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소유자 동 씨 측은 서울시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동 씨 측에서 준비한 저명한 학자의 전문감정소견서와 서울시 문화재위원의 심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기 때문이다. 동 씨 측은 “한국에서 문화재 감정은 복마전이나 다름없다. 파벌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문가의 감정이 배척되기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는 “심의는 적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다. 심의결과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하기에 미흡한 점이 있다”는 입장이다.
동 씨가 소장한 금판묘법연화경은 순도 96%의 금에 새겨졌다. 변상도(變狀圖, 불교 경전의 내용을 알기 쉽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와 경문(經文), 조성 기록까지 있어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조성 기록에는 ‘특히 돌아가신 어머니 철성군부인 이 씨의 영혼이 극락세계에 오르고…. 고려국왕(공민왕)께서는 이 금자를 흥왕사에 주성(做成)하기를 명하시었다’고 돼있다.
이 금판묘법연화경을 둘러싼 논란은 △제작시기 △제작방법 △변상도의 수준 등이다.
소장자 동 씨 측은 금판묘법연화경이 고려시대 흥왕사(興王寺) 교장도감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흥왕사는 고려시대 당시 속장경을 많이 간행했던 사찰이었다. 개성 근처에 있던 흥왕사는 오늘날 터만 남아있다.
정명호 전 동국대 예술대 교수이자 전 문화재관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동 씨가 소장한) 금판묘법연화경은 ‘고려 공민왕 13년 9월 왕명에 의하여 흥왕사에 주성하였다’는 주성기(做成記)가 있다”며 “국보 211호인 백지묵서묘법연화경에서도 하덕란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조성하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은 “‘고려국왕’이라는 표현은 고려에서 국내용으로 완성한 다른 사경에서는 사용된 사례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동 아무개 씨가 소장한 금판묘법연화경은 순도 96%의 금으로 제작됐다. 불교 경전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인 변상도(왼쪽)와 경문 조성 기록.
금판묘법연화경의 제작기법에 대해서도 정 전 교수가 “한 자 한 획을 눌러 돋움한 제작기법은 새로운 장을 연 것”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는 반면 서울시는 “고려시대 유물에서 볼 수 없는 기법”이라고 설명해 감정이 엇갈린다.
특히 불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그림인 변상도와 관련해 정 전 교수는 “(금판묘법연화경) 변상도의 완벽함과 섬세함은 종래 발견된 어떤 변상도보다 더욱 미려하고 섬세하여 왕명에 의하여 주성되었다는 마지막 장의 주성기를 입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전체적으로 변상도에 보이는 존상의 얼굴 표현은 고려시대의 변상도에 보이는 표현 수법과는 큰 차이가 있다”며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기에 미흡하다고 덧붙였다.
금판묘법연화경을 두고 저명한 학자와 서울시 문화재위원의 감정이 엇갈리자 소장자 측은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고려시대 금판묘법연화경이 제대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문화재 감정위원 사이의 파벌 때문이라는 것. 파벌이 다르면 아무리 저명한 전문가의 감정이라도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것이다.
동 씨 측은 “복마전이 된 문화재 감정과 그 파벌로 인해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어 진위 여부를 고찰하기 위해 학계와 종교계의 관심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시가 그 짧은 시간 내에 제대로 감정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감정을 한 문화재위원 명단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1년에 60건 이상이 서울시 문화재 심의를 거치고 있다. 문화재 지정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 소장자가 결과에 서운함을 나타내거나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며 “서울시 문화재 지정 관련 심의는 서울시 문화재과 사전조사를 거쳐 서울시 문화재위원의 현장조사와 사전심의 등이 이뤄진 다음 심의회의에 올라간다. 서울시 문화재는 국가의 문화재로도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라 대충 심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문화재위원을 비공개로 하는 것은 로비 등을 방지하고 공정성을 기하기 위함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덧붙였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묘법연화경이란? 부처가 열반하기 전 마지막 설파한 경전 묘법연화경이랑 대승경전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모든 경전의 왕’으로 통했으며 일반적으로 법화경이라 불린다. 법화경은 부처가 열반하기 전 가장 마지막 시기에 설파한 경전이다. 화엄경, 금강경이 심오하고 철학적이라면 법화경은 “사람 그대로가 부처”라는 내용이기에 가장 대중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또 법화경은 읽고 간직하며 베껴 쓰는 것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어 고려시대에는 법화경을 베껴 쓰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 보물급 이상 문화재 중에는 묘법연화경이 꽤 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