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의 캐스팅 비화

동막골에 나타난 왕의 남자?

	▲ <왕의 남자> 포스터(왼쪽)와 정진영.

‘만약’이 성립된다면 충무로의 지도는 백팔십도 달라졌을 것이다. 영화배우들은 순간의 선택으로 대박과 쪽박의 극과 극 체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특히 요즘처럼 배우 기근에 시달리다보면 캐스팅 과정에선 온갖 비하인드 스토리가 쏟아진다. 우리가 본 영화와 드라마 속 배우들이 만약 그 인물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었다면? 예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런 사연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진영과 정재영은 각각 엇갈린 선택을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최고의 ‘해피엔딩’을 체험한 예다. 한국 영화 흥행 신기록의 새장을 연 <왕의 남자>는 캐스팅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주인공으로 내정됐던 장혁이 병역 파문으로 중도하차를 해야 했다. 이후에 다양한 조합안이 등장했고 그중 하나가 정재영에게 ‘장생’역을 맡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재영은 고심 끝에 <웰컴 투 동막골>을 택했고 지난해 최고 흥행 성적을 거두며 흥행 배우로 떠올랐으니 선택에 후회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왕의 남자>에서 혼을 불사르는 연산군 연기로 스타덤에 오른 정진영 역시 <웰컴 투 동막골>을 제안 받았으나 고심 끝에 <왕의 남자>를 골랐다는 사실이다. 두 배우가 서로 엇갈린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대박을 터뜨린 케이스다.

<가문의 영광>의 1편과 2편 주인공으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정준호와 신현준도 캐스팅에 얽힌 사연이 많다. 가수 조성모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인연을 맺은 이들은 당시 서로 출연작에 대해 의논을 하고 조언을 해주기도 했는데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

	▲ <웰컴투 동막골> 포스터(왼쪽)와 정재영.

신현준의 강력 추천으로 정준호는 영화 <싸이렌>을 골랐으나 도중에 감독이 교체되는 수난을 겪어야했다. 이 영화는 영화 흥행에서도 재미를 보지 못해 신현준의 조언이 도움이 되지 못한 셈. 그런데 반대로 신현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른 <두사부일체>는 대박이 터졌다. 상황이 이러고 보니 정준호의 입장에선 친한 친구인 신현준의 안목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가문의 영광> 시리즈로 콤비의 파워를 증명해 보였다. 언제라도 함께 한 작품에 출연할 의사가 있다는 두 사람은 “시나리오 보는 눈이 없다”며 서로 구박을 하기도 하지만 우정의 두께는 더 두꺼워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윤은혜도 예정되지 않았던 대박을 터뜨린 경우다. 요즘 MBC의 인기 드라마 <궁>의 헤로인으로 안방 극장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그는 처음 캐스팅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일부 안티팬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야했다. 워낙 원작인 만화의 아우라가 강하게 팬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기에 여주인공 ‘채경’ 역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던 것.

그런데 윤은혜가 원래 오디션을 봤던 배역은 ‘채경’이 아닌 다른 역이었다고 한다. 오디션장에서 윤은혜를 본 황인뢰 PD가 한눈에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윤은혜의 진가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평소 모습 그대로 카메라 앞에 서도 된다”는 황 PD의 직감 그대로 윤은혜는 회를 거듭할수록 자연스러운 연기로 안방 극장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 영화 <싸이렌> 속 정준호(왼쪽)와 신현준.

그런가 하면 강혜정은 박찬욱 감독과 함께 영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하기로 결정하기 직전까지 갔으나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경우다. 4월 개봉하는 영화 <도마뱀> 때문이었다. <올드보이>를 통해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준 박찬욱 감독과의 인연을 저버려야 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강혜정은 <도마뱀>의 홍보일정과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촬영 일정이 겹쳐질 것을 우려해 과감히 한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가수 비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 작품의 여주인공 역은 끝내 임수정에게 돌아갔으니 그녀들의 엇갈린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A의 경우엔 무리하게 자기 작품의 파트너로 실제 연인인 B를 고집해 제작진을 애 먹인 케이스다. A는 이미 기획 단계에서부터 내정된 파트너를 마다하고 B를 여자 주인공으로 교체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심전심인지 B 또한 오래 전에 출연을 약속한 드라마 대신 A가 하는 작품에 출연하겠다고 생떼를 써 소속사 관계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들의 ‘꿈’은 이뤄지지 못하고 원 캐스팅안대로 진행했는데 두 작품이 모두 흥행에서 별 재미를 못 봐 서로 위로 아닌 위로를 했을 것 같다.

톱스타 C 또한 여심에 홀려 대박 작품을 놓치는 바람에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했다는 후문이다. 유부남인 C는 뒤늦게 바람이 났는데 늦게 배운 도둑질에 도끼 자루 썩는 줄을 모르는지라 수많은 러브콜을 뿌리치고 은밀한 관계인 D가 캐스팅된 작품을 골라든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 카메라 밖 핑크빛 호흡이 카메라 안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은 듯 관객들의 외면에 고배를 마셔야했다. 배우로서의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은 C는 그 사이 그가 거절했던 작품들이 속속 대박을 터뜨리는 것을 지켜보며 눈물을 곱씹어야 했다.

또 다른 연기파 배우 E 또한 사랑이 ‘죄’인 경우다. 지난해 충무로에서 인기몰이에 성공한 E는 남자친구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한 뒤 그 충격으로 잠수를 탔다. 당시 사실상 캐스팅이 내정된 작품 감독과의 미팅 등 중요한 일정을 줄줄이 앞두고 있었지만 2주 가까이 주위와 연락을 끊었다. 해당 작품의 감독은 분개 끝에 캐스팅 자체를 백지화했고 이 화제작의 여 주인공에 또 다른 톱스타를 캐스팅했다.

김수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