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중국 한류가 기회”라고 외치던 이들이 이제는 “기회가 곧 위기”라고 슬그머니 말을 바꾸고 있다. 그 배경에는 중국의 엄청난 자본력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바이 코리아(Korea)’를 넘어 ‘바이 코리안(Korean)’에 초점을 맞춘다. 잡은 고기를 사가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한국의 우수한 인력을 빼가겠다는 전략이다.
한류스타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연예기획사 A의 대표는 지난해 말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회사 지분 51%를 1000억 원에 사겠다는 눈이 번쩍 뜨일 제안이었다. 물론 “경영권을 보장하겠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고민하던 A 사의 대표는 거절의 뜻을 밝혔다. 이 거래가 가져올 엄청난 후폭풍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절반이 넘는 지분을 가지면 결정 권한을 중국 측에서 갖는다는 의미”라며 “이는 단순히 수익을 가져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향후 중국 작품에 소속 스타들을 동원하고 그들의 활동 범위를 직접 컨트롤하겠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한국의 인력 빼가기에 힘을 쏟고 있다. 아이돌 그룹 엑소에서 이탈한 크리스와 루한은 그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한국 유명 그룹의 멤버로서 입지를 다지며 중국어권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됐다. 하지만 중국 국적인 것을 악용해 한국에서 계약 해지 소송을 제기한 후 중국으로 넘어가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크리스와 루한에 앞서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였던 한경 역시 한국 소속사를 떠난 후 중국 거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손잡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엑소의 또 다른 멤버들과 타 아이돌 그룹에 속한 외국인 멤버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들을 빼가는 배경에는 배후 세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그들이 한국 그룹에서 이탈하고 소송을 제기하며 중국에서 활동을 시작하는 과정이 몹시 흡사한 것이 그 방증이라 할 수 있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중국인 멤버라 할지라도 한국의 대형 기획사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무단이탈한 이들을 쓰지 않으려는 중국 업체도 있다. 그들이 한국에서 쌓은 인기를 포기하는 위험요소를 감수하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이득이 있기 때문”이라며 “엄청난 자본을 갖춘 몇몇 중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한국에서 전문 트레이닝을 받고 인기를 얻은 그들을 상대적으로 헐값에 매입한 셈”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바이 코리안’은 연예인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의 제작 시스템과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감독, 작가, 스태프 등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를 연출한 장태유 PD가 대표적이다. 그는 한경이 몸담고 있는 중국 엔터테인먼트기업 위에화와 손잡았고 중국 영화를 연출한다. 장 PD는 SBS에 휴직계를 제출하고 중국행을 택했지만 중국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그가 SBS가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장태유 감독 외에도 <조폭 마누라>의 조진규 감독, <패션왕>의 오기환 감독 등도 중국과 손잡고 현지 영화를 연출했다.
예능 분야에서도 한국의 우수한 제작 인력을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드라마의 경우 중국 지상파 진출이 어렵고 인터넷 송출 또한 방송 전 심의로 인해 노출이 어려워지면서 예능 프로그램이 상대적으로 더욱 각광받고 있다. <1박2일>을 비롯해 <아빠 어디가>와 <런닝맨> 등을 리메이크한 작품이 큰 인기를 얻으며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는 드라마보다 예능의 효율성이 더 높다는 반응이다.
‘쌀집 아저씨’라 불리는 MBC 김영희 PD는 최근 MBC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31년간 몸담았던 MBC를 떠나며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할 계획을 밝혔다. 그 배경에는 <나는 가수다>가 있다. 이 프로그램으로 오랜 침체기를 겪던 MBC 간판 예능프로그램 <일밤>을 부활시킨 김영희 PD는 중국 방송사에서 <나는 가수다>의 포맷을 구입하자 현지로 날아가 제작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뛰어난 연출력으로 현지 스태프를 조율하고 중국판 <나는 가수다>의 성공을 이끈 김 PD는 이후 중국 측의 강한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MBC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나는 가수다> 외에 <양심 냉장고>와 <느낌표> 등 대표적 공익 예능을 만들었던 PD가 중국으로 건너간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면서도 “하지만 김 PD를 통해 한국과 중국의 예능계가 상생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스타, 감독, 작가뿐만 아니라 주요 분야 스태프도 중국이 영입하려는 대상이다. 분야별 전문가가 세분화된 한국의 제작 시스템에서는 총연출을 담당하는 감독 외에 촬영 감독, 조명 감독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게다가 각 캐릭터에 맞는 분장팀과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역할도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중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한국의 우수 인력을 통째로 수입해가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볼 때는 한국의 인력이 중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좌지우지하고 외화 획득에도 큰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뒤를 봐야 한다. 중국은 ‘짝퉁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습득과 모방이 뛰어나다.
한 중국 전문 에이전트는 “그들이 돈을 지불하고 한국 인력을 쓰는 것은 단기적일 것”이라며 “자국 스태프가 한국 제작진의 노하우를 충분히 습득하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되면 ‘바이 코리안’은 끝이다. 중국 스스로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그들에게 한국 시장은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