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연애술사> 중 대구 A모텔서 촬영한 장면. | ||
이들은 영화 촬영 현장 섭외를 위해 전국 모텔촌을 오가며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흔하디흔하지만 촬영 현장 섭외가 가장 어려운 곳이 바로 모텔이다. 영화판 모텔 전문가(?)들에게 생생한 모텔촌 순례기를 들어봤다.
최근 가장 확실한 모텔 전문가들로 인정받은 사람들은 영화사 필름지의 <연애술사> 스태프들이다. 모텔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몰래카메라에 담겨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한 두 주인공이 범인을 찾기 위해 함께 찾았던 모텔을 순례한다는 내용으로 인해, 스태프는 전국 모텔촌을 실제 순례하며 장소 섭외를 해야 했다.
“서울 전역을 시작으로 서울 근교(장흥 송추 파주 일산 분당 등), 수원, 대구 전주 등 전국 유명 모텔촌은 안 가본 곳이 없다”는 정성일 PD는 “결국 이 가운데 9군데의 모텔이 협조해줘 촬영이 가능했다”고 얘기한다.
섭외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모텔을 찾는 이들은 남몰래 조용히 왔다가길 바란다. 영화 촬영으로 어수선한 모텔에 투숙객이 들어올 리 만무하기 때문. 몇몇 모텔촌에는 모텔연합회가 있어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통사정도 해보았지만 대부분 대답은 ‘No’.
▲ A모텔은 룸이 다양한 컨셉트로 꾸며져 있어 다른 모텔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 ||
9군데 모텔에서 모두 촬영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주된 촬영지가 됐던 대구 A모텔과 B모텔, 수원 C모텔에서는 내부 촬영이 이뤄졌고 나머지 여섯 군데는 외부 촬영만 이뤄졌다.
주요 촬영지는 대구 A모텔이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모텔 정보 관련 동호회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곳으로 서울에서도 원정을 가는 이들이 있을 정도라 사실 촬영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는 정 PD는 “다행히 허락을 받아냈는데 그 곳은 32곳의 룸이 모두 다른 컨셉트라 8개의 룸에서 제각기 다른 모텔의 분위기로 촬영할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촬영 허락을 받아낼까. 우선 장소 헌팅에 나선 뒤 공문과 시놉시스를 보낸다. 그리고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며 설득 작업에 돌입하는 것. 대구 A모텔의 경우 15일 동안 매달려 어렵게 촬영 허락을 받아냈다.
“이렇게 얘기하면 좀 그렇지만 1주일 동안 ‘갇혀 있었다’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는 정 PD는 “밥 먹으러 나갈 때를 제외하면 늘 모텔 안에 있었고 행여나 손님들과 마주칠까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고 얘기한다. 갇혀 지내기는 연정훈, 박진희 등 배우들도 마찬가지.
▲ 장흥 B모텔의 야경. | ||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모텔은 영화 촬영에 비협조적이다. 심지어 숙소로 사용하는 것마저 꺼려할 정도. 영화 <꽃피는 봄이오면>의 촬영팀은 강원도 도계의 D모텔을 숙소로 활용했다. 폐광촌인 도계에는 사실상 여인숙 정도만 있을 뿐 제대로 된 숙박시설은 D모텔뿐. 그런데 촬영 내내 D모텔은 상당히 비협조적이었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자주 오가면서 실수요층 손님의 발길이 뜸해진 것. 결국 촬영 중반부 D모텔이 강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스태프는 여인숙으로 숙소를 옮겼고, 겨우 최민식 장신영 등 배우들만 계속 그곳을 숙소로 사용하게 됐다.
반면 적극적인 촬영 협조로 대박을 터뜨린 곳도 있다. 삼척에서 촬영된 영화 <외출>의 주요 촬영지는 삼척의료원과 인근 E모텔. E모텔측은 촬영에 적극 협조했고 제작진은 촬영으로 인한 손님 감소에 대비해 해당 모텔을 스태프 숙소로 사용했다. 영화 촬영이 끝난 요즘 촬영지로 쓰인 삼척 E모텔은 일본인 관광객의 관광코스가 돼 상당한 관광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