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 수위를 먼저 높인 쪽은 엘리엇이다. 엘리엇은 최근 삼성SDI와 삼성화재 지분을 각각 1%씩 확보했다. 두 회사는 각각 삼성물산 대주주와 주요주주다. 상법상 지분 1%를 가진 주주는 이사(위법행위 유지청구권)와 회사(주주대표 소송)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주총에서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는 두 회사의 이사들이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는 명목으로 소송을 걸 자격을 얻은 셈이다. 엘리엇은 삼성SDI와 삼성화재 임원과 이사진 수명의 신상 정보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일 세계적인 의결권자문 기구인 ISS의 지지를 얻어냈고, 8일(현지시간)에는 삼성물산 주식 0.2%를 가진 캐나다연금투자위윈회(CPPIB)의 지지를 끌어냈다.
삼성도 적극적인 방패 전략을 펼치고 있다. 7일 서울중앙지법이 삼성물산이 KCC에 매각한 자사주의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 소송을 기각하면서 기세를 얻은 삼성은 전경련 등과 연합해 헤지펀드의 기업 경영권 공격에 대한 경계여론을 끌어올리고 있다. 직간접적으로 연기금 등의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개인주주들을 대상으로도 직접 직원을 파견,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야말로 전수 방위다.
하지만 여전히 승부는 안갯속이다. 국민연금의 지지를 얻어도 삼성 편에 서기로 약속한 지분은 30% 남짓이다. 승리를 위한 최소지분율 47%와는 거리가 멀다. 26%가 넘는 외국인 지분의 지지만 모두 얻는다면 국민연금의 지분 없이도 합병 저지가 가능하지만, 삼성 역시 활발하게 외국인 주주와 활발히 접촉 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까지 나서 네덜란드 연기금 관계자를 만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의 수뇌부가 총동원됐다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다. 엘리엇 역시 모든 외국인 주주들의 지지를 장담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여전히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이번 승부의 중요한 변수인 상태다.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의 모임인 인터넷카페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에서는 엘리엇 측에 의결권을 위임하겠다는 주주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6월 한 증권포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의 82%가 합병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미디어리서치가 7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합병 찬성이 50.9%나 나왔다. 합병 반대는 25.4%에 그쳤다. 응답자의 76.6%는 엘리엇을 ‘기업경영에 간섭해 단기에 수익을 내고 빠지는’ 펀드로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소액주주 가치와 이익실현을 대변하는 펀드’로 인식한 응답은 17%에 그쳤다.
이번 대결에 대한 관심이 국민적으로 확산되면서 주주총회 참석률도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통상 주총 참석률은 70%가량이지만, 이번 주총의 경우 양측의 위임장 대결이 치열해 참석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참석률에 따른 유불리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참석률이 낮을수록 엘리엇 측에 유리할 가능성이 조금 더 높다.
외국인주주는 통상 적극적으로 참석하기 때문에 참석률이 낮으면 엘리엇에 우호적인 외국인주주의 의결권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34%에 달하는 지분을 가진 외국인은 이번 주총에 거의 모두 의결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국내에 상당한 네트워크를 가진 삼성의 경우 의결권 위임을 통해 자사에 우호적인 주주들의 참석을 이끌어낼 여지가 크다. 물론 통상 반대의결권의 경우 적극적으로 의견개진을 하는 성향이 있다. 참석률이 높다고 반드시 삼성에 유리할 것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
최열희 언론인