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젊은 톱스타들이 강력한 엔진 역할로 한국 영화계를 주도해 나가는 동안 중·장년배우들은 확실한 윤활유 역할을 수행해왔다.
영원한 ‘미달이 아빠’ 박영규는 촬영장의 대표적인 ‘분위기 메이커’. 50대의 나이에 <고독이…>의 막내에 합류한 박영규는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 <라이터를 켜라> 등에서 감칠맛 나는 조연 연기로 관객들을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바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즐거운 이들은 바로 고된 촬영으로 지친 현장 스태프들과 동료배우들이다.
“조용한 걸 못 견디는 분, 박 선배만 나타나면 현장이 즐거워진다”(장항준 감독), “스태프와 마을 주민을 위해 노래까지 불러주며 재미있게 일하도록 도와줬다. 덕분에 현장이 즐거워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이민용 감독) 등 그의 분위기 메이킹 능력에 대한 칭송이 줄을 잇는다.
▲ (왼쪽부터)김무생,선우용녀,송재호 | ||
후배 배우들이 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배우는 부분은 결코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이다. 개성파 조연으로 유명한 양택조는 몇 년 전 휴대폰 CF 촬영 도중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다. 당시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 새벽 시간을 쪼개 CF 촬영을 강행하다 결국 쓰러진 것. 하지만 정신이 들자마자 촬영장으로 달려가 다시 촬영에 임하는 열정을 보였다. 이후 양택조는 본격적으로 체력관리를 해왔는데 <고독이…> 출연진 가운데 최고령자지만 건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큰소리다.
반면 건강 문제로 주변의 걱정을 많이 샀던 이는 김무생이다. 올해 61세인 김무생은 과거 연기 때문에 건강을 크게 상한 적이 있었다. 젊은 시절 드라마 촬영을 위해 겨울바다에 들어갔다가 폐에 문제가 생겼던 것. 최근 연기에 몰입하면서 폐에 다시 무리를 줄까봐 건강관리에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 부자(父子) 배우이기도 한 김무생은 <…홍반장>에 출연한 아들 김주혁과 3월 극장가에서 한판 대결을 펼칠 예정이라 촬영장에서 더욱 뜨거운 열정을 보였다는 후문.
▲ (왼쪽부터)박영규,양택조 | ||
<고독이…>에서 소위 킹카로 출연하는 선우용녀의 이미지 변신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하지만 걱정은 금물. TBC(동양방송) 연기자로 데뷔 당시 안인숙, 윤소정과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젊은 시절 이미 킹카 연기를 섭렵한 그의 경험이 이번에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예정이다.
최근 서울우유 CF 촬영장에서도 선우용녀는 저력을 발휘한 일이 있었다. 탱고춤을 요구하는 제작진 앞에서 단 3차례 만에 OK를 받아낼 만큼 뛰어난 춤솜씨를 선보인 것. 누가 알았으랴 그가 20여 년 전 잘 나가는 ‘댄서’였다는 것을.
한국 영화 1천만 시대를 연 실질적인 주인공은 바로 중년 관객들이다. 젊은 시절의 꿈을 잊고 살던 중년 관객들이 다시 영화를 통해 ‘꿈’과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장년배우들 역시 영화를 통해 새로운 꿈을 키워가고 있다. <고독이…>의 송재호는 65세로 최고령 배우지만 여전히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며 집에서는 16mm 카메라로 일상을 촬영한다. 이런 모습이 한국 영화계의 전성기를 이끄는 중·장년배우들의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