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카드가 코스트코와 4개월여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독점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삼성카드는 그동안 0.7%라는 파격적인 가맹점 수수료를 적용하며 코스트코를 우대했다. 금융당국이 지난 2012년부터 대형가맹점에 대해 1.9~2.1%의 수수료를 적용토록 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조건을 제시한 셈이다.
독점계약은 삼성에게도 큰 혜택을 안겨줬다. 코스트코는 소매상품을 거의 취급하지 않는 미국식 창고형 할인점이기 때문에 건당 결제금액이 다른 대형할인점에 비해 크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수백만 원어치의 물건을 사도 현금이 아니면 삼성카드만 받기 때문에 상당수 소비자들은 카드결제를 선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용카드업계는 코스트코를 통한 삼성카드 결제금액만 2조 원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카드로서는 거물급 고객을 통해 해마다 수조 원의 결제액을 고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삼성카드가 발급한 코스트코 제휴카드 30만 장을 통해서도 한 해 3000억 원에 달하는 결제가 이뤄지고 있다. 덕분에 삼성카드는 코스트코 결제 수수료를 통해서만 연간 140억 원, 15년 동안 2000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이렇듯 코스트코는 삼성카드를 통해 수수료 비용을 줄이고, 삼성카드는 코스트코를 통해 매출을 늘리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독점계약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를 이어온 셈.
하지만 금융당국이 신용카드 수수료 체계를 전면 개편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지난 2012년 금융당국은 여신금융전문업법을 개정하고 대형가맹점에 대해서는 1.9%~2.1%의 수수료를 적용하도록 했다. 삼성카드가 15년 동안 코스트코에 적용해온 0.7%의 파격혜택은 이때부터 불법이 된 셈이다. 이때부터 삼성카드는 고민에 빠졌다. 삼성과 코스트코는 5년 단위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당장 수수료를 올리자니 계약위반에 해당하고, 그렇다고 수수료를 유지하는 것은 불법인데다 금융당국에 맞서는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고심하던 삼성은 코스트코와 금융당국 모두를 만족시키는 묘수를 찾아냈다. 가맹점 수수료를 1.7%로 1%포인트 올리되, 수수료 인상에 따른 추가비용 발생분을 위약금 명목으로 코스트코에 돌려주는 방법을 택한 것. 법을 지키면서도 코스트코에 불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이 방식으로 삼성카드는 올해까지 무사히 독점계약을 이어올 수 있었다. 문제는 이 방법 역시 5년 계약의 만기인 올해 5월 23월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새로 갱신되는 계약은 기존의 파격적인 수수료 자체를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1.9% 이상으로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낮은 수수료로 계약하고 위약금을 물어주는 기존의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 실제로 삼성카드와 코스트코 간의 협상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양측은 올해 1월부터 일찌감치 조율에 들어갔지만 석 달이 넘도록 이렇다 할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카드사 간의 경쟁은 이때부터 불이 붙었다. 삼성카드가 코스트코에 더 이상 특혜를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다른 카드사들은 “똑같은 조건이라면 해볼 만하다”며 앞다퉈 코스트코와의 독점계약 따내기에 뛰어들었다. 카드업계 1위인 신한카드, 정태영 사장이 이끄는 현대카드 등이 삼성카드와 코스트코의 협상이 깨지기를 기대하며 잇따라 출사표를 내밀었다.
하지만 삼성은 이번에도 ‘신의 한수’를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코스트코는 이번 결제카드 선정 과정을 경쟁 입찰로 진행하지 않고 개별면담을 갖는 수준에서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삼성카드와는 실무자끼리 협의를 거쳐 계약연장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카드가 코스트코에 내민 조건이 무엇이었는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금융당국조차 삼성측이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 할 정도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위법사항이나 정황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개별 회사 간의 계약조건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면서 “진퇴양난의 상황을 타개한 묘책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도 궁금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카드업계에서는 삼성측이 수수료 인상에 따른 추가 비용을 물어주던 기존의 방법 대신 합작 마케팅과 프로모션 등을 펼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무이자 할부나 카드결제시 일정금액을 할인해 주는 방법 등이 대표적인데, 이에 따른 금융비용을 삼성카드측이 더 많이 부담하는 방식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다른 신용카드사들은 다음 기회에 재도전한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우량 고객과 안정적인 매출을 보장해주는 코스트코와의 독점 계약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내 신용카드 시장에서 보기 드문 ‘황금알’이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15년 넘게 유지되던 철옹성에 균열조짐이 보였다는 점만으로도 고무적”이라면서 “삼성카드의 아성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 않느냐”고 전했다. 카드사 입장에서 볼 때 좀 무리를 해서라도 코스트코에 이익 일부를 떼 주고도 남는 장사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코스트코를 둘러싼 ‘짝사랑’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