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인 제 57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기자시사회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장면은 성현아와 김태우의 샤워신이었다. 자극적인 정사신이 아닌 지극히 사실적인 정사신으로 관객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홍상수 감독의 손길이 문제의 샤워신에도 그대로 묻어난 것.
노출 수위는 전라이긴 하지만 옆모습을 비추는 일반적인 수준. 그러나 상대역인 김태우의 손길이 10초 이상 성현아의 은밀한 곳에 직접 닿는 연출 수위는 파격적이다.
문제의 장면은 스토커처럼 자신을 괴롭히던 남성에게 강간을 당한 성현아를 김태우가 직접 씻기는 장면이다. 허름한 여관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샤워실에서 함께 샤워를 한다. 전라 상태로 가만히 서 있는 성현아의 몸 구석구석을 팬티 차림의 김태우가 비누칠해준다. 우선 가슴 부위를 씻긴 김태우의 손이 이내 성현아의 은밀한 곳으로 내려간다.
이와 흡사한 장면은 그동안 여러 영화에 등장한 바 있다. 최근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사마리아>에서도 곽지민이 원조교제를 한 친구의 몸을 씻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 역시 동성애 코드가 강하게 풍긴다는 이유로 화제가 됐지만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수준에서 수위를 조절했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연출은 보다 사실적이다. 전라 상태의 성현아는 카메라 앵글에 옆모습을 보이며 서 있다. 그리고 김태우의 손이 성현아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 은밀한 부위에 비누칠을 한다. 김태우의 손끝이 성현아의 엉덩이 사이로 살짝 드러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된 장면이 아무런 여과없이 스크린에 담겨 있다.
물론 음모 노출 등 표현 수위를 도량적으로 가늠하는 측면에서 이 장면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이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입장, 특히 여배우의 입장에서는 남자 배우가 자신의 은밀한 곳에 비누칠하는 게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정사신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전라 상태에서 서로를 애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상대방의 은밀한 곳을 만지게 되는 경우는 ‘포르노’를 제외하고는 드문 일이다.
애초 성현아는 “처음 트리트먼트(홍 감독은 시나리오를 장면별로 촬영 당일 쓰는 특이한 방식으로 촬영하기 때문에 캐스팅 단계에서는 시나리오 대신 대략적인 내용이 담긴 ‘트리트먼트’를 배우에게 제공한다)를 보고 노출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알았으나 부담감은 없었다”면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다는 게 너무 기뻤고, 또 감독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의 샤워 장면 촬영 당시 느낀 어려움은 이런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성현아는 “보시는 분에 따라 강도는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며 “긴장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김태우씨와 워낙 친오빠처럼 친하게 지냈고 감독님이 의미 깊게 생각하는 장면이라 믿고 따랐다”고 얘기한다.
▲ 과거의 연인이었던 세 주인공이 만나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장면. | ||
지난 2002년 마약 복용 사건으로 위기에 몰린 성현아는 당시 ‘재기불능’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한물 간 탤런트 취급을 받았다. 1년 뒤인 2003년 누드 촬영이라는 비장의 카드로 재기를 노렸지만 인기를 되찾기는커녕 해킹으로 인해 생채기만 하나 더 얻은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섹시한 댄스 가수로의 변신을 모색하던 상황에서 성현아는 홍상수 감독의 캐스팅 제안이라는 희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미 <오! 수정> <생활의 발견> 오디션에 참가하며 홍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기를 열망해온 성현아는 망설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만 부담이 됐던 점은 역시 노출. 이에 대해 성현아는 “누드사진을 찍은 배우로서 노출이 더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피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창피하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기자시사회 무대인사에서 성현아는 “이번 영화는 모든 것을 털어내고 다시 담을 수 있는 기회였다”고 얘기했다. 실제로 그녀는 영화 속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는 듯 촬영에 몰입했다. 10년 가까운 B급 탤런트 생활의 스트레스, 마약 사건의 위기 등 모든 힘겨운 나날을 털어낸 지금, 성현아는 당당히 레드카펫을 밟을 수 있는 여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그녀의 차기작은 <이중간첩>의 흥행 실패 이후 재기를 노리는 한석규가 출연하는 <주홍글씨>. 당대 최고의 감독인 홍상수에 이어 이번에는 최고의 배우와 호흡을 맞추게 된 것. 게다가 5월3일 방영되는 SBS TV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를 통해 2년여 만에 안방극장에도 복귀하게 된다.
성현아의 요즘 바람은 다음 영화가 개봉될 때에는 “그동안 힘든 일 많았다”는 얘기를 더 이상 듣지 않았으면 하는 것. 이번 영화를 통해 과거의 아픔을 ‘털어낸’ 그녀가 과연 앞으로 어떤 것들을 ‘담아낼’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 그녀는 짜릿한 인생 대역전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