면서 걸어온 길은 각양각색, 천차만별이다. 화려한 스타플레이어 출신도 있고 은퇴 이후 감독으로 뒤늦게 꽃을 피운 대기만성형도 있다. 그러나 이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 하나는 확실하다. 모두 ‘우승’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한다는 점이다.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열 명의 감독이 자웅을 겨루는 2015 시즌. 그물망처럼 얽히고설킨 승부사들의 남다른 인연들을 짚어 봤다.
# 70대·60대 각 1명, 50대·40대 각 4명
올 시즌 감독들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연령대에 포진해 있다. 한화 김성근 감독(73)이 70대, SK 김용희 감독(60)이 60대. 나머지 여덟 명의 감독은 50대와 40대로 반반씩 나뉜다. NC 김경문(57), kt 조범현(55), LG 양상문(54), 삼성 류중일 감독(52)이 관록으로 무장한 50대. 롯데 이종운(49), 두산 김태형(48), 넥센 염경엽(47), KIA 김기태 감독(46)은 패기 넘치는 40대다. 최고령인 김성근 감독과 최연소인 김기태 감독은 무려 만 27세 차이가 난다. 게다가 유임 감독과 신임 감독도 정확히 반반으로 갈라진다. 지난해 4강에 들지 못한 SK, 두산, 롯데, KIA, 한화가 모두 스토브리그 때 감독을 교체했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 같은 백전노장부터 이종운, 김태형 감독 같은 신인 사령탑까지 각기 다른 역사를 가진 감독들이 두루 포진했다.
# 씨줄과 날줄로 얽힌 감독들의 인연
신기하게도 이 모든 감독들의 인연은 상하 혹은 좌우로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다. 어느 팀의 어떤 감독끼리 대결해도 소위 ‘엮을’ 수 있는 얘깃거리들이 넘쳐난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교집합은 ‘2000년 삼성’이다. 당시 김용희 감독이 1군, 김성근 감독이 2군에서 각각 지휘봉을 잡았다. 조범현 감독은 배터리코치, 류중일 감독은 작전코치, 김기태 감독은 선수였다. 2015년의 현역 감독 가운데 절반인 다섯 명이 15년 전 한 팀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또 김성근, 조범현, 김기태 감독은 1997년과 1998년 쌍방울에서도 감독과 코치, 선수로 한솥밥을 먹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범현 감독이 이끌던 2003년 SK의 주장은 바로 김기태 감독이었다. 김용희 감독과 이종운 감독은 롯데가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1992년에 코치와 선수로 함께했다. 그 해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2승을 따내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는데, 그 결과로 경질됐던 삼성 사령탑이 바로 김성근 감독이었다.
김경문, 조범현, 김태형 감독이 모두 두산의 전신인 OB 포수 출신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김경문, 조범현 감독은 입단 동기이자 라이벌이었고 각각 두산(김경문)과 SK·KIA(조범현)를 한국시리즈로 이끄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또 차례로 제9구단 NC와 제10구단 kt의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신생팀을 빠르게 1군 전력으로 끌어올리는 저력을 보였다. 1990년 OB에 입단해 김경문, 조범현 감독을 선배로 ‘모셨던’ 김태형 감독은 훗날 두산 사령탑이 된 김경문 감독을 배터리코치로 보좌했다.
# 청출어람, 김성근 감독의 대단한 제자들
특히 올해 한화로 복귀한 김성근 감독은 10개 구단 사령탑이 쌓은 인연의 피라미드에서 꼭짓점 같은 존재다. 그가 지난해 말 한화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많은 감독들은 다시 ‘김성근의 제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김성근 감독은 1984년 OB 감독을 시작으로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 SK 등의 사령탑을 거쳤다. 한화가 벌써 프로에서만 일곱 번째 팀이다. 그 사이 김성근 감독 휘하에서 뛰었던 프로 선수들의 숫자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감독들 가운에서도 김성근 감독과 인연이 없는 인물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일단 김경문, 조범현, 양상문, 류중일, 김기태 감독이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김태형 감독은 신일중 재학 당시 신일중·고 야구부 총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에게 지도를 받았던 인연이 있다. 김용희, 염경엽, 이종운 감독, 단 셋만이 김성근 감독과 사제의 연을 맺지 않았다.
이 가운데 OB 시절 제자였던 김경문 감독과 조범현 감독은 프로야구 최고의 무대인 한국시리즈에서 김성근 감독과 사령탑으로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김경문 감독은 두산 사령탑 시절이던 2007년과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성근 감독이 이끌던 SK와 만나 명승부를 펼쳤다. 두 김 감독의 팽팽한 기싸움이 정규시즌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이어진 덕분에 두산과 SK는 200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신흥 라이벌로 통하기도 했다.
조범현 감독은 KIA 지휘봉을 잡았던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성근 감독과 제대로 맞붙었다. 조범현 감독이 2006 시즌을 끝으로 SK 지휘봉을 놓은 뒤 김성근 감독이 차기 사령탑으로 부임했던 얄궂은 사연까지 겹쳐 더 흥미진진했다. 게다가 조범현 감독과 김성근 감독은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쌍방울에서 감독과 배터리코치로 함께 했던 관계. 다른 감독들보다 더 깊고 끈끈한 인연이 있다. KIA는 SK와 7차전까지 이어지는 치열한 승부 끝에 결국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조범현 감독은 스승의 뒤를 이어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가 하면 양상문 감독도 김성근 감독의 애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유명했다. 양상문 감독이 부산고 에이스로 활약하던 시절 고교야구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김성근 감독과 처음 만났다. 양상문 감독은 1989년과 1990년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태평양에서 선수로 뛰었고, 2002년에는 LG 투수코치로 김성근 감독을 보좌했다. 공교롭게도 양상문 감독과 김성근 감독은 같은 시기에 프로야구 지휘봉을 잡았던 적이 없다. 따라서 4월 7일 시작되는 LG와 한화의 대전 3연전은 두 감독이 프로 사령탑으로서 처음으로 맞붙는 무대가 된다.
# 고려대 출신만 4명, ‘금메달 감독’도 셋
김기태-염경엽 감독. 연합뉴스
염경엽, 김기태 감독은 광주 충장중과 광주제일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죽마고우다. 염경엽 감독이 중학생 때 1년 유급을 하면서 둘은 동기가 됐고, 광주일고 시절 전국대회 우승을 함께 이끌었다. 염경엽 감독이 LG 운영팀장으로 일하던 시기에 김기태 감독이 부임하면서 한 팀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다. 염경엽 감독이 넥센으로 부임해 서로 승부를 겨루게 된 뒤에도 여전히 속내를 터놓는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학연이나 지연보다 더 흔치 않은 인연으로 연결된 감독들도 빼놓을 수 없다. 현역 감독 가운데 야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금메달을 따낸 사령탑이 셋이나 있기 때문이다. 김경문 감독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8전 전승 신화와 함께 한국 야구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왔다. 조범현, 류중일 감독도 각각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과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우승팀을 지휘하면서 명실상부한 명장으로 자리를 굳혔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김응용-선동열 빛과 그림자 타이거즈 전설들, 대기록 남기고 퇴장 지난해 10월 17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8위 KIA와 9위 한화의 시즌 최종전. 양 팀 더그아웃에는 한때 광주를 야구로 들썩거리게 했던 두 감독이 마주 보고 있었다. 이제는 필드를 떠난 한화 김응용(74), KIA 선동열 감독(52) 얘기다. 김응용 전 한화 감독, 선동열 전 KIA 감독. 사진제공=한화 이글스,KIA 타이거즈 언제까지나 화려하게 빛날 것만 같았던 두 야구 전설은 다소 쓸쓸한 모습으로 2014년의 마지막을 맞아야 했다. 김응용 전 감독은 2013년 한화 지휘봉을 잡고 8년 만에 필드로 컴백했지만, 2년 연속 최하위에 그치면서 익숙지 않은 패배의 쓴맛을 봤다. 선동열 전 감독은 2012년 광주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고향팀으로 돌아왔다가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결국 ‘그 경기’를 끝으로 김 감독은 한화 사령탑에서 물러났고, 선 감독은 재계약에 성공하고도 팬들의 반발에 자진사퇴했다. 그러나 두 감독이 남긴 업적까지 빛이 바랠 수는 없다. 김응용 전 감독은 프로야구 역사에 한국시리즈 우승 10회와 감독 통산 1567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당분간 그 어떤 감독도 넘볼 수 없는 숫자다. 선동열 전 감독은 현역 시절 통산 146승 40패 132세이브에 방어율 1.20이라는 전대미문의 성적을 남겼다. 20승만 세 번, 완봉승도 29번이나 했다. 감독이 된 뒤에는 2005년부터 2년간 삼성의 통합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김응용과 선동열이 여전히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스승과 제자인 이유다. [은] |
감독 재계약 뒷얘기 몸값은 ‘야신’보다 ‘야통’ 재계약. 모든 프로야구 감독들의 꿈이다. 프로야구 출범 이래 수십 명의 감독들이 지휘봉을 잡아왔지만, 두 번째 계약서에 사인을 한 감독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올 시즌 프로야구를 이끌 열 명의 감독 가운데서도 ‘집권 2기’를 허락 받은 감독은 단 셋. NC 김경문, 삼성 류중일, 넥센 염경엽 감독뿐이다. 열 명 중 절반인 다섯 명은 지난해 말 계약한 신임 사령탑인데, 바꿔 말하면 한꺼번에 다섯 명의 감독들이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뜻도 된다. 구단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기가 그만큼 어렵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류 감독의 첫 임기가 끝나자 삼성은 마침내 3년 총액 21억 원(계약금 6억 원, 연봉 5억 원)이라는 숫자가 적힌 새 계약서를 내밀었다. 류 감독의 재계약과 함께 사상 처음으로 감독 연봉 5억 원 시대가 열린 것이다. 류 감독은 ‘류중일 2기’의 첫 해인 지난 시즌에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통합 4연패를 이끌면서 더 단단한 믿음의 뿌리를 내렸다. 세 배 가까이 오른 몸값에 걸맞은 지도력이었다. 게다가 계약금 가운데 2억 원을 뚝 떼어 자선단체에 기부해 화제가 됐다. 김경문, 염경엽 감독은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계약을 더 좋은 조건으로 갱신하는 파격 대우를 누려 다른 감독의 부러움을 샀다. 김경문 감독은 2014 시즌을 앞두고 3년간 총액 17억 원(계약금 5억 원, 연봉 4억 원)에 재계약했다. 2012년부터 3년간 팀을 이끌기로 했던 김 감독의 공식 임기는 아직 한 시즌이 더 남았던 상황. 그러나 NC는 감독이 기존 계약보다 2년 더 팀을 지휘할 수 있도록 미리 보장하겠다고 나섰다. 2년 전 3억 원이던 계약금을 5억 원으로 올려 팀의 초석을 잘 다진 공로에 보답하기도 했다. 단단한 신뢰를 등에 업은 김 감독은 재계약한 첫 시즌부터 NC를 창단 3년 만이자 1군 진입 2년 만에 포스트시즌으로 이끄는 기염을 토했다. 1년 후 염경엽 감독이 그 뒤를 이었다. 2014 시즌이 끝난 뒤 넥센과 3년 총액 14억 원(계약금 3억 5000만 원, 연봉 3억 5000만 원)에 재계약한 것. 김 감독과 마찬가지로 계약 기간이 1년 더 남은 상태에서 새 계약서를 다시 썼다. 2년 전보다 계약금과 연봉이 모두 1억 5000만 원씩 올랐다. 임기 첫 해부터 팀을 창단 첫 포스트시즌에 올려놓고, 두 번째 해에 한국시리즈까지 이끈 지도력을 인정받은 덕분이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