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의 중학교 동창이면서 정치권에 발이 넓은 경영컨설팅업체 대표 장 아무개 씨가 이번 포스코건설 비자금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반면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의 경우 수사 속도가 더딘 게 사실이다. 검찰 수사가 정동화 전 부회장의 턱 밑까지 간 상황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 핵심 피의자이면서 정 전 부회장의 중학교 동창으로 알려진 장 아무개 씨를 구속해 조사 중이지만, 정·관계 마당발인 장 씨가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장 씨가 검찰에 협조해 입을 열면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면서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 갑자기 등장한 장 사장…정·관계 마당발로 거물 행세
검찰은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3월 27일 저녁 8시 30분쯤 출입기자들에게 단체 문자를 한통 보내왔다. 포스코건설 수사와 관련, ‘I 사 장 아무개 사장을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I 사란 업체는 무엇을 하는 곳이며, 장 사장은 또 누구란 말인가. 메시지를 받은 기자들은 갸웃거렸다. 그동안 포스코건설 수사 과정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던 업체와 인물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적잖이 당황했던 것이다. 궁금증은 전화 몇 통으로 풀렸다. I 사는 경영컨설팅업체이며, 장 사장이라는 사람은 ‘업계’에서 나름 유명한 장 아무개 씨(64)로 드러났다.
당시만 해도 검찰은 장 씨에 대해 “별로 주목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포스코건설의 여러 하청업체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구속되고 며칠 뒤 “장 씨가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당신들이 나를 처벌할 수 있겠느냐’며 거물 행세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실제로 거물 행세를 하고 있다”며 “분명한 건 장 씨가 일개 하청업체 대표는 아닌 듯하다. 그러니깐 그렇게 오랫동안 나름 사업가로 살아남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장 씨에 대한 검찰의 태도가 며칠 만에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일개 하청업체 사장에서 검찰이 예의주시하는 거물(?)이 돼 있었다.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는 “장 씨가 정·관계 인사들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태도 변화 이유를 귀띔했다.
실제로 장 씨를 아는 이들은 그가 정·관계에 인맥이 두터운 ‘마당발’이라고 말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 사업가로 활동하면서 정·관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다보니 그의 이름은 1997년 이른바 총풍 사건,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 2007년 공무원연금공단 대출 청탁 사건, 2008년 교원공제회 이사장 로비 사건 등에도 잇따라 등장한다.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회창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과 대북사업가 장석중 씨 등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관계자를 만나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던 총풍 사건 재판 과정에서 장 씨가 새정치국민회의를 돕기 위해 방북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장석중 씨는 당시 “김대중 후보 쪽의 국민회의도 북풍을 차단하기 위한 EM(Emergency)프로젝트를 운영했고, 핵심 세력은 엄삼탁 국민회의 부총재와 장○○ A 개발 회장”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 2002년 12월에는 대우건설이 건넨 현금 15억 원을 당시 한나라당 대선 캠프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대우건설의 하청업체 대표였던 장 씨는 고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정치권에 금품을 전달하는 창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장 씨는 대우건설로부터 받은 불법 정치자금 3억 원을 2003년 2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새천년민주당 측에 전달한 의혹으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2007년에는 제주 오라관광단지 사업에 참여한 시공사의 대출 편의를 위해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등에게 청탁을 해주고 50억 원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기소된다. 당시 장 씨를 기소한 이가 박성재 현 서울중앙지검장이다. 박 지검장은 그때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 부장검사였다. 장 씨는 이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추징금 35억 원이 확정 선고됐다.
이어 2008년엔 한국교원공제회가 660억 원을 투자한 경남 창녕의 실버타운 ‘서드에이지’ 건설의 시행·시공사로 참여하면서 김평수 전 교원공제회 이사장에게 4000만 원을 건넨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를 받기도 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당시 이 사건 담당 부장검사였다.
# 장 씨 입은 ‘판도라의 상자’…그러나 쉽게 열리지 않을 듯
정동화 전 부회장(오른쪽)의 중학 동창인 장 씨가 ‘윗선’까지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장 씨를 잘 아는 이들에 따르면 검찰이 그의 입을 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 수사관 출신 인사는 “2004년부터 간간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만났었는데 그 때도 거물행세를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정권을 넘나들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입이 무겁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죽어도 입을 열지 않을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 인사는 특히 “2007년과 2008년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장 씨의 입을 열려고 엄청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장 씨를 잘 아는 한 사업가도 “그동안 숱한 사건에 휘말리면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멀쩡하게 살아남는 것을 보면서 입조심을 하면서 여야 정치권을 모두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장 씨가 특히 이명박 정부 실세들과 친하다는 것은 업계에선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 씨가 정동화 전 부회장은 물론 정준양 전 회장 등 포스코그룹 실세들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장 씨가 포스코 직원들의 인사청탁 창구였다는 얘기까지도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장 씨가 포스코건설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정·관계 로비에 쓰는 등 모든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을 개연성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실제로 장 씨는 포스코건설의 베트남 고속도로(노이바이~라오까이 구간) 건설 사업에서 박 아무개 전 베트남 법인장(구속)을 도와 20억 원대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업무상 횡령 등)로 구속됐다. 또 장 씨는 중학교 동창인 정동화 전 부회장에게 부탁해 W 건설과 S 건설을 베트남 도로공사 하청업체로 참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장 씨가 정동화 전 부회장과는 매우 친밀한 관계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마도 정치권 로비 명단을 불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인맥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 전 법인장이 비자금 중 수십억 원을 따로 챙긴 것처럼 장 씨도 자기 몫을 별도로 가져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비자금 배분 과정에서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면 장 씨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입을 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이 비자금 배분 과정까지 들여다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장 씨가 계산에 매우 철저하고 밝은 사람 같다”며 “본인 입으로 ‘어디까지 얘기할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그 입에서 정치권 인사들의 이름을 실제로 들을 수 있으려면 본인도 여러 가지로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하는 만큼 검찰도 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외부로 그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장 씨의 입은 열리기만 하면 ‘판도라의 상자’가 되면서 정국을 뒤흔들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법처리 되고 몇 년 뒤 또 다른 사건에서 그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