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합성=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이미 스타가 된 여배우들은 함께 작품 하기가 쉽지 않다. 너무 따지는 게 많기 때문이다.”
<빈 집>으로 최근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은 얼마 전 막 뜨기 시작한 인기 여배우와 잠시 얘기를 나눈 직후 이렇게 말했다. 화려한 스타 여배우들은 영화의 꽃. 그런데 김기덕 감독은 다짜고짜 스타는 안 된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스타 여배우들 주변에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차라리 열정 있고 참신한 신인과 작업하는 게 나을 때가 많다.”
사실 여배우에 대한 고민은 김기덕 감독만의 숙제가 아니다. 남자 배우에 비해 평균 연령대도 낮고 상대적으로 스타성도 강한 미녀 여배우들의 경우 아무리 경험 많은 감독이라도 현장에서 조율하기가 마땅치가 않다. 하물며 김기덕 감독처럼 ‘작가 감독’들에게야 매니지먼트의 스케줄과 주변 환경에 얽매인 스타급 여배우들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작가 감독’들은 늘 스타보다는 발굴된 새로운 얼굴을 원하기 마련이다.
김기덕 감독은 1996년 데뷔 이후 11편이나 되는 작품 편수만큼이나 늘 신인 여배우들을 ‘발굴 육성’해온 대표적인 작가 연출자다. 아무래도 웬만한 여배우라면 거부하기 마련인 창녀 같은 밑바닥 인생 역할을 맡아야 하는 데다 노출 수위도 높기 마련이어서 김기덕 감독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
김기덕 감독은 마초적인 독특한 영화 세계를 갖고 있으며 여배우에게 연기자로서의 한계를 넘는 요구를 한다는 점에서 종종 연기력을 검증 받기를 원하는 기존 여배우에게 기피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선호의 대상이기도 하다. <빈 집>의 이승연은 존재감 있는 여배우를 원하는 김기덕 감독과 곤경에 처한 이승연 자신의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 경우였다고 할 수 있다. 누드 파문으로 벼랑 끝에 몰렸던 이승연은 김기덕이라는 비장의 카드로 수렁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빈 집> 역시 화제를 모았다.
▲ (왼쪽)성현아, 홍상수 | ||
홍상수 감독이 자신을 모델로 연출했다고 알려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는 ‘여배우와 감독의 관계’가 좀 더 적나라하게 실토된다. 김태우가 연기한 영화감독 헌준은 중국집 여종업원에게 자신의 영화에 출연할 생각이 없느냐며 수작을 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여주인공 성현아는 <빈 집>의 이승연과 마찬가지로 스캔들에 휘말렸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올해 칸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는 영광과 함께 연기파 배우로 거듭날 수 있었다.
사실 성현아는 홍상수 감독이 애정을 갖고 일찍부터 캐스팅하려고 마음먹었던 인물. <생활의 발견>에서도 극중 인물을 애초에 성현아로 점찍고 구상에 들어갔다가 캐스팅이 불발됐던 전례도 있었다.
▲ (왼쪽)박찬욱, 이영애 | ||
박찬욱 감독은 이미 <올드보이>에서 신인 윤진서를 발굴했다. 그런데 윤진서는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주가를 높이고 있는 여배우. 허진호 감독도 ‘러브콜’을 보내며 캐스팅에 정성을 쏟고 있는 중이다. 이 같은 감독들의 잇따른 ‘러브콜’에 소속사에서도 윤진서를 자사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는 분위기다.
지형태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