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점수는 넘었지만 부실우려가 있는 기업은 관리대상계열로 분류돼 신규사업 진출, 해외투자 등 중요한 영업활동에 관해 사전에 주채권은행과 협의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금호아시아나, 대성, 대우건설, 동국제강, 동부, 성동조선, 한라, 한진, 한진중공업, 현대, 현대산업개발, SPP, STX, STX조선해양 등 14개 대기업이 부실우려가 있는 약정 체결대상으로 선정돼 자산매각, 인력 감축 등 혹독한 구조조정이 실시됐다.
CEO스코어가 30대 그룹 274개 계열사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토대로 고용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폭 인력 감축이 실시된 곳은 대부분 이들 재무구조개선 작업이 진행된 기업들이다. 대우건설은 6382명에서 5543명으로 직원 수가 줄어 감소율(13.1%)이 가장 컸다. 동부가 11.3% 감소해 뒤를 이었다. 이어 영풍(-9.6%), KT(-7.4%), 현대(-6.4%) 등이 5% 이상 고용 규모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동국제강(-3.9%), 코오롱(-3.2%), 대림(-3.0%), OCI(-2.0%), LS(-1.8%), 한진(-1.0%), 두산(-0.9%)도 직원 수를 줄였다.
한 석유화학 기업 관계자는 “지난해 인력 구조조정 한파가 1997년 외환위기 때에 버금갔다는 이야기가 사실로 확인된다”면서 “지난해 실적 부진을 겪은 기업들과 업종이 많아 올해도 지난해보다 더한 인력감축 칼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그룹의 자구계획 이행은 현재 85% 수준이다. 추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단 뜻이다. 현재 진행 중인 금융 3사(현대증권·현대자산운용·현대저축은행) 매각 작업을 완료할 경우 각 기업별로 구조조정이 실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통신사들도 인력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기본급 80개월치 보상금’으로 화제가 됐던 SK텔레콤의 특별퇴직에선 지난 6일자로 200여 명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근속연수 15년 이상이 대상으로, 기본급 50개월이었던 보상금을 80개월로 늘리자 신청자가 몰린 것으로 전해진다. SK그룹 차원의 통신사업 재편의 사전 정지작업이란 관측이 많다.
최근 기업 사정의 타깃이 된데다, 중국산 저가 제품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최악의 위기에 빠진 철강업계도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다. 포스코그룹은 비자금 수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3월 권오준 회장 취임 이후 진행돼온 구조조정 작업이 잠시 중단된 상태이지만,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 다시 재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8일 합병을 선언한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도 경비절감과 중복부문 조정 차원의 인력 구조조정이 예상되고 있다. 삼성그룹에서도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다시 시도되고, 인력감축이 현안으로 부상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재계에선 유통업계도 심상찮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실적 부진으로 인력 감축설이 나돌고 있다. 국내 대형 마트 업계 1위인 이마트는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2013년보다 20.7% 감소했다. 국내 홈쇼핑 업계 1위인 GS홈쇼핑도 영업이익이 1년 전 1566억 원에서 1414억 원으로 줄었다. 이마트는 영업이익이 2011년 분사 후 처음으로 감소했고, GS홈쇼핑은 2년 연속 이어오던 영업이익 두 자릿수 성장을 멈추고 감소로 돌아섰다.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 리처드 힐 전 SC은행장.
그런 와중에도 최고경영자(CEO)는 거액의 연봉을 챙겨 비난 여론의 화살을 맞았다. 지난해 은행연합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은 대규모 구조조정 중에 근로소득 25억 원, 퇴직금 46억 원 등 총 71억 원의 보수를 챙겼다.
지난해 실적 악화로 646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SC은행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2013년 17개, 지난해 44개 등 총 61개의 영업점을 폐쇄한 데 이어 지난해 초 15년 이상 근속한 200여 명의 직원들마저 내보냈다. 지난해 초 퇴임한 리처드 힐 전 SC은행장은 급여와 상여금, 복리비용 등 명목으로 총 27억 원의 금융권 최고 수준 보수를 챙겼다.
기업 사정으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기업들도 구조조정 악재에 휩싸여 있다. 성완종 전 회장의 사망소식으로 더욱 침울한 분위기의 경남기업은 법정관리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된다. 앞으로 채권·채무가 동결된다. 또 법원 관리 아래 자산 매각 등을 통한 채무 변제와 강도 높은 구조조정도 거치게 된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