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의 문제가 됐던 목욕탕 장면. | ||
그동안 저예산 에로 영화 등에서 출연 배우가 촬영 중 ‘중요 부위’의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살색 팬티나 타이즈를 착용하는 일은 많았다. 그러나 공중파 방송국이 이 같은 ‘노출 방지대책’을 마련한 것은 드문 일이다. 여기엔 계기가 있다. 지난해 말 MBC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가 출연 배우들의 노출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목욕탕 장면에서 화면 뒤쪽에 있던 남성 보조 출연자의 엉덩이와 음부가 1초 내외의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그대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즉시 인터넷과 방송으로 확산돼 일파만파의 파문으로 번졌다. 비록 방송위원회로부터 ‘경고’가 아닌 ‘권고’ 조치를 받아 사과 방송이나 방송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방송국으로서는 아찔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던 것. MBC의 사태를 본 다른 방송국들은 노출 방지에 고심하게 됐고 그 결과가 ‘살색 팬티 공수’로 이어진 셈이다.
사실 시청자나 네티즌의 입장에서는 ‘노출 사고에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고의성이 담긴 것 아니냐’라고 오해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방송국이나 드라마 제작사의 입장에서 노출 사고는 최악의 악몽에 가깝다. 드라마 PD들은 “오락 프로그램이나 가요 프로그램의 노출은 시청자를 위한 ‘서비스’에 가깝다. 그러나 드라마는 다르다. 노출이 고의로 이뤄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드라마 제작진은 그 이유로 “노출로 얻는 것에 비해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이유를 지적한다. 드라마는 영화나 가요와는 달리 전 연령의 전 국민이 시청하는 매체다. 이에 따른 준수사항도 엄격하고 파장 또한 크다. 일단 노출 사고가 터지면 언론과 네티즌의 비난을 사고 최악의 경우 방송위원회로부터 수백만 원의 벌금과 방송 중단까지 받을 수 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직접적 처벌보다 DVD 출시나 케이블 재방송, 외국 수출 등의 ‘2차 수익’을 올릴 길이 막힌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노출 부위를 삭제하더라도 ‘노출 사고가 일어난 드라마’라는 꼬리표는 ‘스캔들’처럼 따라다니게 되고 판매고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노출 사고가 심심하면 터지는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다.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인 ‘초치기’ 제작 관행 때문이다. 급하게 찍고 급하게 편집해 아슬아슬하게 방송되는 관행이 되풀이되다보니 사소한 노출에 대한 ‘게이트 키핑’이 불가능하다. <달콤한 스파이>의 경우도 문제의 목욕탕 노출 장면은 당일 오전 대본이 나와 당일 낮에 촬영하고 당일 저녁에 편집해 방송한 것이다. 노출 수위에 대한 자체 심의나 토론할 시간이 없는 셈이다.
노출 사고는 비단 ‘알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올해 초 인기를 끈 한 트렌디 드라마의 경우가 그렇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신인이지만 풋풋하고 귀여운 이미지와 도도한 인상이 겹쳐 여성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남자 연기자. 이 연기자는 극중 여성 파트너와 침대에서 아옹다옹하며 굴러다니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 장면은 짤막하게 편집됐고 본편 방송 후 다음 회 예고편으로 방송됐다. 문제는 예고편 방송 직후였다. 이날 새벽 인터넷 드라마 게시판에 남성 연기자의 예고편 장면이 ‘캡처’되어 나돈 것. 여성 연기자와 함께 뒹굴고 있는 남자 연기자의 ‘중요 부위’가 비록 옷 속이긴 하지만 ‘발기된’ 실루엣이 뚜렷하게 드러난 것이다. 순수하고 풋풋한 인상의 이 연기자에게 ‘발기 노출’이란 이미지에 먹칠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노출’을 용인하기에는 이 남성 연기자에 대한 여성 네티즌들의 ‘충성심’이 너무나 대단했다. 여성 네티즌들은 ‘없었던 일로 하자’며 캡처 화면을 게시판에서 즉각 지워버린 후 드라마 제작사에 이 사실을 제보했다. 이 사실을 몰랐던 제작사는 소스라치게 놀랐고 해당 드라마의 인터넷 다시보기는 즉각 중단됐다. 곧 복구됐지만 어느새 소리 소문 없이 문제의 장면이 삭제, 편집된 것은 물론이다. 제작진은 “연예인도 남자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해하지만 그래도 아찔했다. 하마터면…”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종원 스포츠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