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영 | ||
과연 무엇이 이토록 실미도에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실미도의 성공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거론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조연들의 빼어난 연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실미도> 제작진과 주연 배우들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서른한 명이 모두 주인공이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로 조연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조연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빛을 발하고 있는 대표적 조연배우들을 만나보자.
- 설경구와 연기맞장 정재영
정재영(한상필 역)은 영화 속에서 설경구(강인찬 역)와 대척점을 이루면서 결코 뒤지지 않는 연기력을 과시한다. 설경구가 뼛속까지 사무쳐 있는 아버지에 대한 한을 ‘진지하게만’ 표현한다면 그는 등을 지지는 쇠막대마저 ‘저 새끼(설경구)가 참길래’ 참아내고야 마는, 그 독함마저 코믹하게 그려내는 캐릭터다.
정재영은 이미 오랜 기간 연극무대와 여러 편의 영화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온 배우. 특히 <피도 눈물도 없이>와 <킬러들의 수다>에서의 그의 모습을 인상 깊게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등 장진 감독의 영화에 자주 출연했던 정재영은 일명 ‘장진사단’으로 통하기도 한다.
정재영은 “그간 연기해온 잔인하고 비열한 인물들이 <실미도> 속 한상필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그가 <실미도>에 캐스팅된 것 또한 스태프들의 ‘강추’ 때문이었다고. 강우석 감독마저 “난 잘 모르겠는데 상필이는 꼭 정재영이 해야 한다고 하더라”는 ‘캐스팅 비화’를 밝히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실미도> 다음으로 도전할 작품은 의외로(?) 멜로물이다.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에서 이나영을 상대로 첫사랑을 끝까지 지키는 2군 프로야구선수 역을 맡게 될 예정. “내 이름이 왜 없어, 나 한상필이야”라는 <실미도> 속 대사처럼 이제 정재영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제법 많지 않을까.
▲ 강신일 | ||
<실미도>를 본 관객들 중 상당수가 ‘2조장 아저씨’의 이름을 궁금해한다. 낯이 꽤 익지만 이름을 몰라 안타깝기까지 하다는 것.
<실미도>에서 684부대의 2조장 ‘근재’ 역을 맡은 이는 강신일이다. 그 역시 지난 86년 연극 <칠수와 만수>로 데뷔한 실력파로 10여 년 넘게 연극무대에만 서오다 99년 <이재수의 난>으로 영화계에 진출했다.
지난 설 연휴 TV에서 방영된 <광복절 특사>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한 이들은 ‘바로 저 사람!’이라며 반가워했을 것이다. 역시 설경구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광복절 특사>에서 강신일은 보안과장 역을 맡아 <실미도>와는 전혀 다른, 다소 어리숙하고 코믹한 연기를 선보였다. 이밖에 <공공의 적> <청풍명월> <천년호> 등에서 그는 친숙한 이미지로 팬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그러나 수많은 영화 중 정작 강신일이 연극무대에서와 같은 ‘짜릿한’ 연기 경험을 한 것은 바로 <실미도>에서다. 애초부터 ‘실미도 사건’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영화 속에서 과묵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2조장 역을 그럴듯하게 소화했다. 강 감독마저 영화 속 ‘근재’라는 캐릭터의 개성을 강인찬(설경구 분)의 강렬함에 이어 ‘2순위’에 꼽을 정도.
특히 내무반에서 자신에게 덤비는 1조장 한상필(정재영 분)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장면은 관객들이 꼽는 명장면 중 하나. 이 장면은 시나리오에 없었던 것으로 강 감독의 현장 연출력이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강신일은 지난달 8일부터 공연된 <한씨 연대기>라는 연극으로 오랜만에 무대에 복귀했다.
▲ 임원희 | ||
<실미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 중 하나가 임원희가 연기한 훈련병 ‘원희’다. 임원희는 특유의 코믹연기로 무거울 수 있는 극중 분위기를 한 톤 가볍게 이끌어간다.
어느 집단에서나 꼭 한 명은 있을 법한 ‘나서기 좋아하고 말썽을 일으키는 인물’이 바로 훈련병 ‘원희’. 임원희는 훈련 중 등에 불도장을 찍는 ‘심각한’ 장면에서조차 웃음을 자아내더니 결국은 탈영과 강간이라는 ‘대형사고’를 치고 강인찬의 손에 최후를 맞이한다.
임원희 역시 1995년 연극무대를 통해 데뷔했다. 이후 <기막힌 사내> <간첩 리철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공포택시> 등 꽤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정작 그의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0년 <다찌마와 리>를 통해서다.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과연 임원희만이 소화할 수 있는 연기”라는 평을 듣기도 한 그는 작품마다 진지하면서도 코믹한 연기로 마니아팬들을 만들어왔다. 이번 <실미도>에 투입된 그에게 강우석 감독은 “비극 속의 희극을 연기하라”는 ‘임무’를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코믹한 캐릭터라고 해서 훈련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을 터. 임원희는 “마치 군대를 다녀온 기분”이라며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몸’이 만들어진 덕분에 촬영 중반부를 넘어설 때부터는 매서운 날씨에도 선뜻 웃통을 벗어던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겨나더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