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하프 패스트 데드>에 출연한 스티븐 시걸. | ||
현대인들이 여가 활동으로 가장 손쉽게 선택하는 것이 바로 비디오 감상. 물론 최근에 출시된 극장 개봉작이 가장 큰 인기를 끌지만 개개인이 선택하는 장르는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비디오 선택 취향에는 그 사람의 성격과 생활 방식이 반영되게 마련. 그렇다면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비디오에서도 어떤 뚜렷한 특징이 나타나지 않을까.
이른바 ‘나가요촌’(호스티스들이 주로 모여 사는 동네)과 고시촌, 대학가 등지의 비디오 대여 순위를 비교해 그들의 영화 취향과 독특한 생활 스타일을 분석했다.
고시생들은 왕성한 나이에 외롭게 공부에 매달리는 이들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에 집중하지만 이들에게도 휴식은 필요하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하는 이들이 주로 찾는 휴식공간은 비디오방과 만화방, 그리고 PC방 정도. 그 가운데 가장 손쉽게 찾는 곳이 바로 비디오방이다. 때문에 신림동 고시촌의 비디오방은 대부분 1인용이다.
그렇다면 고시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어떤 장르일까. 물론 극장에서 영화를 볼 기회가 적기 때문에 비디오로 출시된 최근 개봉작들이 인기 영순위. 이 가운데서도 액션 영화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최근 극장가에서 대박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코미디 영화는 의외로 별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웃음보다는 통쾌한 액션으로 스트레스를 풀고자 하는 고시생들의 심리가 반영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손님의 대부분이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들이지만 고시촌에서 에로 비디오는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 못한다고. “몇몇 마니아들만 찾는 수준”이라는 게 비디오방 업주들의 설명이다.
['에로물'마니아만 찾는 수준]
고시촌 비디오방에서 지속적으로 인기를 끄는 비디오는 스티븐 시걸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액션 영화. 올해 개봉해 흥행에 실패했고 비디오 대여 순위도 높지 않았던 <하프 패스트 데드>가 이 지역에서는 스티븐 시걸 출연작이라는 이유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을 정도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등지에 형성돼 있는 ‘나가요 촌’에 위치한 비디오방의 경우 대부분의 손님이 20대 초반의 여성들이다. 밤낮이 뒤바뀐 생활 탓에 극장을 찾기 어려운 여성들이 많아서인지 이곳에서도 극장 개봉작이 가장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고시촌과 다른 점은 코미디물이 대여 앞순위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특히 극장에서 대박을 기록한 한국 코미디 영화는 변함없는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나가요 걸’들 사이에서 무협 비디오 시리즈가 인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이는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무협소설 인기가 비디오로 이어진 것이라는 게 업주들의 설명이다. 때문에 업주들이 일부러 청계천 등지에 가서 20여 편 이상의 시리즈로 구성된 중고 무협 비디오를 구입해 오기도 한단다.
결과적으로 상당수 ‘나가요 걸’들이 코미디물이 주는 웃음과 무협물이 주는 통쾌함으로 간밤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있는 셈이다.
이 두 곳에 비해 대학가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업주들에 따르면 대학생들 중에는 비디오방을 영화 감상 이외의 ‘용도’로 활용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은 듯하다.
['은밀한 공간'변질되기도]
극장 최근 개봉작과 함께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는 영화는 다름 아닌 상영시간이 긴 영화.
실제로 다른 지역에서는 별 인기가 없는 <러브 오브 시베리아>가 신촌 대학가에서는 최고 인기작이다. 이 영화는 러닝타임이 1백60분으로 시중 비디오 중 가장 상영 시간이 긴 영화로 알려져 있다. 업주들은 이런 ‘장편’ 영화가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는 이유를 ‘조금이라도 긴 시간 동안 별도의 용무(?)를 치르기 위함’으로 풀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