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가 댐 건설을 추진 중인 지리산 내서천. 지역 동의가 있을 때만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계획 자체를 백지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제공=광주환경운동연합
현재 지리산에서는 두 개의 댐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지리산의 남쪽에서는 피아골댐이, 북쪽에서는 문정댐이 추진되고 있다. 섬진강 내서천은 다름 아닌 지리산 피아골 계곡이다. 그래서 이 댐을 정부는 ‘내서댐’이라고 명명했지만 지리산 ‘피아골댐’이라고 해야 더 명확할 것 같다. 피아골댐 기본계획은 광양·여수·순천 지역 공업용수 공급과 식수난 해결을 위해 피아골에 175m 높이 3100t 규모의 댐을 짓는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은 이 댐 계획에 동의하지 않는다. 주민들은 “댐이 들어서면 피아골 4개 마을은 완전히 물에 잠기고, 물 끝은 연곡사 바로 아래까지 잠기게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또 “‘피아골 물이 모이는 섬진강으로서도 댐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지금도 물 부족으로 인해 염해, 수질 악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환경부도 2013년 3월 발표한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이 일대 식수 문제는 내서천댐을 지어 해결할 필요가 없다. 섬진강 본류 등 다른 대체 수원을 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전라남도도 반대하고 있다. 이낙연 전남도지사는 지난 3월 초 한국수자원공사 댐 관계자들을 직접 이끌고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내서리 일대 지리산 피아골을 방문해 피아골댐 계획의 불합리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와 관련, 국토교통부는 최근 해명자료를 내고 “댐사전검토협의회 논의를 거쳐 지역의 동의가 있을 경우에만 댐 건설이 가능하다”고 한발짝 물러섰다. 전남도의 한 관계자는 20일 <일요신문>에 “주민이 반대하는 피아골댐을 추진하지 않기로 국토부와 협의를 마쳤다”고 확인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과 환경단체들이 느끼는 댐 건설 철회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이 댐 ‘계획’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의 댐건설 장기계획(2012~2021년)에 피아골댐 건설계획이 포함돼 있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추진 가능하다.
물론 정부는 댐사전검토협의회 논의를 거쳐 지역의 동의가 있을 경우에만 댐 건설이 가능하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국토부 해명에서 전제격인 ‘지역의 동의가 있을 경우에만’이라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뒤집어 보면 ‘지역의 동의만 있으면 추진하겠다’는 얘기에 다름없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도 우려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최지현 광주환경운동엽합 사무처장은 “지금껏 진행돼 온 각종 정부개발사업에서 보듯이 계획이 우선되고 근거가 마련되는 식으로 추진되지 않았느냐”며 “국토부와 전남도가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지만 구두로 약속한 것이어서 언제든지 (댐 건설이)되살아 날 수 있다. 계획 자체에 피아골댐이 포함된 것이 문제다”고 계획 백지화를 촉구했다.
최근 광주에서 열린 세계인권도시포럼에서 댐 추진과 관련, 정부와 주민들의 대화를 강조한 필리핀 CPA 아비게일 비 아논거스 사무총장. 사진제공=광주환경운동연합
피아골댐 건설 추진여부에 대한 판단을 정부의 정책이나 해명차원에서 분석하기보다는 지리산 북쪽에서 추진되고 있는 또 다른 댐인 지리산댐(문정댐) 등에서 찾아보는 것도 그런 연유인 듯하다. 지리산댐 건설은 국가 수자원개발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거론돼 왔다. 1984년 지리산댐 기본계획이 수립되고 2003년 경남 함양군이 댐 조기 건설을 건의하면서 구체화된다. 댐 건설 예정지는 지리산 칠선계곡과 백무동, 뱀사골의 물이 합수돼 흐르는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지역이다. 정부가 수립한 애초 계획은 댐 길이 896m, 높이 141m, 총저수량 1억 7000만t 규모로 담수면적은 4.6㎢다.
하지만 한동안 잠잠했던 지리산댐 건설사업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 댐 역시 국토교통부가 댐 건설 장기계획에 지리산댐을 포함시키면서 문제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홍준표 경남지사가 경남·부산지역 식수 공급과 홍수 조절 등 다목적댐으로 지리산댐을 건설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논란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논란은 정부가 지리산댐의 성격에 대해 여러 차례 말을 바꾼 데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토부는 처음엔 지리산댐을 식수용이라고 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남강댐 보조용으로 정정했고 또다시 홍수 조절용이라고 말을 바꿔 불신을 사게 됐다.
지리산댐 건설을 놓고 정부가 스스로 깔아 놓은 ‘불신’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이를 상쇄할 만한 또 다른 ‘담보’를 제시하지 않는 한 이미 불붙은 논란은 쉽게 꺼지지 않을 전망이다.
“개발사업 진행에 있어 환경 문제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해야 될 것이 인권이다. 환경 문제, 토착민들의 인권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외면한 개발방식과 패러다임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한국 정부가 지리산 피아골에 추진 중인 댐 건설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난 17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5 세계인권도시포럼 ‘환경과 인권’ 주제회의에서 ‘개발의 역습-대형 댐과 토착민’을 주제로 발표를 한 필리핀 CPA 아비게일 비 아논거스 사무총장이 한 말이다. 그는 정부가 지리산 피아골 일대에 내서천댐을 추진하는 문제에 대해서 ‘주민들과의 대화’를 유독 강조했다. 지역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투명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부 당국이 경청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